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11-07 15:48 (목)
성경해석부터 적용까지 오류 범벅,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상태바
성경해석부터 적용까지 오류 범벅, 손선미 선교사의 치유학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10.26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손선미 선교사편 (3)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강의를 개설한 손선미선교사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강의를 개설한 손선미선교사
1. 손선미 선교사에 대한 성서적 비평

손선미 선교사는 예수님이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처럼 오늘날 성도도 그러한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는 성도도 예수님처럼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주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독특한 전제를 하나 설정한다. 그녀는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는 구절을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일은 그를 믿는 사람도 동일하게 ‘그렇게’ 행할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전제를 바탕으로 예수께서 ‘그렇게’ 병을 고친 것처럼 그를 믿는 모든 자도 ‘그렇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요한일서 4:17이 그녀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을까?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는 문장은 ‘호티’(ὅτι)로 시작한다. 호티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바로 앞 문장의 진술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이다. 사도요한은 앞 문장에서 어떤 성도가 사랑을 자기 삶속에서 온전히 실천하며 살았다면 그는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담대히 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 성도가 그렇게 담대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이유는 바로 주님처럼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님과 닮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가 주님처럼 되어 있느냐? 주님처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가 주님과 닮아 있느냐? 주님처럼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의 그러하심’과 ‘성도의 그러함’은 주님의 모습과 성도의 모습의 ‘닮음’을 말하고 있고, 그 닮은 내용은 상반절에 나오는 ‘사랑’이다.

요한일서 4:17은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을 온전히 이루며 살았던 성도는 예수님과 닮은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두려움 없이 심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손선미 선교사는 ‘주의 그러하심’과 우리의 ‘그러함’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를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일을 성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그렇게’ 병을 고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의미로 적용한다. 무지한 해석이 낳은 황당한 적용이다. 그녀는 자기의 ‘치유학’(?) 첫 강의, 첫 단추부터 엉터리로 꿰고 있다.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그녀의 ‘치유 강의’가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충분히 짐작된다.

손선미 선교사는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들어가 있는 성도는 예수님처럼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쫒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영으로 들어와 계세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떠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어떠하다는 것이에요. 저 하늘나라에는 본체이신 예수님이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까지 가서 예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이 땅에서는 본체이신 예수님은 안 계셔요. 그런데 예수님은 영으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속에 다 들어와 계세요. 아멘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는 거에요. 예수님의 역할을 하면서”라며 ‘예수의 영’을 소재로 해서 위와 동일한 주장을 이어간다. 그녀가 말하는 예수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행 16:6-7: 롬8:9-10). 그런데 여기서 그녀가 먼저 밝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이 들어간 성도가 왜 예수와 동일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의 영이 들어가면 그가 예수가 되는가? 아니면 예수와 비슷해지는가? 하지만 아무리 예수의 영이 충만해도 사람은 사람이며. 아무리 성령이 충만해도 인간은 인간이지 그가 인간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녀의 논리대로 라면 예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은 죽은 사람도 살리고, 물위도 걷고, 축사하여 음식도 불어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의 영이 들어간 사람은 예수가 행했던 일과 똑같은 일을 행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뿐 아니라 현실에서 조차도 실증될 수 없다.

손선미 선교사는 이사야 53:5을 근거로 들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채찍에 맞은 이유는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전에는 성경에 죄 사함의 복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사야의 글을 읽고 어느 날 ‘병 고치는 복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온갖 질병에 시달렸는데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자기 엉덩이의 고질병까지 치유되었다는 체험까지 곁들이며, 매우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병 고치는 복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 받았다”(사 53:5)는 문장에 주목한다. 그리고 ‘채찍’과 ‘나음’이라는 말을 곧바로 ‘치병’과 직결한다. 말하자면 이 둘을 인과관계로 연결한다. 즉 주님이 채찍에 맞은 이유는 병 나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이러한 주장이 정말 지지받을 수 있을까?

이단사이비 대처의 스위치를 올려 주세요

기독교포털뉴스 유료기사는 매달 5천원 이상 정기 후원하시는 분들에게만 노출됩니다.

정기 후원자들은 유료기사를 보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포스에서 발행하는 책자를 무료로 배송해 드립니다.

아래 링크로 이동해서 구글 질문지에 답하시면 CMS자동이체 신청이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