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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유석근 목사의 '알이랑 민족'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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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유석근 목사의 '알이랑 민족'의 위험성
  • 정윤석
  • 승인 2013.10.22 06: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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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국수주의자 만들려나... '알이랑' 찬송가, 용용죽겠지, 태극문양 삼위일체, 대통령 표장의 영적 비밀

Ⅰ. 서론

 

필자는 2002년경 JMS(정명석)단체에 있다가 빠져나온 탈퇴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난데없이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묻고는 “아리랑은 ‘알+이랑’으로서 하나님과 함께라는 뜻이다”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누가 그런 주장을 하느냐 묻고 나서 유석근 목사(예장 합동 알이랑교회)라는 이름을 알게 됐고  나중에 유 목사가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이하 <알이랑민족>, 예루살렘 刊, 2005년)이란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울산의 한 교회 교역자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 교역자는 “성도들이 유석근 목사가 쓴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을 읽고 있다”며 “한국교회에서 유 목사의 사상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지도할 지침을 갖고 있지 못해 혼란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석근 목사에 대한 문의나 궁금증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정보들을 표절해서 책을 냈는데도 베스트 셀러가 됐던 <마지막신호>라는 책자에도 유석근 목사의 책이 인용되고 있다(데이비드 차, <마지막신호>(예영), 2010년, 229쪽). ‘알이랑 민족’이란 책을 인용, “한반도는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마지막 때 쓰시고자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 살고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땅이다”고 썼다.

유 목사의 주장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카페(cafe.daum.net/ALILANG) 등을 통해 적잖게 알려지고 있다. 그의 ‘알이랑 사상’은 <신앙계>(현 <플러스인생>으로 제호변경)에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연재되기도 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가는 유 목사의 주장은 과연 정확하게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주장은 성경적인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가? 이에 이단문제 취재를 17년 동안 해온 필자(기독교포털뉴스, kportalnews.co.kr)는 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도로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유 목사가 갖고 있는 사상의 잘못된 점을 경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비판 텍스트는 유 목사의 책, <알이랑 민족>으로 삼았다.

Ⅱ. 본론

1. <알이랑 민족>에 나타난 주요 정의들
유석근 목사가 책을 통해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한국인이 마지막 때에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택하시고 감추어 놓으신 천손민족, 즉 선민이다는 것이다. 그 명제에 대한 근거를 대기 위해 저자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한 흔적을 저술을 통해 선보인다. 그 중에는 흥미로운 사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무궁화가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는 것이다. 샤론의 꽃, 샤론의 장미는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그는 “한국인은 특별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꽃을 국화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라고 반문한다. 유 목사는 “지구상에서 나라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샤론의 꽃’인 국가는 오직 동방의 대한민국뿐이다”며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정해진 것이다. 한국인은 욕단(성경에 나오는 셈의 후손중 하나다: 편집자주)의 후손으로서 이 땅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선민이다”(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예루살렘 간, 2005년, 73페이지)고 재차 강조한다.

△ 유석근 목사(알이랑교회)

이런 식으로 유석근 목사는 ‘한국인이 천손민족’이라는 근거를 책에서 여러 가지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아리랑은 ‘알+이랑’, ‘하나님과 함께’라는 말이다 △창세기 10장 30절의 스발(새팔)은 최종적으로 동방의 ‘서울’을 예시한 것이다 △셈의 후손인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 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은 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성경상의 욕단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문양 삼태극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무궁화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 봉황을 새겨 넣은 대통령 표장은 ‘예수님은 왕이시다’는 뜻이다 △원시 한자의 창안자가 지나의 한족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 △한국어는 바벨탑 사건 이전까지 세계어였다 △이사야 46:10~13의 동방의 한나라는 대한민국을 지목한 것이다 등이다.

저자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 삼태극 문양, 무궁화, 한국어 등 한국인과 밀접한 문화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인이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근본적 이유가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선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궁화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설명한 다음 이렇게 썼다.

“왜 하느님은 이렇게 ‘자연계시’까지 사용하시어 우리 한국인이 ‘하느님의 택함받은 선민’이라는 사실을 거듭 가르쳐 주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특별계시’인 성경말씀만 갖고는 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이라는 사실을 더디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을 뻔히 아시기 때문이다”(위의 책, 174페이지). 

그러면 저자는 왜 하나님께서 한국인이 선민이라는 것을 이날 이 때까지 감춰놓았다는 것일까? 그는 한국인이 너무 존귀한 백성이라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 감춰 놓았다고 한다(위의 책, 124페이지). 

그 특별하신 목적은 땅끝 예루살렘의 유대 민족에게 능히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명은 오직 동방의 한국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민인 한국인을 감춰온 것은 ‘하나님의 순서’ 때문에도 그렇다고 한다. 저자는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이 있다며 “저녁이 먼저이고 아침이 나중이다. 하느님의 순서는 서쪽에서 시작하고 동쪽에서 종결된다”(위의 책, 124페이지)고 설명한다. 서쪽의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동쪽의 한민족을 통해 그 구원의 길을 완성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는 구원의 길을 완성할 나라는 여러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a nation)’이며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 분명하다(위의 책, 409페이지)고 강조한다. 그는 만약 우리가 이러한 계시를 간과해 버리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인류에게 알리시기 원하는 아주 중요한 진리 하나를 놓치게 될 것이다(위의 책, 96페이지)고 경고한다. 듣기에 따라 한국민족의 선교의식과 사명을 대단히 고취시키고 고양시키는 장점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문제는 없는걸까? 큰 틀에서 3가지 주제를 살펴본 다음 세부 사항 몇가지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2. 유석근 목사의 왜곡된 성경해석과 억측들
1) ‘욕단 한민족 기원설’
먼저 유 목사는 성경상의 욕단과 한민족의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마치 한국인이 하나님의 감춰진 특별한 천손이자 선민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예장 통합측이 1995년 이단으로 규정한 나운몽 씨가 유 목사보다 먼저 언급했다. 나 씨의 주장을 먼저 살펴보자.

“성경상 계보대로 우리 민족은 아담의 후손으로 둘째 아벨인 셋의 계통 노아의 아들 셈의 증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이다. 즉 에벨의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이 서로 갈라진 후 형 벨렉은 아브라함의 조상으로 성경에 드러난 계통이지만 동생 욕단은 감추인 속사람같이 계대가 이어졌다. 마치 형 에서는 아버지의 집에서 드러난 처지였지만 동생 야곱은 동방 하란 땅 어머니의 친정에 가서 숨겨져 살고 있던 처지와 같은 처지다. 이는 곧 유형은 드러나고 신령은 감추이는 이치와 같은 일이다. 이렇게 에서는 겉사람을 상징했고 야곱은 속사람을 상징했다. ··· 이처럼 형 벨렉계의 기업은 동생 욕단계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열매 맺는 백성은 동방에 있음이 확실하다(마 21:43)”(나운몽, <2000년 전통교리 이상 있다>, 복음신문출판국, 1993년, 107~108페이지)

나운몽 씨는 욕단계, 그리스도의 열매 맺는 백성은 동방의 한나라인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한다. 유 목사도 그와 유사한 주장을 한다. “하느님은 분명히 ‘에벨의 온 자손’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만 벨렉의 후손 이스라엘이 앞 단원에서 설명한 세 가지 하느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구원사에서 먼저 부름을 받음으로서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선민’이 되었고, 욕단의 후손은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되었을 뿐이다. 이 두 계열의 선민을 굳이 신학적 용어로서 규정하자면 전자는 ‘명시적 언약백성’, 후자를 ‘묵시적 언약백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는 마치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느님의 선민도 밖으로 드러난 선민이 있고, 안으로 감추인 선민이 있다. 그러나 겉사람보다 속사람이 더 중요하듯, 겉으로 드러난 선민보다 속으로 감추인 선민이 더 소중하다. 그들이 ‘욕단의 후손’인 것이다. 당신은 한번쯤 무엇인가를 감추어 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것이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아주 귀중한 것만 은밀한 곳에 숨겨 둔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중요한 때에 꺼내어 쓴다. 욕단계 선민이 바로 그들이다!”(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예루살렘간, 2005년, 95~96페이지). 

유 목사가 나운몽 씨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매우 유사한 사상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유 목사는 이 욕단의 후손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이동했다(창 10:30)고 하면서 ‘스발’을 ‘새팔’, ‘새벌’, ‘새 밝은 곳’인 배달 나라, 곧 대한민국이라고까지 연결시킨다(알이랑민족, 125쪽). 

그러나 ‘욕단’이 이동한 동편산이 대한민국이라는 주장에 대해 김진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창세기 10장의 욕단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에 대해 살펴보자. 욕단의 아들들이 거한 곳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산이라고 했지, 그것이 끝없이 동방으로 갔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동쪽이나 동방이란 말만 나오면 한국으로 착각하고 있다. 참고로 욕단의 아들들의 이름들은 어원이 현재의 아랍어에 나오는 지명이나 인명과 일치하며 욕단의 후예들은 현재의 아라비아에 그 거처를 정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당시 성경에서 동쪽이라 하면 아라비아를 지칭했다. 셀렙은 현재 예멘족속인 살라프가 거주하는 실립과 동일하며, 하살마펠은 예멘 동쪽의 하드라못과 일치하며, 예라는 달이란 뜻으로 남 아라비아 지방의 신의 이름이며, 하도람은 현재 요르단 북부에서 살던 부족의 이름으로 동일한 이름이 성경에도 나온다 (대상 18:1; 대하 10:18). 우살은 현재의 예멘 수도인 사나의 옛지명이었으며, 디글라는 종려나무란 뜻으로 아라비아에 있는 오아시스중의 하나이며, 오발은 예멘에 있는 지명이며, 오빌은 금의 산지로 유명하여 솔로몬이 에시온 게베르에서 배를 지어 보낸 것을 감안하면 남 아라비아에 위치한 금광이며, 요밥은 남 아라비아의 유하빕 종족과 일치한다. 메사와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산이 어디였는지는 현재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메사와 스발은 남 아라비아에 위치한 지역으로 메사는 서편 지경 한계, 스발은 동편 지경한계를 말한다고 본다”(김진태, <창세기에 관련된 오해 (3): 한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예인가?>, 얼라이언스대학원 소논문, 2002년 10월).

성경에 동방, 동편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대한민국으로 연결시키는 습성이 결국 ‘욕단이 거하는 동편산’을 한국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성경을 봐도 그렇다. 창 10:26~30은 욕단의 자녀들,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 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 등 욕단의 아들들이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라고 했지 그들이 동편산으로 끝없이 이동해 대한민국까지 왔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유 목사는 ‘욕단’에 대해 설명하며 자꾸 ‘속으로 감추인 선민’을 찾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새언약(신약성경)에서 ‘속으로 감추인 선민’은 결코 혈통적으로 나올 수가 없다. 거듭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된다. 그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고 하셨다. 혈통적 선민이 이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브라질 사람이나, 재벌이나 계약직 종사자나 모두 다 한성령으로 한몸 한지체를 이루게 된다는 게 성경이 말하는 핵심 사상이다(고전 12:13).

2) 동방 한국론
유 목사는 이사야 46장 11절을 해설하면서도 ‘동방 땅끝이 극동의 한반도’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여기서 ‘동방’이란 말과 ‘먼나라’라는 말, 두 곳에 밑줄을 치라. 하느님은 ‘동방의 먼나라’에서 그분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냥 ‘동방’이 아니고 ‘먼 나라’ 동방이다. 즉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가 뜨는 ‘동방’에 있는 나라로서 그 나라는 ‘먼땅’에 있는 동방의 나라다. 그곳은 어디인가? 극동의 한반도이다!”( 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예루살렘간, 2005년, 402쪽). 

“하느님은 1세기에도 동방에서 일단의 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시어 유대인의 왕, 곧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복된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게 하셨다(마 2:1~12). 실로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기이한 사건이었다. 바로 그때와 동일한 양상의 사건이 다시 한번 마지막 세기에 ‘해돋는 데’, ‘곧 동방의 한나라에 의해 극적으로 재연될 것이다(전 1:9~10)”(유석근, <알이랑고개를 너머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간, 2009년, 29쪽). 

▲ 정명석, <구원의 말씀>(229쪽)

그러나 ‘성경의 동방=한국’이라는 유 목사의 해석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도 정통교회보다 이단단체들, 그것도 그냥 이단이 아니라 ‘통일교(문선명)’, ‘JMS(정명석)’, ‘안상홍 증인회’, ‘신천지(이만희)’, ‘영생교(조희성)’ 등 자신을 ‘하나님’, 또는 ‘재림주’라 주장하는 자들의 해석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유 목사의 ‘동방론’을 그대로 따르면 정통교인조차 본의 아니게 통일교 등 이단 사상을 그대로 습득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런 경계심을 갖고 이사야 46:11, 이 똑같은 구절을 놓고 자칭 하나님·재림주들을 믿고 따르는 통일교 등 이단단체의 주장을 살펴보자.

통일교는 원리강론에서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문선명, 원리강론, 1966년 초판, 550쪽)고 주장한다. 이만희 씨를 보혜사·이긴자라고 주장하는 신천지측의 책자인 <신탄>(1985)도 363페이지에 이사야 46:11을 언급하며 “이상의 성구에 나타난 결론은 하나같이 동방이요, 해돋는 곳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천사는 동방의 해 돋는 나라에서 출현하였다. 하나님의 모략을 성취할 사자는 동방에서 부름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조희성 교주의 영생교측 신도가 쓴 <단군선민의 역사>(1991년)에도 동방은 한국이라고 주장한다(38~39페이지).

여신도 성폭행혐의로 수감생활 중인 정명석 또한 이사야서를 해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 돋는 데서 올라왔다는 것은 해 돋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인치는 역사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예수님 당세 때는 이스라엘이었고 재림 때는 동방인 아시아를 말한다. 초림주는 서남 아시아인 이스라엘에서 오셨고, 재림주는 극동아시아인 해돋는 나라 한국에서 온다. 이와 같이 메시아는 알파와 오메가로 동방에서 온다. 옛날에도 해는 동쪽에서 떠올라 점점 서쪽으로 지듯이 초림주 때나 재림주 때나 동방에서 메시아가 나고 그 복음이 동방에서 점점 저방으로 전파하며 간다. 또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동방에 독수리를 보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말씀하셨다. 신약 때는 예수님을 보내어 말씀하셨다. 동방에 독수리를 보낸다는 말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재림을 예언한 말씀도 된다”(정명석, <구원의 말씀> Ⅱ권, 도서출판 명, 2005년, 228~229페이지). 

아직 유석근 목사의 ‘동방론’의 위험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안상홍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신도들도 성경의 동방 땅끝을 ‘한국’이라고 해석한다.

“성경의 예언을 따라 임하신 안상홍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사야서 46장의 독수리는 사체를 먹기에 하나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이사야서 46장 11절) 동방의 독수리는 구원자께서 동방나라에 사람으로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 안상홍님께서 친히 사람되어 오셨구요.”(어머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사이월드 블로그 http://www.cyworld.com/elohista/13789680). 

이외에도 한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재림주들이 성경의 ‘동방’을 한국이라고 해석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유석근 목사가 고수하고 있는 ‘동방론’은 그의 독창적 주장이기 보다 이미 교주를 신격화하고 있는 곳에서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통교회 성도들은 유 목사의 동방론을 경계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동방은 무엇인가? 성경의 동, 서, 남, 북 등 방향을 가르키는 지명들은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의 지역들을 지칭하고 있는데, 동방은 팔레스타인 등 동남쪽에 펼쳐 있는 아라비아의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기독교문사, 기독교 대백과 4권, p. 594). 동방은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의 성구들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다음의 성구들의 동방에 한국을 대치시켜 보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동방사람의 땅에 이르러"(창 11:2).
"동방 해 돋는 편에 진칠 자는 그 군대대로 유다의 진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족장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민 2:3).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수 12:1).
"동방의 경계는 요단이니"(수 18:20).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삿 6:33).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사 2:6).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 1:3).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겔 47:18).

동방이 한국이라면 바벨탑을 동방에 세웠다는 말이 되며(창 11:2), 유다의 진기는 동방의 해 돋는 편에 진쳤으니 한국 땅에 진쳤다는 말이 되며(민 2:3),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 때 경배하러 온 동방의 박사들도 한국 사람들이라는 말이 된다(마 1:2). 성경 어느 곳에도 동방을 한국이라고 해석된 곳은 없다(진용식 목사, <안상홍 증인회의 실체는>, 도서출판 성산, 1999년). 

그런데도 유석근 목사의 어처구니 없는 동방론이 매력을 끄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 자주 ‘동방’이란 이름으로 거론됐기 때문일 것이다. 타고르의 시에서도 ‘동방의 등불’이라고 언급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나라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의 ‘동방’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타고르가 ‘동방’이라고 했다고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고 ‘성경의 동방’을 한국이라고 해석하고 싶다면 욥도 한국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기 1:3) 일컬었다. 성경의 ‘동방 땅끝=한국’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야 성경을 성경답게 보게 된다.

3) ‘아리랑’ 찬송가론, 태극문양 삼위일체론
아리랑 찬송가론
<알이랑 민족>에는 저자의 지나친 억측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큰 억측은 아리랑은 ‘알+이랑’, ‘하나님과 함께’라며 ‘아리랑’이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찬송가라는 설명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알님→하늘님→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 ‘하느님’이다. •••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예, 갑돌이랑=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갑순이와 함께). 따라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예루살렘간, 2005년, 33페이지). 

“아리랑은 놀랍게도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홍수 후 셈계의 일신신앙을 가지고 동방으로 이동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31페이지).

하지만 저자의 주장이 맞으려면 아리랑의 ‘’이 성경이 계시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인가에 대해 입증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찬송가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알’이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라는 개념이라면, 또는 이슬람의 신 ‘알라신’의 개념이라면 이는 찬송가일 수 없다.

허호익 교수(대전신대)는 아리랑의 ‘알’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상에 대해 “평소 한국사상에 관심이 많아 ‘알이랑’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었다”며 “그러나 ‘아리랑이 하나님과 함께를 의미한다’는 해석은 성경과는 관계없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한국 신화에 ‘알’이 많이 나오는데 그 대부분이 천신이 아니고 지신, 땅의 신”이라며 “물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개념이 있다 해도 한국인의 ‘알’은 농사와 관계된 개념이다”고 설명했다. ‘알이랑’이 하나님과 함께, 그것도 성경이 계시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라는 개념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진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이란 개념은 성경적인 유일신 개념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었다. 우리 고어의 한알 혹은 한울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주를 큰 알로 본 것이며 우주 자체를 신격화한데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조물주의 개념과 한알(울) 님의 개념은 별개의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한알(울)님의 개념은 타민족들에게도 있었던 흔한 개념이다. 조물주의 개념은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기독교와 함께 우리 말에 들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김진태, <창세기에 관련된 오해 (3): 한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예인가?>, 얼라이언스대학원 소논문, 2002년 10월).

아리랑이 찬송가이려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신앙과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일 아리랑이 찬송가라면 아리랑에 종종 등장하는 ‘스리랑’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아라리가 났네’는 뭔가?

사실 아리랑이 하나님과 함께라는 찬송가이든, 복음성가이든 그것은 현재 우리의 신앙과 하등 관계가 없다. 제우스 등 다양한 신을 믿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바울은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22)고 표현한다. 혹여 아리랑이 하나님을 찬송한 찬송가였다 치자. 그것이 종교성이 많다는 의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리랑을 전혀 부르지 않고 알지 못하는 남미 아마존의 부족들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늘 백성, 천손이 된다. 아무리 아리랑을 부르던 천손 민족이라고 자랑하더라도 그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이게 새언약(신약)의 원리다. 그런 점에서 유 목사의 ‘아리랑 찬송가설’은 매우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 태극문양 삼위일체론
유 목사는 한국의 고대 문화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삼위일체론’이나 성경의 특별계시와의 일치점을 찾는데 주력한다. 그 이유는 한민족이 감추인 욕단계 선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민이 욕단계 선민임을 입증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언약에 속한 성도들에게는 매우 무의미한 행위라는 것을 이미 밝혔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유 목사의 한민족의 고대 원형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사상과의 연관성을 주목해서 보기 바란다.

“(한국의 전통문양) ‘삼태극’은 단군이전부터 우리 알이랑 민족 배달겨레가 섬겨왔던 삼일신(三一神) 신앙, 즉 천일(성부), 지일(성령), 태일(성자)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데 욕단계 선민의 나라 통일 대한민국은 사상 전례없는 복음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삼태극’은 선택받은 백성인 한민족에게 ‘하느님 백성의 깃발’로서 가장 적합하다. ··· 실로 우리 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이라는 사실은 이상 살펴본 바처럼 특별계시인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한민족의 전통문양 ‘삼태극’까지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알이랑 민족, 291쪽).

저자의 태극문양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는 신앙은 자칭 재림주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자칭 재림예수라며 신도들의 헌금을 갈취하다가 사기죄로 구속당하고 옥중에서 사망한 구인회 씨는 “태극기의 태극은 우주 본체론적인 최고의 원리에서 기인되었다 하였으니 우주 본체론적인 최고 원리는 즉 우주 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으로 태극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다··· 태극안에 음양설이나, 불의 두가지 색이나,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라는 말이나 다 같은 설이라 할 수 있으므로 태극 안에 홍색(붉은색)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청색은 예수님의 형상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은 눈으로 볼 수 있다.”(최총일, <새하늘과 새땅 지상 천국은 재림예수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성광출판사, 1999년, 486~487쪽).

물론 유 목사는 ‘삼태극’을, 구인회 씨는 일반 태극 문양을 말하는 차이가 있을뿐 그 개념에 있어서는 유사한 것이다.

4) 기타 황당한 주장들
다음은 유석근 목사가 정말 ‘목회자’인지, 정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예장 합동측 목회자인지 의심스런 성경해석을 살펴보겠다.

- “저녁이 먼저이고 아침이 나중이다”
유 목사는 지금까지 선민인 한국인을 감춰온 것은 ‘하나님의 순서’ 때문에도 그렇다고 한다. 저자는 창세기에 보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이 있다며 “저녁이 먼저이고 아침이 나중이다. 하느님의 순서는 서쪽에서 시작하고 동쪽에서 종결된다”고 설명한다(124페이지). 서쪽의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의 길을 여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동쪽의 한민족을 통해 그 구원의 길을 완성할 계획이라는 것이다(125페이지). 하나님의 순서상 서쪽이 먼저, 그리고 동쪽이 나중이어서 한국인을 감춰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한 말씀에서 하루의 시작을 저녁으로 보는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나온 어법이지 마지막 때 동쪽의 한민족을 선택해서 구원의 길을 완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에는 “해 돋는 데(동쪽)서부터 해지는 데(서쪽)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 113:3)는 말씀도 있다. 유 목사는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꿰 맞추는 행각을 중단해야 한다. 125쪽에 ‘구원의 길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 부분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구원의 길은 이미 예수께서 닦아 놓으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20). 예수께서는 구원의 길을 이미 완성해 놓으셨다. 그리스도인이 된 인간은 그 누구나 그 길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며 가면 되는 것이다. 욕단계 선민만이 그 구원의 길을 완성한다는 건 성경적 사상이 아니다.

- “대통령 표장의 영적 비밀, ‘예수님은 왕이시다?’”

▲ <알이랑민족> 176쪽

유 목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표장’(무궁화를 중앙에 놓고 좌우에 봉황이 있는 그림)을 설명하며 무궁화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 봉황을 새겨 넣은 것에 영적인 의미가 있다며 이를 ‘예수님은 왕이시다’고 해석한다(175~176쪽).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로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꽃’, ‘봉황은 왕을 상징’하니 두가지를 같이 묶으면 “우리 나라 대통령 문장은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예수님은 왕이시다”(저자 책 176쪽).

그런데 176쪽에서 봉황은 ‘왕’을 상징한다던 유 목사는 177쪽으로 가서는 갑작스레 “무궁화 좌우의 봉황새는 영적 존재인 ‘천사’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즉 ‘왕’에서 ‘천사’로 갑작스레 상징을 유 목사의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구절도 덧붙인다. “그렇다면 ‘신조’ 곧 ‘하느님의 새’인 ‘봉’은 무엇일까? 그것은 ‘천사’를 뜻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항상 ‘두 천사’와 같이 나타나신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행 1:10, 요 20:12, 눅 24:4, 창 18:2). 무궁화 좌우에 있는 봉황새 두 마리는 바로 그 두천사를 상징한다”(177쪽).

뭐라고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이하의 사고방식이다. 예수님이 항상 두 천사와 같이 나타나셨다는 그의 주장이 맞는가? 그가 근거로 제시한 성경구절을 읽어보면 아니라는 게 명확히 드러난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행 1:10). 이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두 천사와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제자들 곁에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섰다는 말씀이다. 자세히 성경을 보라. 예수님이 나타나신 상황이 아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요 20:12, 눅 24:4도 마찬가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빈 무덤에 마리아가 찾아갔는데 예수님은 안 계시고 마리아가 울고 있었다. 그 때 두 천사가 나타났다는 의미다. 성경을 정확히 봐야 한다! 창 18:2는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 장면이다. 예수께서 두 천사와 항상 같이 나타나신다고 근거를 삼을 수 있는 구절이 결코 아니다.

“(하느님께서) 말세에 이 땅으로 반드시 임재하신다?”
유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느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숨겨 두셨던 자기 백성 욕단계 선민을 찾아 말세에 이 땅으로 반드시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방문이 될 것이다. 그 결과 과거에 어느 민족, 어떤 나라에서도 목도할 수 없었던 위대한 영적 부흥의 역사가 동방 한국에서 폭발할 것이다. 셈의 장막은 하느님의 거처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거처인 셈의 장막을 찾아 마지막 때에 반드시 동방으로 오실 것이다. ··· 그때가 오면 만국백성들이 하느님의 거처인 셈의 장막으로 말씀의 떡과 성령의 생수를 구하고자 재물을 들고 몰려 온 것이다.”(182쪽).

유 목사는 셈의 장막이 하나님의 거처라며 마지막 때에 반드시 당신의 거처인 셈의 장막, 동방으로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말씀하는 사상과는 다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거처는 이제 한 민족, 혈통적 선민에 국한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이기 때문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다른 것을 세울 수 없다. 그런데도 유 목사는 셈의 장막으로 온갖 재물을 갖고 와서 말씀과 성령의 생수를 구하고자 만국백성들이 몰려 온다고 말한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사상은 신천지 신도들이나 주장하는 것이다. 김미경 실장(대전종교문제연구소 상담실)은 “신천지인들은 그저 조금만 버티면 자신이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서 왕같은 제사장은 이런 의미이다. ‘내가 아무리 못 나고, 못 배우고, 돈이 없고, 나이가 많고, 부족해도 14만 4천명 안에만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똑똑하고 돈많은 부자들이 와서 제발 신천지 성경공부를 시켜 달라고 하면서 사정할 때가 올 것이다.”(김미경 외 13인 공저, <이단신천지 대처법 ATOZ>, 기독교포털뉴스 간, 2013년, 18쪽)
고 쓴 바 있다. 신천지 사상 중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돈을 싸들고 동방 땅끝인 한국으로 몰려 온다는 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만희 씨가 신천지인들을 속이고 사탕발림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신천지신도 14만4천이 되면 신천신지가 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말씀을 배우러 돈 보따리를 싸들고 우리나라에 오게 되며. 그렇게 되면 신천지인들은 왕과 같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고 한다.”(안약의 블로그, 신천지는 사이비(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orei). 

도대체 유 목사가 “말씀의 떡과 성령의 생수를 구하고자 재물을 들고 몰려 온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말씀,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고, 팔 수 있다는 의미인가?

- ‘용, 용, 죽겠지!’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해온 민족?
유 목사의 억측은 ‘용용 죽겠지’에 이르면 말문이 막힐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는 “‘용’은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다(계 20:2). 그런데 우리 한국인은 수천 년 이상 ‘용(龍), 용(龍), 죽겠지!’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해온 민족이다. 그 고백대로 한국인은 말세에 성령의 큰 권능으로 악한 마귀, 용의 나라에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이다. 말세에 한국에서 늦은비 성령의 역사로 큰 부흥이 있을 것이다··· 실로 마지막 때에 사단의 왕국은 알이랑 민족 한국백성으로 인해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알이랑 민족 한국백성은 또 하나의 선민으로서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쓰임 받을 백성이요,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할 민족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347~348쪽)고 말한다.

말 자체도 우스울뿐더러 마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입지 않았나? 그런데 말세에 무슨 치명타를 그것도 한국인만이 더 가하게 된다는 것인가? 그리고 '용, 용, 죽겠지'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왕따'시키거나 약올릴 때 사용하는 용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입으로 시인하고 선포해온 민족'이라는 유 목사의 말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말에 매우 신기하고 탁월하다는 의미를 담아 ‘용하다’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을 쓰는 한국인은 바로 ‘용’(사탄), 악한 마귀를 인정하게 되는 건가? ‘용용 죽겠지’란 고백을 한 대한민국 민족이 마귀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라면 ‘용하다’는 말을 많이 써온 한국인은 한마디 말장난으로 귀신을 인정하게 되는건가? 이처럼 유 목사의 연구와 해석은 과장된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 사탄의 견고한 진
유 목사에게서 신사도 계열의 인사들이 보여주는 ‘백투예루살렘’ 사상이 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사상은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지구 한바퀴를 돌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전파되면 세상 끝이 온다는 사상으로서 이를 가장 가로막는 적대 세력인 예루살렘 주변의 타종교권, 특히 이슬람 세력을 사탄의 견고한 진으로 보며 공격적 포교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땅밝기가 백투 예루살렘 사상과도 무관치 않다.

예장 합동측이 교류금지하기로 규정한 인터콥의 최바울 대표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또한 사단의 세력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직경 3000Km 전체를 강한 어두움의 진을 형성하여 장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바로 거룩한 곳에서 앉아있는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마지막 어둠의 세력, 미운 물건, 즉 가증한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세계를 호령하며 위엄을 떨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천군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시어 적그리스도를 멸하고 인류역사를 마감시킬 것입니다, 사단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봉쇄하고 어둠의 진을 치고 지금까지 있는 것입니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405쪽). 


그런데 이런 유사한 사상이 유 목사에게서도 보인다.
“한국교회는 ‘사단의 견고한 진’이 있는 아시아 서쪽의 공산주의 문화권(지나), 힌두 및 불교문화권(인도·동남아), 이슬람 문화권(중동)을 선교적 과제로 삼아 복음의 깃발을 들고 서쪽으로 진군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서쪽의 땅끝인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들어가 복음의 깃발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면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알이랑 민족>, 348쪽). 

이런 유 목사의 백투 예루살렘 사상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타 종교권에 매우 공격적 포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교를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권 선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백투예루살렘식 관점을 갖고 있다보면 타종교·문화권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불쌍한 민족으로 보는 게 아니라 깨뜨리고 파괴해야 할 ‘사단의 견고한 진’으로 분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관점을 가진 이들은 타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사상, 배경,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연구하기보다 오로지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시각을 갖고 접근하므로 곧잘 선교현장에서 마찰을 빚어왔다. 타문화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배타적 선교방식으로 가게 되는 위험한 접근 방식이라는 점이다.

둘째, 성경의 ‘땅 끝’을 예루살렘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서 ‘땅 끝’은 어느 특정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땅 끝’이라는 의미는 거리적으로 매우 먼 곳을 말할 수도 있다. 또한 모든 곳, 세계 전체를 말하고 싶을 때에 관용구로서 ‘땅 끝’을 언급할 수도 있다. ‘땅 끝’이 먼 거리를 뜻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2).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롬 10:18).

‘땅 끝’이 온 세계 전체를 뜻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이인규, <땅끝이 예루살렘인가?> 네이버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http://cafe.naver.com/anyquestion) 카페 참고). 

김재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는 복음의 서진운동, 백투예루살렘에 대해 “복음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향해서 전파돼야 하고 그 귀결점은 예루살렘이라는 서진 운동 해석과 주장은 분명히 수정돼야 합니다. 복음은 땅끝까지 나가야 합니다. 어느 한 방향, 특히 서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주적이고 전방향적이고 총체적이라야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나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2011년 9월 19일 크리스찬Q&A 사이트).

김성태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선교학)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복음의 서진 운동 즉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하게 될 때 전략적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것은 소위 21세기 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전략적 영적 전쟁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래 전략적 영적 전쟁이란 피터 와그너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사도개혁운동의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이론이다. ···

선교는 이 이론에 있어서 세계의 중요 지역을 장악하는 지역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고 쫓아내면 되는데 이렇게 될 때 선교현장의 교회설립과 교회 성장 그리고 모든 선교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 지역을 장악하는 지역 악마을 쫓아내고,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 그 지역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론으로 선교를 수행하면은 우선적으로 단기정탐 팀을 보내어 그 지역을 장악하는 악마의 정체를 규명하고, 그 지역의 교회지도자들과 연합하여 기도운동을 벌여야 한다. 지역 악마의 정체를 알아내고, 기도운동으로 악마가 추방되었다는 확신이 들게 될 때 대규모의 선교 팀을 조직하여 그 지역 전역으로 흩어져서 각종 선교사역을 수행하게 된다.”

이외에도 유 목사는 하나님이 에덴에서 인류에게 주셨던 최초의 언어가 한국어였다는 말도 한다. 한민족의 조상인 욕단이 바벨론의 언어 혼란으로 인한 대규모의 인구 분산이 발생하기 전에 먼저 극동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가 바벨탑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에덴의 언어라는 설명이다(358쪽 참고).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창 11:9). 하나님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고 분명히 기록했는데 욕단이 있던 땅은 ‘온 땅’이 아니면 천상의 땅이라는 건가?

▲ 한국어가 에덴에서 시작했다는 <알이랑민족>(358쪽)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짝이 있게 만드셨(사 34:14~16)으니 ‘선민’도 당연히 그 짝이 없으면 안 된다(158페이지)는 그의 주장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짝은 짐승의 짝이지 선민의 짝을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개역 한글판의 경우 오해할 수도 있다. 쉽게 풀어놓은 성경을 보면 금방 의미가 해결된다.
“[공동번역] 야훼의 기록을 찾아내어 읽어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그것들은 직접 야훼의 입에서 떨어진 분부를 받아 그의 입김으로 몰려온 것들이다.
[표준새번역] 주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주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성경]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동물들 중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되도록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그것들을 함께 모으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이렇다. 에돔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 그 결과 에돔의 땅이 황무하게 된다. 그 황무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은 살 수 없고, 동물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된다’고 말이다. 이사야 34장 16절의 ‘짝’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해 주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장운철,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이야기>, 부흥과개혁사, 2013년, 71쪽). 

성경에선 지금 심판의 결과 황무지가 된 곳에 짐승의 짝이 없는 것이 없도록 모여 산다는 것인데 유 목사는 성경의 본 뜻과 무관하게 ‘선민의 짝’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알이랑민족>에는 기독교적 국수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사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유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동쪽의 욕단계 선민 한민족을 통해 그 구원의 길을 완성할 것이다!”(125페이지), “이스라엘 구원은 이른바 ‘글로벌 프로젝트’에 의해 성취되지 않고 ‘한나라’가 복음을 전할 것이다”(409페이지)고 한다. 그는 <알이랑민족>을 통해 수없이 한국인을 ‘천손민족’이라고 강조한다. ‘감추어 놓으신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민’이라는 말도 다수 등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전호진 교수(한반도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예수원의 토레이 신부가 ‘욕단은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다’고 주장한 바 있어서 그에게 직접 확인하니 ‘단순한 추측일뿐 심도있는 연구 결과가 아니다’고 답변한 바 있었다”며 “특정 민족을 ‘혈통적 선민’이라며 특수화하는 것은 종교적 국수주의로서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선민’과는 다른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교적 국수주의는 역사적으로 세계를 비극으로 몰아 넣는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았다”며 “세계화 시대에 웬 종교적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이냐?”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니까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쓰신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하나님은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든 상관없이 진실무망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지 특수 민족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다”며 “그런 민족의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고 비판했다(전호진, 2009년 7월경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 

Ⅲ. 결론
2005년경 필자는 청소년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목사가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때 그 목회자는 자신이 서울의 용산에서 사역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용산의 ‘용’(龍)은 성경에서 사탄을 상징하는 ‘용’자를 씁니다. 그래서인지 용산에는 유난히 악한 영의 역사와 기운이 강하고 이에 따라 퇴폐향락업소와 각종 범죄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가 더욱 영적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영적 긴장을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는 이 목회자의 주장에는 매우 미신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신앙생활 현장에서는 의외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미신이 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쌍용’이라는 회사에 근무하는 크리스천에게 “용은 사탄인데 어떻게 일룡도 아니고 쌍룡에 근무하느냐?”며 핀잔을 주는 소위 크리스천부터 자신의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다고 심각하게 개명을 고려하는 크리스천까지 참 다양한 미신적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명칭 자체에 따라 사탄의 세력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얘기가 맞다면 용띠 해에 용산에서 태어나 이름에 ‘용’자가 들어가고 용산초·중·고와 용인대학을 졸업한 후 주식회사 쌍용그룹에 취직한 사람은 구원받기 어려워진다는 말도 가능해진다. 이런 사람은 용, 악한 영적 세력 속에 태어나서 살고 있고 밥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생활 속에는 알게 모르게 성경적 사고보다 성경이 금하고 비판하고 경계하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딤전 4:7)를 바탕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유석근 목사의 ‘알이랑 민족’도 그와 다르지 않다. 비록 그가 ‘목회자’이고 예장 합동측이라는 건전한 교단에 소속하고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등 정통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 해도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는 ‘알이랑 민족’을 통해 너무도 허탄한 신화, 성경에 천착하지 않은 자신의 나름대로의 고증을 통해 한국인이 천손이요 선민이라는 혈연적 선민 사상을 심어 주고 있다.

유석근 목사는 황인•흑인•백인이 인종과 종족과 국가를 초월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는 새언약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만이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받는 천손의 후예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알이랑민족>도 천손이라는 한민족에게만 관심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가 ‘천손’, ‘또 하나의 선민’을 찾는 데 있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만민이 얻을 수 있는 ‘새언약’이다. 이것이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다. 그런데 <알이랑민족>을 읽다 보면 그 진리를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저자는 “한민족이 이 땅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명백히 계시하셨다”며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 계시에 반응해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는 심지어 “이 계시를 경외하며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말일에 한국 백성에게서 찾으시는 믿음이다”(422페이지)고 선언한다. 유 목사의 주장은 필자가 보기에 자칫 잘못하면 믿음의 본질마저 희석시킬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새언약의 사람들이다. 그 새언약은 예수를 믿는 모든 족속에게, 유대인, 헬라인, 자유자, 종, 흑인, 백인, 인종과 민족과 나라를 초월해서 주어지는 언약이다. 결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목사 아들도, 권사 아들도 새언약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설령 유 목사 말대로 대한민국 국민이 천손의 후예이고 가장 고귀한, 감추어진 선민이라 해도 그것과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지는 새언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거듭남은 혈통으로 받는 언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언약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로 세워진 언약이고 그것도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세운 것이다. 이 언약을 믿고 갖고 있는 사람이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저자는 말일에 한국 백성에게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이란 게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심히 우려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아리랑신학>(대한기독교서회刊)의 저자 정행업 교수(대전신대)는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적 입장을 갖고, 성경의 본질적인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음을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연구하는 것은 권장하고 싶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아리랑의 의미가 ‘하나님과 함께’라든지, ‘성경 창세기 10장 25절의 욕단을 단군’이라고 본다든지 하는 것은 고증학적으로 매우 빈약하여 오히려 기독교인들에 대한 신뢰성과 성서의 권위를 희석시키고 저하시키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이 문제점을 갖고 있는 유석근 목사에 대해 한국교회 성도들은 경계하고 특히 그가 지은 <알이랑 민족>이라는 책은 비성경적이고 국수적·배타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책자로서 이를 구매해 읽거나 그 책을 타인에게 권하거나 이 책자의 저자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끝>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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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예루살렘 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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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진, 2009년 7월경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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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2015-12-27 22:58:28
네 다음 프리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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