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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없이, 웰빙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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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없이, 웰빙 없다
  • 정윤석
  • 승인 2015.08.19 0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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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과 아는 것 3가지

샘물호스피스선교회 원주희 목사

아침부터 신용카드 단말기 사업을 하는 A 집사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고 싶다는 고객의 전화였다. 기분이 좋았다. “아, 네, 고객님!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신가요?”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여기 새로 개업한 ㅇㅇ장례식장입니다.” A 집사의 태도는 돌변했다. “뭐요, 장례식장이요? 아 오늘 바쁩니다!” 고객의 카드 설치 주문에 반색하던 A집사는 장소가 장례식장이라고 하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납품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한마디로 재수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천침례교회가 7월 24일부터 매주 금요일(7/ 24, 31, 8월 7일, 14일) 죽음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주희 목사(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 손봉호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전재중변호사(법무법인 소명), 박상은 원장(안양 샘병원)이 차례로 강사로 나섰다. 이중 기독교포털뉴스(www.kportalnews.co.kr)는 첫째날(7월 24일) 진행한 원주희 목사의 강연을 정리해서 올린다. 그는 성도들조차 죽음은 재수없는 것, 피해야 하는 것, 감춰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바른 죽음관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원 목사는 죽음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 3가지와 아는 것 3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모르는 것 3가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다. 아는 것 3가지는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것(자녀도 먼저 죽을 수 있다), 혼자 가는 길이라는 것,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런 '죽음'이란 현실 앞에서 원 목사는 성도들이 의미있고, 당당한 죽음을 맞을 것을 제안했다.[편집자주]

▲ 샘물호스피스선교회에서 사역하는 원주희 목사, 20년 전만 해도 '호스테스'로 잘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1993년 호스피스(hospice, 말기암 등으로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이 인생의 마지막에 머무는 호텔이란 의미) 봉사하면서 죽음에 대해 성도들이 꼭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호스피스 사역을 할 때는 참 외로웠다. 이 사역을 계속해야 할까? 고민할 때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님이 사역을 계속하라고 늘 격려해 주셨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봉사자도 파송해주셨고, 후원도 해주셨다. 23년의 사역에 동참해 주셔서 큰 은혜와 힘을 얻었다. 기독중앙초등·중학교 아이들도 많이 와서 봉사해줬다. 죽음의 현장에 어린 학생들이 와 있다는 것, 그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기독중앙초등·중학교 아이들이 매주 와서 빵 굽기, 화장실 청소를 도왔고 수원중앙침례교회와 원천침례교회에서 김장 봉사 등을 도와줄 때도 있었다. 우리들은 김장 할 때 한번에 1천500포기를 한다. 원천교회의 돕는 손길에 감사하다.

고전 15장 말씀은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를 명쾌하게 다룬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라 홀연히 변할 것이다.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을 입을 것이다란 소망을 주고 있다.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사람을 섬겨야 한다. 이게 웰빙(Well being)목회다. 잘 늙어가야 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60살에 사람이 은퇴해도 20~30년을 더 사는 시대가 됐다. 이 시기에 포커스를 맞춘 목회를 웰에이징(Well ageing)목회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사역은 노인들이 죽음을 잘 맞을 수 있도록 돕는 목회다. 웰다잉(Well dying) 목회라 할 수 있다. 웰다잉 목회를 통해 나는 말기암으로 죽음을 맞은 환자들이 천국 가는 길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것을 호스피스 사역이라 한다.

그리스도인, 누구보다 죽음을 잘 정리해 놔야 한다
그때는 호스피스한다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호스티스’로 잘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술집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사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호스피스 한다면 다들 귀한 사역한다고 칭찬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같이 사역하십시다!”라고 하면 “아이고, 아닙니다”라며 거절당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사역하면서 7천여 명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죽는 사람들을 본다. 너무 병세가 심해 자살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아픈 데는 장사가 없다. 나는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천국의 소망을 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걸 지금까지 23년을 했다.

나는 약사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호스피스 사역으로 부르셨다.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가장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주셨을 때 나는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그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나도 돈으로 후원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부담은 거룩한 사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결국 약국을 정리하고 이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영등포 시장 앞에서 가장 잘나가는 약국의 옆에서 약국을 했다. 지금은 병원과 붙어 있어야 약국이 잘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약국 옆에 있으면 덩달아 돈을 잘 벌었다. 거룩한 부담이 계속될 때 3년을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국 확신을 주셨다. 그래서 시작했다. 교회들이 주로 웰빙 목회에 신경을 쓴다. 웰 에이징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웰 다잉은 드물다. 웰다잉까지 책임지는 교회가 돼야 한다. 잘 사는 삶, 잘 늙어가는 삶뿐 아니라 잘 죽는 것까지 균형있게 가르치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했다.

죽음을 다루는 호스피스 사역은 간호사들도 지원하기 힘들어 한다. 매일 죽음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나는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묻는다. “천국에 가고 싶으세요?” 그러면 성도들은 크게 ‘아멘’을 외치곤 한다. 두번째 질문을 해본다. “지금 천국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손을 왜 안들까? 죽음을 몰라서 그렇다. 복음을 알아도 죽음을 모르면 죽음이 두렵다.

샘물 호스피스에 임수민(가명)이란 아이가 있었다. 13살 전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그런데 13살 되던 해에 뇌암/뇌종양 진단을 받고 19살 되던 해 4월에 들어왔다. 그리곤 2개월만인 6월에 천국으로 이사를 갔다. 그 아이의 마지막 여정을 부모들이 영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수민이는 ‘예수사랑하심은’이란 찬양을 참 좋아했다. 살아있을 때 이 찬양을 늘 불러달라고 했다. 그가 떠날 때도 이 찬양으로 환송했다. 부모도 이 찬송을 하면서 아이를 추모했다.

죽음은 정상적으로 살다가도 올 수 있다. ‘죽음!’하면 우리가 모르는 것 3가지가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걸 꼭 기억해야 한다. 수민이처럼 건강한 아이가 13살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 19살이 됐을 때 세상을 떠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죽음은 언제 다가올 지 모른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 3가지다. 이것을 정리해 놔야 한다. 환자들이 말한다. “내가 이 나이에 여기서 이렇게 죽을 줄 몰랐습니다.” 죽음이 그렇다. 모르는 사이에 온다.

수민이 얘기를 조금더 해보려 한다. 수민이의 뇌암 투병생활은 눈물겨웠다. 눈이 안 보이고 몸이 마비가 됐다. 그런 아픔을 이 아이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죽음을 맞기까지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이 아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부모님들에게 “나중에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하면서 갔다. “부모가 죽으면 무덤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 죽었으니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을까. 그런데도 수민이의 부모는 고통의 장례식을 하지 않았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을 암송하면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플래카드를 걸고 장례를 치렀다.

▲ 죽음, 알면 이긴다는 주제로 강연하는 원주희 목사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그리고 먼저 가서 미안해”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교회에 오면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나왔는가? 대부분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온다. 나는 반대다. 나는 아내에게 “강의 갔다가 못 올지도 모릅니다”라고 나간다. 그리고 다녀오면 아내는 웃으며 “못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반긴다. 내가 나갔다가 못 들어올지도 모르는 거다. 그래서 내 속주머니에는 유언장까지 있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유언장을 요약해서 다닌다. 혹시라도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으니 비닐에 포장해서 다닌다. 우리 가족은 모두 유언장을 써놓고 다닌다. 우리에게 언제 마지막 시간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나가면 내가 들어오지 못할지도 몰라요”라는 인사가 보편적인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말 하는 것을 성도들도 금기시하고 부담스러워한다. 한마디로 재수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면 질문하나 해보겠다. ‘죽음’에 대해 많이 말하는 사람은 정말 빨리 죽을까 천천히 죽을까? 답은 ‘모른다’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재수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쉬쉬’ 하는 문화다. 그래서 호스피스 사역하는 나를 기분 나쁘게 보는 분들이 많다.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환우들도 마찬가지다. 유언장 쓰라고 하면 재수없다고 쓰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사는 것과 준비하는 것은 다르다”. 이렇게 말하는대도 준비 안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다. 그 충격으로 자녀도 자살했다. 자살한 아이는 평소 말했다. 기도하면 살려 주신다고 했는데 엄마를 데려가신 하나님은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예방 주사를 제대로 놓지 못해서다. 환우들이여,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기도하면 산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일 나를 데려가시면 나는 천국에서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야. 그러니 슬퍼말고 너는 힘있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바른 죽음관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말도 제대로 못한다. 죽음에 대해 얘기하면 빨리 죽을 까봐서다. 기분 나쁘고 재수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다수가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문화다. 이래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죽음을 당해서는 안된다.

KBS2에서 방송한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패밀리 합창단이 샘물호스피스에 위문 공연을 왔다. 그 때 한 환자가 나왔다. 그는 식도 통증을 앓던 분이다. 위괘양인줄 알았는데 진단을 받고 보니 식도암 말기였다. 이 분이 말했다(유튜브 동영상 참고).

“나는 개인적으로 30년 동안 여행도 다녀보지 못했다. 사업만 했다. 내 사랑하는 아내는 여권조차 없다. 나를 간병하기 위해,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자는 아내를 볼 때 ‘내가 없으면, 이 사람이 아프면, 누가 간병을 할까.’ 마음이 미어진다. 그러나 꼿꼿하게 일어날 것이다. 미안한 게 하나 있다. 결혼한 후에 평생동안 아내에게 호칭을 우리 애들 엄마, 기껏해야 ‘당신’이라고 불렀다. 이제 꼭 한번 불러 보고 싶은 말이 있다. 평생 불러보지 않은 그녀,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나를 지켜주고 내가 없을 때 우리 딸 둘 온전히 키워주고, 다 결혼시켜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아프기 전에 이번 사업 프로젝트 끝나면 국내여행부터 해외여행 다녀오자고, 애들 둘다 출가했으니 둘이 홀가분에게 여행하고 봉사활동하자고 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돼서 미안해. 사랑합니다. 여보.”

저 분이 마지막 마무리로 아내에게 세마디를 했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렇게 마무리 하고 돌아가셨다. 30년 동안 사업만 하다가 진단 일주일 만에 말기암 판정을 받는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죽음에 대해 얘기 해도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음에 대해 얘기 하지 않아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차라리 죽음에 대해 얘기 하는게 낫다. 샘물호스피스는 죽음을 날마다 말하면서도 즐겁다. 위문을 온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게 그 점이다. 임종을 맞는 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밝냐라는 거다. 의아해 한다. 이유가 있다. 죽음이 왔을 때 ‘우리가 피해야 할 두렵고 저주스런 게 왔다!’는 게 아니라 “드디어 올게 왔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교과서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유언장 쓰자는 거다. 예수님은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고 죽음을 준비했다. 죽음 없이 바른 복음에 대한 설명도 없다. 삶과 죽음은 같이 간다. 죽음이 잘 정리되면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죽음이 정리되면 멋있게 산다. 정리를 한다.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 샘물에서 세례를 받고 떠난 분들이 2천여 명이다. 이게 죽음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 천국 가기를 사모해도 언제갈 지 모른다면 오늘 가기를 소망하라. 웰다잉 없이 웰빙도 없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도 죽음과 삶의 비밀을 알려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져도 천국에서 만날 것이란 소망을 미리 줘라.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게 세가지이지만 우리가 아는 것도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죽음에는 가는 순서가 없다. 죽음은 나이 순서가 아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아이들도 준비시켜야 한다. 말하기 참 어렵지만 자녀들에게도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샘물호스피스에 자녀들 데리고 오면서 우는 부모들이 많다. “왜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지!”라고 눈물 짓는다. 그러나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깨닫고 자녀들을 후회없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돌봐야 한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들은 말한다.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더 잘해 줄 걸”이라고 한다. 집에 자녀들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라. “고맙다. 이렇게 살아줘서!” 나는 중학교 학생들에게 유언장을 쓰도록 했다. 그랬더니 “인형은 누구를 주고, 책은 누구를 주라”고 유언장을 썼다. 그런데 그 아이들도 유언장 쓰고도 지금 시집 잘가고 아이 잘 낳고 잘 살고 있다.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말하고 생각한다고 빨리 죽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내 손자가 미국 갈 때였다. 편지를 썼다. “할아버지 그동안 고마웠어요. 지금 헤어져도 언젠가 천국에서 만날거예요. 팟팅.” 역시 호스피스 사역하는 목사의 손자 다웠다. 늘 긴장하고 그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 아이도 준비하고 나도 준비하면서 살고 있다. 자녀들 꼭 끌어안아줘라. 공부 못해도 괜찮아. 어떤 부모는 조금이라도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자녀가 살아 있는 것만큼 축복이 없다. 그 축복을 우리가 누린다. 공부 조금 못하면 어떤가?

교회안에도 미신적 죽음관이 자리한다. 교회안에서 장례식도 못한다. 원래 교회는 장례식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죽음과 부활의 장례식이다. 교회는 죽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샘물 호스피스에서 냉동보관실을 두고 장례를 치른다. 호스피스에 이화여고 아이들이 18년째 봉사를 온다. 이 아이들은 죽음 교육을 철저히 받고 온다. 와서 봉사를 하는데 그냥 시체보관실에서 잔다. 죽음에 대한 미신은 뭐냐? 어떤 장소에 가면 빨리 죽는다는 생각이다. 시신 가까이 가면 재수없다는 생각이다. 죽음을 무섭게 가르치니 부모가 죽을 때 자녀들에게 오라고 말하면 자녀들이 거절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잘못 가르쳐 놓으면 죽을 때 홀대 받는다.

봉사하는 학생들 상대로 입관식도 해본다. 죽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관속의 니 얼굴을 찍어라, 그리고 그것을 네 스마트 폰 배경화면으로 사용해라. 죽음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빨리 죽는 게 아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강릉의 한 골치덩이 아이들이 샘물에 왔다. “다 관속으로 들어가!” 죽음 교육을 시켰다. 유언장을 쓰게 했다. 아이들 삶이 달라졌다. 교회 학생들 모두 관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죽음 교육이 된다. 이런 교육 받은 아이들은 죽음을 앞두고 부모 버리지 낳는다. 아이들이 죽음과 삶의 비밀을 정리하고 산다. 죽음 앞에서 순서는 없다. 죽음을 알면 삶이 달라진다. 죽음은 삶의 교과서란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다 이 땅을 떠나나 주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죽음은 두렵다.

▲ '죽음'에 대한 준비를 주요 주제로 4회 기획 강연을 한 원천침례교회(대표 방수현 목사)

둘째, 죽음은 혼자 가는 길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내, 남편, 자식, 부모, 그 누구도 함께 가지 못한다. 환우들은 밤에 눈을 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낮에 사람이 많으면 그 때 죽고 싶어서다. 혼자 있다가 죽기 싫어서다. 샘물 봉사자들은 24시간을 지킨다. 같이 자면 환자들은 너무도 좋아한다. 봉사자들이 같이 자서다. 그런데 환우가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피곤한 봉사자들이 먼저 자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환우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자는 봉사자들 보니 참 좋아요” 라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 떠는, 혼자라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샘물에선 “죽을 때 혼자 가는 게 아니예요. 예수님이 같이 가세요. 그분이 손 꼭 잡고 가세요.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완벽한 부활의 몸으로 바꿔 주실 거예요. 그문턱까지 우리들이 동행할 거예요. 힘 내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손 잡고 천국 병원에서 무료로 선생님의 병을 모두 고쳐주실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환우들은 너무 좋아한다.

한동대를 가려고 했던 아이가 있었다. 갈 수가 없었다. 암 때문이었다. 자녀가 암에 걸리자 부모들이 너무 슬퍼했다. 죽는 순간까지 붙들고 너무도 슬프게 울었다. 그런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 저 이제 그만 놔 주세요. 너무 슬퍼하니 내가 가는 게 힘들어요. 나 천국에 가면 주님께서 고쳐 주실 거예요.” 복음을 가진 사람의 고백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예수님 손을 붙잡고 간다는 소식을 누군가는 전해야 하지 않는가? 바로 여러분들이 그것을 전해줘야 한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가 있었다. 샘물에 왔다. 17살이었다. 참 예뻤다. 엄마, 아빠도 없이 자란 그 아이는 죽음을 더 두려워했다. 벌벌 떨면서 왔다. 엄마, 아빠도 없고, 보육원 식구도 없었다. 내가 그 아이를 안으며 “딸 둘이 있지만 하나님이 또 보내주셨구나. 네 부모는 너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의 가족이다. 그리고 너는 더 살면 견딜 수가 없는 병에 걸려서 하나님께서 너를 천국병원에 데려가서 완벽하게 고쳐 주시려고 부르시는 거야. 너 죽는 거 아니야! 예수님이 네 손을 딱 붙잡고 간다. 그리고 천국 병원비도 예수님이 다 지불했다. 공짜로 가면 돼. 그러니 이제 두려워 마. 천국병원 가면 네가 다시 살게 될 거야.”

어느날 그 아이가 죽기 3시간 전이었다. 소녀는 준비가 돼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대강 눈치챈다. 숨소리가 달라진다. 그 아이가 말했다. “저 갈 때 됐죠?” 나는 23년 동안 죽음을 앞둔 사람을 봐왔다. 임종 증상을 볼 수가 있다. 소녀에게 말했다. “시간이 다가온다. 무섭니?” “아니요. 예수님이 손 붙잡고 천국병원 가서 고쳐주신다고 했잖아요. 원장님 제 곁에 있을 거죠?” “그럼 너는 내 딸인데, 당연히 내가 옆에 있을게.”

소녀가 찬양을 불러 달라고 했다. “무슨 찬양 좋아하니?” “‘나 무엇과도 주님과 바꾸지 않으리’요.” 봉사자들과 그 아이 옆에서 찬양을 불렀다. 부모도 없는 아이, 천애 고아로 자랐지만 그 찬양을 드리는 가운데 그 아이가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무 고마웠어요. 나중에 뵐게요.” 복음이 아니면 소녀는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천국에 가서 산다는 소망이 없으면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복음이 죽음 앞에서도 웃게 만들고 찬송하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리는 외로운 길에 외롭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다. 그동안 믿음 생활 잘 하다가 마지막에 그런 은혜를 못 누리고 가게 하면 그건 비참한 거다. 호스피스 사역, 웰다잉 사역은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이다. 그래서 유언장 써 놓고, 천국 갈 때 부를 찬양 준비해 놓고, 영정 사진을 미리 찍어 놓기 바란다. 임종이 가까웠는데 준비가 안돼 있다가, 갑작스레 떠나는데, 장례식 때 쓸 사진을 찾는데 사진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주민증 확대해서 장례식에 쓰니까 아이들이 못 알아본다. 엄마 맞냐고. 주민증 사진을 장례식에 쓸 바에는 내가 쓰지 말라고 한다. 평상시 6개월마다 한번씩 스냅으로 멋있게 찍어 놓으라. 웃으면서 촬영하라. 이렇게 준비하는게 재수 없는 게 아니다. 삶은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된다.

그런데 교회에서 왜 죽음에 대해 터부시하는 현상이 일어나는가? 왜 준비가 안 되는지 아는가? 그건 신앙이 잘못돼서 그렇다. 아까 잠깐 언급했는데 어머니가 병사한 후 딸이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가 평소 말했다. 우리교회에서 중보 기도팀이 나를 위해서 릴레이기도를 하는데 내가 죽을 리가 있느냐고. 대단한 믿음 같다. 중보기도팀이 기도를 하니까, 안 죽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까? 중보기도팀을 믿습니까? 중보기도팀이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그대로 결정이 나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내가 움직이는 신앙, 이거 죽을 때 다 가짜로 드러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이 본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내 종교 행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신앙을 갖고 있다. 이것이 무슨 신앙이냐 하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신앙이다. 지극히 정성을 땅에서 드리면 하늘이 감동하고, 하늘이 움직인다는 거다. 그게 교회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그저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면 하늘이 내 뜻대로 움직일 것이란 신앙을 갖고 있다. 죽음 앞에서 준비는 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소나무 뿌리 몇 개만 뽑으면 나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정작 필요한 준비는 하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거다. 이 죽음을 제대로 알면 신앙이 달라진다. 자기 신앙의 칼라대로 마지막에 떠난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신앙을 하고 왔는가가 죽음 앞에서 드러난다. 어떤 할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 고속도로 달리고 계시죠? 지금 뉴스에 나왔는데 아버지가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한차가 역주행 한다고 나왔어요. 아버지 조심하시라구요.”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데 아들아, 역주행 하는 차가 한두대가 아니다. 나는 똑바로 가고 있는데···” 역주행 하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의 신앙이 이럴 수가 있다. 나는 똑바로 가는 줄 알았는데 죽을 때 가짜로 드러난다. 자기가 역주행 하고 온 거다. 그게 죽을 때 드러난다. 죽을 때 제일 준비안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가? 교회에서 직분이 높은 사람,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사역 많이 하고 영향력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흔들린다. 누구인지 감이 잡히는가? 목사님들! 준비 안 한다. 죽을 때 “어떤 찬송 좋아하세요?” 불러 드리려고 하면 천국 찬송을 부르는 게 맞는 거다. 천국을 사모해야 하는데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주소서” 그러고 있다. 안 간다는 거다. 천국에! 꼭 고쳐 달라고만 해야 하는가? 복음 받아들인 다른 환자가 “저 분 목사 맞아요?” 말할 정도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너무 창피한 거다.

여러분도 그런 상황이 오면,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가겠습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부르시면 당당히 가고, 더 살게 하시면 열심히 살면 된다. 준비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두려움 없이 가기 바란다.

셋째, 빈손으로 간다. 돈 많은 사람이 편하게 갈까, 없는 사람이 편하게 갈까? 돈이 많고 적음하고 상관없다. 집착, 미련이 있으면 편하게 가지 못한다. 돈 없어도, 집착하는게 있으면 편하지 않고 돈이 많아도 내려 놓는 사람은 편하게 간다. “오늘 다 내려 놓고 간다.” 이런 청지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편하게 간다. 움켜 잡는 사람은 편하지 못한다. 만일 5분 뒤에 내가 죽는다면 뭐가 제일 많이 걸릴 거 같은가? 걸리는 거 없는가? 여자 성도들, 자녀 걱정 될 거다. 남편 걱정 되는 분들은 없나? 내가 호스피스 사역 23년 하면서 남편 걱정 돼서 못 가겠다는 여자들은 못 봤다. 다 아이들 걱정이다. 그러나 죽을 때는 다 내려놔야 한다. 남편이든, 부인이든, 한 사람이 살아서 역할을 잘해주면 아이들은 견디는 힘이 있다. 그런데 부부간에는 한 사람이 떠나면 못 견디는 경우가 많다. 누가 남을 때 더 못 견딜까?

죽음을 목격하면서 여자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본다. 남자들은 여자가 먼저 가면 한달만에 폐인이 된다. 수염 기르고 어깨가 쳐진다. “형제님, 왜 그렇게 힘들어 하세요!”라고 말하면 “목사님, 아내가 없는 빈집에 들어가 봤나요?” 남자들은 굶고 폐인된다. 아내들은 절대 굶지 않고 아이들까지 거둬 먹인다. 여자들은 새인생을 산다.

모든 걸 두고 가는 죽음이라면 날마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하라. 밤은 그런 시간이다. 떠나는 연습을 하는 거다. 무사히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옷을 벗는다. 염하는 연습 한다고 씻는다. 수의 입는다고 잠옷을 입는다. 관속에 들어간다고 이불 속에 들어간다. 매일 죽는 연습이다. 성도들 기도 제목은 자다가 죽는 거다. 그 소원이 오늘 이뤄질지 어떻게 아는가? 자다가 죽어도 아멘이라고 하자. 죽음이 끝이 아니다. 내 아내랑 인사한다. 내일 우리 한 사람 떠나도 내일 천국에서 만나자. 아멘! 날마다 죽음과 삶을 연습하자. 오늘 불러도 천국갈 그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주님이 살아 있을 때 주신 은혜를 날마다 나누자. 너 돈 벌어서 뭐할래? 열심히 지금까지 사역을 한 거, 하늘나라 상급을 받을 기대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비밀, 죽음이 이렇게 다가온다는 것 알면, 준비하라. 그러면 유익한 게 있다. 아름다운 흔적을 고민하게 된다. 죽기 5분전에 찾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기도 바쁘다. 오늘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런 아름다운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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