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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분노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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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분노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다"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6.12.2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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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 페이스북,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노할 줄 아는 이'
▲ 박영돈 교수(고신대신학대학원 교의학) - 사진 페이스북

박영돈 교수(고신대 신대원 교의신학)가 2016년 12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움과 분노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어떤 이들은 자기 나름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증오와 분노를 죄악시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분노와 미움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고 서두를 열었다.

박 교수는 "불의에 대해 진노하시면서도 우릴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십자가)"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노할 줄 아는 이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만큼, 그에 반하는 거짓과 악독을 증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바울의 권면(엡4:26)을 인용하며, "바울은 분노 자체를 정죄하지 않았다. 구약의 선지자들,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분노하셨고 가장 심한 욕도 하셨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불의에 대한 분노(의분)가 파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우리의 부패성, 자기 의나 혈기에서 기인하거나 악으로 치우치기 쉬운 우리의 의분"을 경계하길 재차 당부했다.

그는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건 거룩한 일"이라며 "불의(거짓)에 대해 참으로 분노해본 사람만이 원수를 사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고 말했다. 곧이어 박 교수는 "치가 떨릴 정도의 분함을 십자가 앞에서 삭혀 자비를 익혀가는 것이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라며 그 성숙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악한 이 시대를 향한 분노를 참지 못해 욕이 터져 나오는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경건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님 보시기에 순진한 욕지거리가 있는 반면, 노골적인 욕보다 백배는 심한 모욕이 담긴 경건의 말도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불의에 대해선 함께 분노하되,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친구들끼리는 위로와 긍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아래는 박영돈 교수가 올린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미움과 분노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다

어떤 이들은 사랑이라는 자기 나름의 개념에 갇혀서 증오와 분노라는 감정을 죄악시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과 불의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전제한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즉 불의에 대해 진노하시면서도 사랑하심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만큼 그에 반하는 거짓과 악독을 증오하게 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노할 줄 아는 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의분이 파괴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 우리의 부패성을 항상 경계해야한다. 그래서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하였다(엡4:26). 바울은 분내는 자체를 결코 정죄하지 않았다.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자주 분노하셨고 가장 심한 욕도 하셨다(독사의 새끼들, 회칠한 무덤, 마귀의 자식들, 지옥의 자식들). 예수님이 욕을 했다고 해서 우리도 욕을 해도 된다고 합리화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항상 의로운 분노를 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로운 분노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기 의나 혈기에서 촉발될 수 있으며 악으로 치우치기 쉽다.

불의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거기서부터 십자가에서 나타난 진노와 사랑의 역설을 희미하게나마 배우게 된다. 불의와 거짓에 대해 참으로 분노하고 증오해본 사람만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안다. 치가 떨리도록 혐오스럽고 분함을 십자가 앞에서 삭혀 자비를 조금씩 익혀가는 것이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분노와 미움을 통한 사랑이 성숙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우리는 수없이 비칠거리며 쓰러진다. 불의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미움을 성령을 따라 승화시키기보다 육신의 혈기를 따라 분출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탄식하고 신음한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욕하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쳐가는 현상들이 만연한 악한 시대에 끌어 오르는 분노를 제대로 주체하지 못해 욕이 터져 나오는 미숙한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고 경건의 잣대로 너무 성급히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 보시기에 순진한 욕지거리가 있는 반면에 노골적인 욕보다 백배는 심한 모욕이 담긴 경건의 말도 있다. 우리는 지금 무척 힘든 시대를 지나고 있다. 불의와 거짓에 대해서는 함께 분노하되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친구들끼리는 위로와 긍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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