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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사모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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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사모가 울고 있다
  • 정윤석
  • 승인 2003.08.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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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없고…귀가 없고… 설자리 없고… ‘남편’이 없어

 

할말 많아도 속앓이만… 우울증 걸리기도
열심내면 “설친다” 가만히 있으면 “뭐하냐”
“우리도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여자예요”
성도와 관계회복, 전문사역자로 활로 찾길


온누리교회 한홍 부목사가 예전에 사모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였다. 진지한 강의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목사는 돌연 기타를 들고 가수 한동준 씨의 ‘너를 사랑해’라는 노래를 불렀다. 소위 ‘세상’ 노래였지만 아름다운 가사에 잔잔한 멜로디가 흐르자 사모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강의 후에는 “노래에 은혜를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사모도 있었다. 사모들도 분위기에 약하고 감수성 풍부한 일반적인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목사와 신도들로부터 사모들이 받는 대우와 현실은 여성으로서 받을 수 있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A사모는 얼마 전 목사와 대판 싸웠다. 이틀 전 어떤 여 집사의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보내줬던 남편이 정작 자신의 생일이 되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는 것 아닌가. 성도들은 돌봐야 할 ‘양’이지만 자신은 남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괴감이 사모를 괴롭히며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과 싸울 수 있는 A사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말할 입이 있어도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곳조차 없어 속병이 생겨 신경성 질환을 앓고 우울증에 빠진 사모들이 허다하다.
어떤 목사는 사모에게 “당신이 ‘죄송합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 물어보세요’라고 세 마디만 하면 교회가 평안하다”고 가르칠 정도다.

설령 자신의 고민을 남편에게 털어놓으려 해도 남편은 고민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당신 믿음이 떨어졌다”며 “기도해서 해결해라”고 무뚝뚝하게 말하곤 한다. 이쯤 되면 사모들은 남편은 고사하고, 성도들은 물론 다른 사모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할 사연들로 상처투성이가 된다.

사모 상담을 했던 적이 있는 B사모는 “상담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느끼기부터 하는 사모들이 많다”며 “주로 남편과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어느 목회자 사모 세미나에 참석한 300명의 사모를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한 결과 70%가 속앓이를 경험했다는 답변을 했을 정도다.

이런 사모들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가 가장 좋을까? 맹미영 사모(디딤돌교회)는 남편의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면 바쁜 중에도 훌쩍 교외로 가서 차를 한잔하며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해 주는 목사. 사모들은 그런 남편의 사랑의 언어에 목마른 여성이다.

교회 안에서 설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모들도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십’ 때문에 몸살을 앓기도 한다. 옷을 잘 입고 교회에 가면 ‘사치스럽다’고 수군대고, 옷을 못 입으면 ‘감각이 없다’고 쑥덕댄다. 남편을 도와 열심히 사역하면 ‘목사보다 더 설친다’는 말이 나오고, 가만히 있으면 ‘사모가 뭐하고 있냐’고 비난한다. 예배당 앞에 앉으면 너무 나선다고 빈정대고, 뒤에 앉으면 성도들을 감시한다고 투덜댄다. C사모는 이런 사모들의 현실을 말하며 “도무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예장 합동측의 한 목사는 “여신도들이 목사들을 영적 지도자이자 이상적인 남성상을 갖고 대하면서 역으로는 사모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된다”며 “이렇다 보니 교회 여론을 대부분 주도하는 여 집사들에 의해 사모가 말거리가 되고 곤란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설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모들과는 반대로 교회에서 너무 할 일이 많아 힘들어하는 사모들도 있다. 대부분 소형교회가 그렇다. 사모들은 교회 규모가 작을수록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다. 가정 주부는 물론 교역자, 목회자 비서, 기사, 교회사찰, 주방장 등 모든 역할을 감내해야 한다.

이의수 목사(하이패밀리 사무총장)는 “고생은 죽도록 하면서도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하는 게 사모의 자리”라며 “사모들의 마음에 분노가 자리한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모들에 대해 ‘사모의 날’을 제정하자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송길원 교수(숭실대학교기독교학대학원)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뒤안길에서 수많은 사모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나에게 기념일을 제정할 권한을 준다면 제일 먼저 ‘사모의 날’을 만들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을 생각하며 작은 위로나마 주고 싶다는 것이다. 고복희 사모(동선교회)는 “눈물과 시련의 과정을 겪으며 20년의 세월을 보냈다”며 사모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성도들을 친정식구 대하듯 할 것 △눈물과 회개와 기도로 영권을 회복할 것 △마음밭을 옥토로 가꿔 남편의 설교에 은혜를 받을 것 등을 권면했다. 또한 가정 사역 등 남편을 도울 수 있는 전문적인 사역을 위해 차분히 준비하며 내실을 기하는 것이 사모의 바른 자세라고 말했다.

사모가 건강해야 목회자 가정이 건강하고 목회자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하다는 점에서 사모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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