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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이 가져야 할 5가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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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이 가져야 할 5가지 목표
  • 정윤석
  • 승인 2014.12.02 0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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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장 이현모 교수 종강 예배 설교

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장 이현모 교수가 2014년 12월 1일 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에서 열린 종강예배에서 ‘신학생들의 5가지 목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신학생들에게 △친밀하게 하나님을 경험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하도록 훈련하라 △영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법을 배우라 △돈과 이성에 깨끗하라 △자기의 폭을 넓히라고 당부했다.

▲ 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에서 설교하는 이현모 교수

이 교수는 자신은 결혼한지 28년 됐다며 누군가 아내의 실존을 부정하는 말을 하면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아내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어려움을 견뎌온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가슴에 남겨달라고 그는 신학생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전하는 목회자가 돼 달라고 설교했다. 이것이 말로는 쉬운데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다이빙 선수로 이 비유를 했다. 스프링 보드에서 통통 튀다가 자신의 기술을 다해 재주를 부리는 선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 하는 것 같다가 결국은 자기 스킬, 경험·생각·사상을 성경으로 포장하는 목회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현모 교수는 얄팍한 몇가지 말씀의 지식을 갖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외에도 사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신학생, 돈과 이성에 깨끗한 사역자, 자기의 삶의 폭을 넓혀서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에서 교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하는지 폭넓게 이해하는 목회자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

▲ 종강예배에 참석한 목회연구원 학생들

다음은 이현모 교수의 글을 정리한 내용이다.

M.Div. 과정 목표는 신학자 만들기가 아니다. 준비된 사역자, 목회자로 만드는 게 목적이다. 이 과정은 이중적 부담을 준다. 신학을 배우는 이유는 말씀을 옳게 분변하고 오류를 범치 않도록 하는 영역의 일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22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느끼는 것이 있다. M.Div. 졸업을 눈 앞에 두고 많은 학생들이 당황해 한다.

몇 달 후 현장에서 사역을 시작해야 하는 그들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그들에게 ‘사역자로서 이런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권면한지만 속으로는 ‘조금 늦었다’고 생각한다. 시작할 때부터 부끄러울 것 없는 사역자가 뭔지 목표를 정하고, 남은 1년 동안,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해 나가야 신학교 다니는 의미가 있다.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이 된다는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5가지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 성취를 위해 노력한다면 졸업시 충분치는 못하지만 ‘하나님, 제가 이런 면에는 준비가 됐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신학생들이 됐으면 좋겠다. 지극히 평범한 5가지 이야기다. 그러나 내용을 들어보면 생각만큼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첫째는 개인적이고, 살아 있고, 친밀하게 하나님을 경험하라.
개인적/ 살아있고/ 친밀하게 하나님을 경험하라. 하나님을 아시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알지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단어만 집어 넣으면 당황한다. ‘정말’ 하나님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내 삶에 지워지지 않을 하나님을 경험한 흔적이 정말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내가 3가지를 말했다. 개인/ 삶/ 친밀이다. 개인적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체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체험의 대부분은 예배 가운데, 사람들 가운데, 뭔가 그룹 속에서 뭔가 하나님을 느끼는, 뭔가를 말한다. 그래서 내가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나 홀로 하나님을 얼마나 깊숙이 경험해 봤느냐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경험해 봤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내가 의지적으로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경험해 봤느냐는 것이다. 막연하게가 아니라 너무 친밀하게 경험해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결혼한 지 28년 됐다. 그런데 누가 와서 ‘네 아내는 환상의 존재야. 네 아내는 실존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 절대로 내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지난 28년동안 아내와 대화하고 생활하고, 밥 먹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내(남편)를 느끼는 만큼 그렇게 하나님을 실존적으로 경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평점 4.5 안 받아도,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체험이 있다면 목회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학점을 잘받고 신학을 해도 그 하나님에 대한 리얼리티가 분명하지 않다면 끊임없이 여러분은 흔들리는 삶을 살 것이다. 내가 공부할 당시 신학생들은 학교 뒷동산의 듬직한 나무를 하나 택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그 나무를 붙잡고 흔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뿌리가 뽑히면 이제 됐다고 생각해서 하산해서 목회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 애써보고 발버둥치면서 경험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얼마나 간절히 메달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 경험을 하고 내 삶에 그 하나님의 흔적이 있다는 경험을 하고 나가달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전파하도록 훈련하라.
너무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당연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다는 사람의 설교를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의 경험·생각·사상을 성경 말씀으로 포장만 씌워서 전달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말씀에 대해, 점점 굳이 말한다면 다이빙 선수가 스프링 보드에 올라가서 점프한 후 온갖 재주를 부리며 뛰어 내리는 다이빙으로 비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설교가 시작은 하나님 말씀으로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몇 번 통통 튀는 듯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재주를 부리는 것이 설교현상이다.

어린이 날이 다가왔다고 하자. 어린이들에게 설교해야 한다. 사역자들이 고민할 것이다. 어떤 설교를 할까? 착한 아이가 되자. 여기까지는 괜찮다. 사람에게 맞는 메시지를 정하는 것은 여러분 자유다. 그러나 착한 아이에 대한 자기 경험·주장을 만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심부름 잘하는 아이, 주일에 교회 잘가는 아이, 거기에 맞는 성경 이야기를 가져다가 붙이기 시작한다.

좋은 소식은 잘 조작하면 성경에 없는 게 없다. 일찍 자고 일어나는 아이가 착한 아이다라는 것은 성경을 찾아보면 만들어낼 수 있다. 사무엘이 일찍 잤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전 문을 열었다. 착한 아이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일어난다. 심부름 잘하는 아이. 성경에 찾으면 있다. 요셉 이야기다.

자기 경험에 적절한 성경을 포장한다. 이런 얘기로는 절대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스펄젼은 말했다. 그날 설교의 성공 여부는 교인들이 내게 정말 큰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하는 것에 있지 않다. 내가 설교를 한 후 돌이켜 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했다면 성공, 그렇지 않다면 실패인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잘 전하길 원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되게 전하기 어렵다.

요즘 강해설교가 유행한다. 1980년대 초반에 데니스 레인이 강해설교를 들여 왔다. 남서울교회에서 그가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2번째 집회를 참석했다. 신학생이 아니었고 일반 대학원생일 때였다. 목사님들 500여 명이 몰려왔다.

목사님들은 절대로 배우려 하지 않았다. 팔짱끼고 점수를 먹이고 있었다. 내 설교에 쓸만한 소재를 찾기 위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데니스 레인이 강해설교 강해와 방법론/ 실제를 강해했다. 그리고 그가 밤에 강해설교를 했다. 그때 목사님들이 놀랐다. 에스겔서를 강해했다. 나는 지금도 에스겔서를 여러번 읽고 강해하다가 지금도 ‘아, 이거야!’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그런데 데니스 레인의 책을 읽으면 내가 깨달은 내용이 이미 데니스 레인의 책에 있다. 그가 이미 강해한 내용이었다.

말씀을 말씀대로 전하기 위해 그는 매일 아침 2시간~4시간 성경을 읽는 게 아니라 노트를 펴고 성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단지 성경을 읽는 수준도 쉽지 않은데 그는 매일 성경을 그렇게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말한다. “나는 아직도 성경 66권 중에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이 이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절반이 되지 않는다.”

성경이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다. 통독 2~3번했다고 말씀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나는 대학 시절에 로마서를 참 좋아했다. 내가 어떤 교수님께 “로마서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라고 물었다.

“현모야 너 로마서 수백번을 읽어라. 그리고 100번쯤 정식으로 배워봐라. 그리고 100번쯤 가르쳐 봐라. 그러면 로마서를 알거다.” 내 장점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정말 그대로 해봤다. 정말 많이 읽었다. 논산 훈련서에서 불침번을 다른 사람 대신 서면서라도 로마서를 읽었다. 1장에서 마지막장까지 눈감고 죽 따라가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읽었다. 그리고 열심히 배웠다. 1970년대 카세트가 신기한 물건이었다. 누군가 체계적으로 로마서를 가르쳐 주는 일이 드물었다. 그 때 로이드존스를 읽었다. 이걸 아는 선교사들이 로마서 강해 설교라면 테이프를 사다주는 분들도 있었다.

10번 이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워봤고, 30여 번 넘게 전장을 가르쳤다. 로마서를 가르치면 1년이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로마서를 했는데도 아직도 큐티를 할 때 로마서를 읽을 때 새로운 은혜를 받는다. 말씀이 만만한 게 아니다. 이렇게 깊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의 영혼이 변한다. 얄팍하게 해서 상대의 삶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평범한 목회자들은 많다. 일할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M.Div. 3년 동안 이 단계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학생때 이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절대로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전파하는 사람이 돼라.

셋째, 영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목회는 교회 운영이 아니다. 목회는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사이즈가 크든, 작든, 목회는 사람을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아주 놀라운 것은 목회자중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키워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회 프로그램 돌리는 법을 배우기는 한다. 새벽기도/ 주일예배/ 여름 수련회/ 캠프 이렇게 하면 돼. 여선교회/ 기도회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리고 나서 목회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목회는 그게 아니다!

목회의 알갱이는 사람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신학생들이 한번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훈련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프로그램 돌리는 일만 한다. 신구약을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주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립된 지도자가 되도록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초보 엄마 아빠가 애를 낳았다. 아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을 배우는지 아는가?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기, 아플 때는 어떤 신호를 보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변 색깔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사람을 하나 키우게 된다. 영적으로 사람을 배우는 것이 수없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개인적으로든, 소그룹이든 내가 키워서 지도자로 키운 사람이 있는가? 그게 없는데 앞으로 목회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의사들이 수술을 한다. 심장 수술을 하려면 사람을 완전히 반으로 잘라내야 한다. 기계 톱으로 뼈를 잘라 내고 허벅지에서 발목까지 자른다. 사람을 잘라내니 죽은 것만 같다. 얼마나 정밀하게 수술하는지 모른다. 심장의 판막을 잘라내고 새롭게 넣는다. 혈관의 두께가 1mm다. 그곳이 터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바늘로 꿴다. 이틀이면 죽은 듯했던 사람이 이 수술을 거치면 살아난다. 의사들이 혼자서 심장 수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1천번을 사람을 잘라내고 보조하고 팀으로 참여해 수술을 한다. 1천 번을 해야 사람의 심장을 건드릴 자격을 받게 된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심장을 1천번을 시술한다.

영적으로 이런 열정과 성의를 갖고 매달릴 수 있겠는가? 영적 성장도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끊임없이 해보고 실패하고, 키워보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고 교회 프로그램 돌리는 일에만 메달리면 어림도 없다. 캠퍼스 사역을 할 때 저와 같이 일했던 학생이 간사로 들어갔다. 그는 제자훈련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었다. 어떤 목사님이 제자양육을 잘했다. 그 사람에게 직접 배워서 제자훈련을 노력해서 배웠다. 노력해서 사람을 키우는 것을 배웠다. 교회에서 가만히 앉아서 배울 수 있다면 복받은 곳이다. 그러나 그게 안된다면 어떻게 사람을 키우는 지 다니면서 배워야 한다. 그거 못하면 목회 못하는 거다.

넷째, 돈과 이성에 깨끗해야 한다.
은퇴한 총장님에게서 나는 목회를 배웠다. 그분을 통해 끊임없이 배운 게 있다. 그 총장님이 평생 두 가지에 깨끗한 사람이 되면 평균 수준 이상의 목사요라고 말씀했다. 이 말을 뒤집어 얘기하면 뭔가? 목회자의 상당수가 돈과 이성 문제에서 깨끗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젊을 때 이에 대한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정말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 돈은 내 돈이고, 내 돈이 아닌 것은 내 돈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교회 수십억 횡령해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이를 고소하면 나쁜놈들이 음해한다고 생각한다. 천원, 이천원부터 깨끗하게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뻔뻔해진 상태로 간다.

이성에 대해 조심하라. 목사 만큼, 사역자 만큼 위험한 자리가 없다. 이런 얘기도 들었던 적이 있다. 어떤 여자 대학생이 있었다. 교회 목회자와 오랜 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여대생이 상담소를 찾았는데 상담의 주요 내용은 목회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녀의 상담 내용은 목회자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너무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교회의 태도였다고 한다. 부도덕한 목회자의 아내는 목사의 삶이 드러나면 밥줄이 끊기니 문제를 드러내지 못해 말을 못했다. 담임목사는 부목사의 그런 일이 드러나면 교인들 떨어질까봐 말을 못했다. 시대가 이렇다.

이성과 돈의 유혹이 적을 때 이를 잘 지켜가라. 그리고 돈과 이상에 관한한 앞뒤가 꽉막힌 사람으로 살아달라. 적어도 이 두가지에는 말이다.

다섯째, 자기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역자들이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너무 좁다. 세상에 대해 너무 모른다. 유일하게 듣는 세상은 드라마를 통해서 밖에 없다. 교인들은 세상에서 얼마나 고통 받고 사는지 아는가? 목회자들 보면서 나는 “당신 목사 일 쉬고 미생처럼 일해봐라, 장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봐라. 택배 배달도 좀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세상에서 자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독서를 하든/ 공부를 하든, 다양한 삶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구타/ 어려움/ 자녀 자살한 사람에게 가서 말할 수 있는게 유일한 말이 ‘기도합시다’라는 말밖에 없게 된다. 말씀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감동을 주는 목회자가 될 수가 없다.

이 5가지를 배워달라. 부지런히 목표를 갖고 정진해서 어느날 이 학교를 졸업할 때, “하나님, 제가 이 일에 진전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학생들이 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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