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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오대양 사건 타살 의혹 주장 위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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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오대양 사건 타살 의혹 주장 위법 아니다"
  • 정윤석
  • 승인 2014.04.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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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결과 배치됐다 해도 신빙성 높은 자료에 의한 공익 목적의 주장

수사기관은 집단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변호사는 이를 인정치 않고 공적인 장소에서 '타살'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개인과 회사가 이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이 사건에 대해 사법기관은 원고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과 관련, 타살 의혹을 제기한 박찬종 변호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18년 전인 1996년 10월 11일 나온 선고였다.

최근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다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소위 구원파(일명 기독교복음침례회, 정통 기독교한국침례회와 무관한 이단단체) 유병언 씨(73)측 일가로 알려지면서 ‘오대양 사건’의 감춰진 의혹들을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본 사이트 기독교포털뉴스(www.kportalnews.co.kr)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당시 있었던 의혹들을 다시 한번 재조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박찬종 변호사(전 국회의원)가 승소한 대법원의 판결문, ‘국회 제5공화국에있어서의정치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이하 5공 특위)가 1988년 12월 1일부터 1989년 3월 23일까지 조사한 보고서 자료, 구원파 탈퇴자 인터뷰 등을 통해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박찬종 변호사의 기자회견을 1면 주요 기사로 게재한 1991년 7월 20일자 한겨레 신문

다음 내용은 박찬종 변호사가 승소한 대법 판결문(사건번호 1995 다 36239)과 1991년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과 관련한 기사들을 기자의 글로 정리한 것이다.

검찰의 오대양 사건에 대한 결론(1987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집단 자살로 정리)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32명(남자 4명, 여자 28명)의 집단 자살’이라는 데 맞춰져 있다. 박순자라는 여성이 1984년 오대양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초기 기독교 사회의 경제 형태인 ‘통용(通用)’의 원리에 따라 생활했다. 회사 운영을 위해 이들은 거액의 사채를 빌려 썼고(당시 170억원으로 추정) 변제가 불가능해지고 다른 비리들이 폭로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집단자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모인 곳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오대양 용인 공장. 오대양의 직원 중 4명이 박순자를 비롯한 28명의 변사자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했다. 남은 사람들도 최종적으로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결론은 32명의 변사자 중에 타살된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집단 자살을 위한 것일 뿐 제 3자 개입에 의한 타살을 인정하지 않는 결론이었다. 살인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물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결론이었다. 일명 ‘집단 자살설’로 정리할 수 있다.

▲ 경향신문 1987년 12월 29일자

당시 오대양 사건에 대한 여론과 재조사
검찰의 이같은 수사결과에도 국민들의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7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집단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주장이 끝없이 제기된 것이다. 일명 타살설, 또는 타살 후 이동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국회 제5공화국에있어서의정치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이하 5공 특위)가 1988년 12월 1일부터 1989년 3월 23일까지 위 집단변사자들의 타살가능성, 오대양과 기독교복음침례회와의 관련 및 이들과 제5공화국 정치세력과의 유착 여부를 조사했다.

그러나 5공 특위의 조사는 “변사자들 중 일부가 타살된 후 자살로 가장되거나 외부인에 의해 성폭행 당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가 미흡하였다”고 판단했을 뿐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박찬종 변호사의 당시 발언
박찬종 변호사의 경우 ‘타살설’을 제기한 경우였다. 박 변호사는 1991년 7월부터 1992년 3월까지 10차례의 기자회견·교회 강연회 등 공적인 자리에서 ‘오대양 사건 배후엔 세모 사장인 유병언 씨가 관련돼 있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오대양 사장이었던 박순자 씨가 끌어들인 2백억원 대의 사채 중 일부가 (주) 세모로 흘러 들어갔다 △변사자 32명이 끌어들인 사채의 일부를 유병언 씨측이(받아) 정치권에 정치자금으로 헌납했다 △유병언 씨측이 신도들의 돈 2억6천500만원을 사취한 사실이 있었는데 권력층의 지시로 수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구원파가 오대양의 배후 세력이다 △박순자는 오대양교라는 별개 종교의 교주가 아니라 구원파의 지역 책임자 정도였다 △오대양 사건의 변사자는 타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타살설에 가장 무게를 실어주는 증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제시됐다. 여성 변사자 28명 중 12명의 몸에서 정액이 검출됐다(경향신문 1991년 8월 21일자). 오대양 변사사건의 현장에 (경찰이)도착하기 전 시체가 있던 다락방에 올라가 시체 손발의 결박을 풀거나 입속을 틀어 막은 휴지를 꺼내는 등 시체의 위치나 모양 등의 상태를 바꾸고 가방을 꺼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다(변사 현장 임의 변경, 시체 위치 변경 등)을 들었다(동아일보 1991년 8월 3일자) △31명의 변사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최종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모 씨의 경우도 타살혐의가 짙은데 목을 매 자살한 경우 시체에 배설물이 발견되는 데 이 씨의 시체에는 배설 흔적이 없는 점 등이 제시됐다.

▲ 월간 조선 2012년 1월자 기사(전두환 전 대통령과 유병언 씨)

박 변호사 상대로 15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한 유병언·(주)세모측의 주장
박찬종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유병언 씨측은 △박찬종 의원의 주장은 자칭 종교연구가 A 씨의 주장과 같은 내용으로서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주)세모는 특정종교와 관련을 맺지 않은 기업이며 다만 직원들의 개인 성향에 따라 오대양과 관련을 맺어 왔는지는 사장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대양과 거래 영수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 관계를 맺은 바는 없다 △권신찬 씨(유병언 씨의 장인)의 요청을 받고 구원파측 삼각지교회에서 몇 차례 특강을 한 적은 있으나 1980년 이후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며 박 변호사를 민형사상 고소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피고측이 적시한 사실들은 대부분 진실에 부합한 사실로 보인다. 세목에 있어서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피고의 발언이 오대양 사건 관계자들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및 5공특위에서의 조사내용을 근거로 하였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불법행위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수사기관에 의한 수사결과 발표에 배치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라면 그러한 사실이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나, 이는 독자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오대양 사건에 관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유병언 씨와 (주)세모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음은 1996년 10월 11일 판결한 대법원 판결문 전문이다.

손해배상(기)
[대법원 1996.10.11, 선고, 95다36329, 판결]
【판시사항】
[1]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의 위법성조각사유인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판단 기준
[2] 소위 '오대양 사건'에 관한 국회의원의 발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형사상이나 민사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그 행위에 위법성이 없으며 또한 진실하다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며, 이 경우에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여부는 당해 적시 사실의 구체적 내용,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고, 행위자의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동기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소위 '오대양 사건'에 관한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강연, 후보자 합동연설회 등에서의 발언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진실에 부합되거나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751조,
형법 제307조,
제310조

[2]

민법 제751조,
형법 제307조,
제310조
【참조판례】

[1][2]
대법원 1995. 11. 10. 선고 94도1942 판결(공1995하, 3961),

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공1996상, 1627),

대법원 1996. 5. 28 선고 94다33828 판결(공1996하, 1973)

【전문】
【원고,상고인】
유병언, (주)세모
【피고,피상고인】
박찬종
【원심판결】
서울고법 1995. 7. 12. 선고 94나40873 판결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의 이유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들에 관하여 적시한 사실과 그 사실적시의 방법 및 경위 등은 다음과 같다.

가. 소외 1(오대양 집단 변사사건시 사망한 박순자 씨를 의미함: 편집자주)은 1984. 5.경 주식회사 오대양(이하 오대양이라 한다.)을 설립하고, 오대양 직원들과 함께 초기 기독교 사회의 경제형태인 '통용(通用)'의 원리에 따라 생활하여 왔는데, 소외 1과 그의 아들들 및 오대양 직원 등 32명(여자 28명, 남자 4명)이 1987. 8. 29. 경기 용인군에 있는 오대양 용인공장의 천정에서 집단변사체로 발견되었는바, 당시 검찰에서는 소외 1이 오대양 직원들을 통하여 모집한 사채의 변제가 불가능하게 되고 다른 비리들도 폭로될 것을 두려워 한 끝에 나머지 변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함께 집단자살하기로 결정한 다음, 오대양의 직원인 소외 2, 3 등이 소외 1을 필두로 나머지 변사자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하고 그 과정에서 소외 1의 아들인 소외 4, 5는 목을 매어 자살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소외 2가 소외 3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 이와 같은 수사결과에 대하여 국민들의 의혹이 계속되자 국회 제5공화국에있어서의정치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이하 5공특위라고만 한다.)가 1988. 12. 1.부터 1989. 3. 23.까지 위 집단변사자들의 타살가능성, 오대양과 기독교복음침례회(속칭 구원파)와의 관련 및 이들과 제5공화국 정치세력과의 유착 여부를 조사하였으나, 위 변사자들 중 일부가 타살된 후 자살로 가장되었거나, 외부인에 의하여 성폭행을 당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미흡하였다고 판단하였을 뿐, 제기된 의혹에 대하여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다. 그런데 1991. 7. 10. 오대양 직원인 소외 6 등 6인이 과거 자신들이 오대양의 다른 직원들을 집단구타하여 사망케 한 뒤 암매장을 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충청남도 경찰국에 자수하여 왔고, 이에 따라 위 자수자들의 자수 동기와 그 배후세력의 존재 여부, 위 집단변사사건 및 오대양과 관련된 의문점들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수사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라.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피고는 위 상해치사 및 암매장 사건에 관하여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1991. 7. 19.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의 수사기록과 5공특위의 조사기록 중 일부를 제시하면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교인이었던 소외 1이 끌어들인 사채의 일부가 원고 1 주식회사(이하 원고 1 회사라 한다.)의 전신인 소외 7 주식회사 (이하 소외 7 회사이라 한다.)의 운영자금으로 충당되었으므로, 오대양 사건은 원고 2뿐만 아니라 원고 2가 경영하는 원고 1 회사 및 원고 2가 실질적 대표자로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어서 같은 해 7. 24.(제1심판결의 25.는 오기로 보인다.) 기자회견에서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였고, 같은 해 8. 12. 또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1986년경 원고 2가 금 265,000,000원을 사취한 사실이 있었는데 권력층의 지시에 의하여 수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 위 상해치사 및 암매장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1991. 8. 20. 오대양 관련 사건 종합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외 6 등의 자수과정에 기독교복음침례회 교육부장과 원고 1 회사의 홍보 및 영업담당 상무가 개입하였다는 점, 소외 1이 원고 2가 경영하는 소위 '하나님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개발비를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사채를 모집하였다는 점, 소외 1은 1983. 11.경부터 1984. 4.경까지 사이에 원고 2 경영의 소외 7 회사 사채 모집책인 소외 송재화의 한일은행 남대문지점 구좌로 15회에 걸쳐 도합 금 463,920,000원을 송금하였으며, 송재화의 구좌에서 인출된 수표 금 175,000,000원이 원고 1 회사 관련자들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은행에 제시된 적이 있다는 점, 원고 2는 1970년경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속칭 구원파를 조직하여 전도하다가 소외 7 회사를 인수하여 소외 7 회사의 사업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라는 논리를 펴는 등 신도들을 미혹시켜 거액의 사채자금을 모집하는 방법으로 1982. 4.경부터 1987. 2.경까지 총 금 1,196,950,000원을 상습적으로 편취하였다는 점(이로 인하여 원고 2는 1991. 8. 20. 상습사기죄로 기소되어 1992. 1. 30.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가, 1992. 5. 30.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되었고, 1992. 9. 22.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위 항소심판결이 확정되었다.),

1984. 3.경 당시 대통령이 소외 7 회사를 방문하고 난 후 관계 공무원에게 소외 7 회사가 건의한 애로사항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돌봐 주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소외 7 회사가 4개 은행으로부터 25억 원을 대출받게 되었으며, 또한 서울특별시에서 1985. 9. 11. 한강유람선 운항업체를 선정함에 있어서 당시 서울특별시장이 부하직원들에게 원고 1 회사에 관심을 두고 평가원칙을 작성하라고 지시하여 그들이 동 지시에 따라 선정기준을 작성하여 신청업체를 평가함으로써 원고 1 회사가 유람선 운항업체로 선정되었다는 점 등의 내용을 밝혔으나, 위 집단변사자의 타살 여부에 관하여는 종전과 동일하게 승낙에 의한 타살 내지는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바. 피고는 그 후로도 계속하여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였는바, 1991. 10. 11. 한성교회에서의 강연, 같은 해 10. 18. 새서울침례교회에서의 강연, 같은 해 10. 25. 반포1동사무소 노인정에서의 간담회를 통하여 위 소외 1이 모은 사채는 원고 2, 원고 1 회사 등과 관련이 있다는 발언과 함께 원고 2는 민자당에 많은 정치자금을 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사. 피고는 또한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1992. 3. 21. 방배국민학교에서, 같은 해 3. 22. 반포중학교에서 합동연설회 후보자연설을 함에 있어서 오대양 사건의 변사자는 타살되었다는 의혹이 있고, 원고 1 회사를 경영하는 원고 2가 오대양 사건의 변사자 32명이 끌어들인 사채의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원고 2는 상습사기죄로 징역 8년의 선고를 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2. 형사상이나 민사상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그 행위에 위법성이 없으며, 또한 진실하다는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원 1988. 10. 11. 선고 85다카29 판결, 1996. 5. 28. 선고 94다33828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여기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며, 이 경우에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여부는 당해 적시 사실의 구체적 내용,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하고( 당원 1994. 8. 26. 선고 94도237 판결, 1995. 11. 10. 선고 94도1942 판결, 1996. 4. 12. 선고 94도3309 판결 등 참조), 행위자의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동기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원 1989. 2. 14. 선고 88도899 판결, 1993. 6. 22. 선고 92도3160 판결, 1993. 6. 22. 선고 93도1035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피고가 기자회견, 강연, 간담회, 연설 등을 통하여 원고들에 관하여 적시한 사실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에 관계된 범죄혐의 사실 또는 그와 밀접불가분의 관련이 있는 의혹들에 대한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 할 것이고, 피고로서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취득한 자료 등을 분석한 후 범죄혐의 사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끝에 수사기관 등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아가 일반 국민의 여론을 환기시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는 것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지므로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며, 피고에게 비록 정치인으로서 인기를 끌고 선거에서 당선되고자 하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는 이유가 없다.

나아가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은 피고가 적시한 사실들은 대부분 진실에 부합한 사실로 보여지고, 세목에 있어서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피고의 발언이 오대양 사건 관계자들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및 5공특위에서의 조사내용을 근거로 하였다는 점, 위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은 위 변사사건 외에 관련 형사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수사기관에 대하여 한 진술로서 관계자들의 진술이 상호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그 신빙성이 높다는 점, 위 5공특위에서의 조사내용 역시 국정감사및국정조사에관한법률 제10조 및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관계 기관에 대한 서류의 제출요구, 관계 기관의 사건수사보고 요구, 참고인의 출석요구와 관련 전문기관에 대한 서면질의 방법에 의하여 얻어진 것으로서 신빙성이 높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적시한 사실들이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였는바, 관계 증거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이와 같은 사실인정 및 판단은 수긍이 가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 불법행위의 위법성조각사유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소론은 수사기관에 의한 수사결과 발표에 배치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라면 그러한 사실이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나, 이는 독자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논지도 모두 이유가 없다.

3. 그러므로 원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한 원고들의 부담으로 하기로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형선(재판장) 박만호(주심) 박준서 이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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