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09-27 21:31 (월)
계시록 11장이 프랑스 대혁명 예언이라니, 누가 과연 삯꾼 목자인가?
상태바
계시록 11장이 프랑스 대혁명 예언이라니, 누가 과연 삯꾼 목자인가?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1.08.13 0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11HN 성서연구원 7편
요한계시록 11장의 삼일 반을 프랑스대혁명의 시기와 꿰어 맞추는 손계문 씨
요한계시록 11장의 삼일 반을 프랑스대혁명의 시기와 꿰어 맞추는 손계문 씨

1. 손계문 목사에 대한 비평
1) 손계문 목사의 주장

손계문 목사가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 20부: 요한계시록11장, 누가 두 증인인가? | 여신숭배와 마지막 시대(2019년 5월 4일)'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하단 녹취록 참고). 

* 요한계시록 11:1은 예수가 재림 전에 의인들을 인치는 조사 심판에 대한 묘사이다.
* 요한계시록 11:2은 교황청을 예언한다.
* 요한계시록 11:3의 두 증인은 신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 요한계시록 11:7-12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예언이다.

2) 성경적 비평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1:1은 예수께서 지상에 재림하기 전에 하늘 성소 첫째 칸에서 의인들을 인치는 재조사위원회가 단행한 심판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한다. 그는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계 11:1)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하늘 성소 첫째 칸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측량하다’는 ‘심판하다’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둘을 조합해서 예수께서 지상 재림하기 전 하늘 성소 첫째 칸에 임해서 누가 구원을 받을 의인인지를 조사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 본문 안에 그러한 주제가 끼어들어올 여지가 있는 것일까?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에서 ‘나’는 요한을 가리키며, 이는 요한이 누군가에게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지팡이 같은 갈대는 측량을 위한 도구로써 ‘갈대자’를 뜻한다. 여기서 ‘측량하다’(μέτρησον)는 문맥상 보존하다 혹은 보호하다의 의미이다(겔 40:1-42:20; 렘 31:39; 슥 2:1-5 참고). 이 장면은 환란 가운데 있는 1세기의 소아시아 교회들을 반드시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낸다. 이 장면은 예수께서 재림 전에 하늘 성소 위원회에서 의인의 혜택을 받을 사람을 가려내는 조사를 단행했다는 내용을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다.

조사심판은 안식교의 공식입장이다. 2천년 세계 교회사에서 조사심판을 공식 교리로 두고 있는 단체는 안식교가 유일하다. 조사심판은 1844년 10월 22일에 기다리던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말을 바꾸어 이 날에 예수께서 이 땅이 아닌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서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가려냈다는 교리이다(탁명환, 『기독교 이단 연구』, 247). 이 교리가 손계문 목사의 설교에서 왜 자주 발견되는 것일까?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1:2을 중세 시대를 지배했던 가톨릭의 교황청을 예언한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에서 이방인은 완전히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전 마당까지는 들어온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만 이교신도 섬기는 어중간한 사람들이라 한다. 그리고 이 이방인을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을 가리킨다고 단정한다. 더 나아가 손계문 목사는 “마흔 두 달”을 1260년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이를 교황청이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기간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 ‘이방인’이 로마 카톨릭의 교황청과 동일시 될 수 있는 대상일까?

1절과 달리 2절은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는 천사의 후속 명령이다.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로서 성소 바깥에 위치하지만, 여전히 성전 안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성전 밖 마당도 교회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1절의 ‘성전 안’도 교회를 상징하며, 2절의 ‘성전 밖 마당’도 교회를 의미한다. 이 장면은 이방인에 의해 교회가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게 될 것을 보여준다. ‘마흔 두 달’이라는 용어는 묵시문학의 전형적인 숫자로 매우 짧은 기간을 상징한다. 마흔 두 달은 악이 마음대로 활개 치도록 허락된 짧은 기간을 상징하는 수이며 다니엘 7:25, 12:7에서 유래되었다(데이비드 E. 아우네, 『요한계시록 6-16』 “WORD BIBLICAL COMMENTARY”,437-438). 이 장면은 로마 제국의 치하에 있는 1세기의 교회들이 당하는 고난의 기간이 매우 한시적이고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손 목사의 주장처럼 AD 538부터 1798까지의 가톨릭의 교황청을 보여주지 않는다. 손계문 목사는 여기에서도 요한계시록을 특정 시대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1:3의 ‘두 증인’을 가리켜 교황청에 의해 1260년 동안 짓밟혀온 중세의 암흑 기간 동안에 세상에 불을 밝혀온 신구약 성경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두 증인이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4절의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를 언급한다. 그리고 감람나무는 등불을 밝히는 기름을 제공하는 나무라고 하며, 성경을 ‘등불’로 묘사한 시편 119:105을 끌어들여 두 감람나무와 촛대를 성경이라고 결론 내린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해석인가?

손계문 목사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를 스가랴 4장이 배경이라 말하지만 막상 스가랴 4장에 대한 분석은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기름 이야기와 이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등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성경을 등불로 비유하는 시편을 끌어들여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라고 확정한다. 감람나무와 촛대를 언급하는 요한계시록 11:3의 내용은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하등상관 없는 기름과 등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두 증인과 성경을 동일시해버린 것이다.

요한계시록 11:3은 ‘두 증인’을 가리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함으로,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감람나무는 손계문 목사의 말대로 스가랴서를 배경으로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순금으로 된 촛대와 감람나무 환상을 보았다(슥 4:1-14). 이 환상에 등장하는 두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상징한다. 이 환상은 이 두 사람이 파괴된 성전을 장차 재건축할 것을 보여주는 환상이다. 스가랴서는 두 감람나무에 비유되었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성전(교회)과 관계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3은 이 구약의 모티프를 사용하여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는 교회(성전)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낸다(박수암, 151-152). 일곱 촛대가 일곱 교회라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1:20에서도 이미 알려주었다. 두 증인(3절) 곧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4절)는 모두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증인 앞에 붙은 ‘두’ 즉 ‘2’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이다(신 17:6; 19:15 참고). 따라서 두 증인은 ‘증언하는 교회’이다.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교회의 사역의 속성을 말한다. 굵은 베옷은 회개 시에 입는 옷이다(왕하 1:8; 렘 4:8; 욜 1:13 참고).

종합해 볼 때 두 증인은 세상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교회이다. 교회가 이 사명을 다할 때 능력이 뒤 따른다. 하늘을 닫아 비가오지 못하게 했던 엘리야의 표적과 물을 피로 변하게 했던 모세의 표적이 뒤 따른다(5-7절). 두 증인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이다.

손계문 목사는 연기에 능숙하다. 그는 자신이 매우 학문성을 갖춘 사람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데 능란하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를 스가랴 4장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스가랴 4장을 언급했을 때 스가랴 4장을 해부해서 스가랴 선지자의 언어를 통해 감람나무와 촛대가 무엇인지 설명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던져만 놓고 스가랴서 주해는 뒷전으로 하고 감람나무를 짜면 나오는 기름 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이 기름 소재를 시편 119:105과 연결해 자기주장을 고수한다. 스가랴 4장을 언급한 것은 일종의 기만 행위였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1:7-12을 AD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예언이라고 주장한다. 직접 들어보자. “그런데 이 두 증인(성경)이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처참하게 짓밟히는 그런 인류 역사가 등장합니다. 7절부터요···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성경을 완전히 박살을 내고 죽이는 그런 처참한 역사가 벌어집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인데요. ···11장 10절입니다. ···이 두 선지자는 앞서 말했듯이 구역 성경과 신약 성경입니다. 방금 읽었던 말씀처럼 시민들은 곳곳에 있는 성경들을 찾아내서 될 수 있는 대로 모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침을 뱉고 발로 짓밟고 불에 태웠고···그리고 이 공포시대동안 아주 희한한 일을 하나합니다. 1793년 11월 26일 프랑스에는 성경을 금하는 법을 만들어서 공포를 했습니다. ···9절과 11절입니다. ···여기 보니까 성경이 삼일 반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1797년 7월 17일 성경을 의회에서 다시 회복시킵니다”

손계문 목사는 7절에서 ‘짐승’이 일으킨 전쟁을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으로, 10절에서 사람들이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기뻐한 것을 AD 1793년의 성경 금지법으로, 11절에서 두 증인에게 생기가 들어간 것을 AD 1797년 의회에서 성경을 다시 회복시킨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요한계시록 11:7-12의 장면들이 프랑스 대혁명 때에 일어날 사건들. 특히 성경의 존폐와 관련된 예언이라는 것이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1장 해석에서도 누누이 실패한 특정 시대와의 연계를 또 시도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7절)에서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은 요한계시록을 읽는 독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존재이다. 왜냐하면 짐승 앞에 토(τὸ)라는 정관사에 있기 때문이다(위의 책 448). 요한계시록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다 알고 있는 바로 ‘그 짐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독자들이 프랑스라는 나라와 프랑스 대혁명을 알고 있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요한계시록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이 짐승은 두 증인(교회)의 사역이 끝날 즈음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짐승은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을 이기고 죽인다. 이는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들의 순교를 암시한다.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두 증인의 시체가 대로에 마구 버려진다(8절). 그들의 시체는 소돔과 애굽으로 비유된 큰 성 로마의 대로 위에 널 부러져 있다. 두 증인의 시체를 조롱하며 구경하던 사람들은 사흘 반 동안 그 시체를 방치하며 무덤에서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9절). 복음을 전했던 두 증인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함으로 그 죽음을 더 모독한다. 그러나 요한은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부활하여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두 증인을 목격한다(11-12절).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무저갱의 짐승은 로마 제국이라는 큰 악의 축 중 하나다. 이 두 증인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증언 사역을 감당할 때 필연적으로 악의 세력의 저항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묘사된 것이다. 두 증인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비록 교회가 핍박과 환란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얻을 영광을 가리킨다. 이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는 요한계시록 3:21의 성취이기도 하다.

하지만 손계문 목사는 이러한 요한계시록 11:7-12이 프랑스에서 발생한 1789년도, 1793년도, 1797년도의 사건들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구절에 등장하는 몇 개의 단어를 뽑아 낸 뒤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하도록 돕는 간단한 멘트를 거친 후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된 각종 자료(문헌, 그림, 사진)를 담은 영상들을 대거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를 증명한다. 성전, 측량, 감람나무, 촛대, 두 증인, 짐승, 생기 등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들을 모자이크처럼 연결하고, 영상을 동원하여 자기주장을 최종 확정 짓는 방법이다. 이는 특정 구절의 이미지를 조작해 왜곡하는 방식이다. 이는 올바른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그가 기성교회의 설교자들을 비웃고 매도한다. 그가 설교한 요한계시록 강해 20부의 결론 부분을 들어보자.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편안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믿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성경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는 그 아이러니한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죄악적이기 때문에 성경의 참 진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방해하기 때문에 적당히 믿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속임수를 교회의 설교를 통해서 제공합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망하고 말 것인가? ···사탄은 지도자들의 마음을 지배하면서 자기 뜻대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누가 거짓 교사일까요? 누가 거짓 선지자일까요? 성경에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보가 충분한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신들의 영혼을 그냥 성직자들에게 맡기고자 하는 신자들이 대다수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그런 목사들에게 맡겨도 될까요?”

손계문 목사는 자신은 수많은 오독과 오역을 남발하면서도 전체 개신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설교로 매도하고, 그들을 삯군,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 취급을 한다. 여기에 수많은 ‘좋아요’와 칭찬 일색의 댓글들이 달린다. ‘11시 성경연구원’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이러한 시청자들이 매주일 마다 듣는 자기 교회의 설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을 보듯 뻔하다. 손계문 목사는 이러한 멘트를 매 설교 때 마다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는 그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자이며, 어떤 야망을 가진 자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 해석에서의 필수는 건전한 기독교 신학이 바탕이 된, 성실한 연구와 주해이다. 손계문 목사는 개신교회를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집단으로 매도하기 이전에 자기가 몸 담고 있는 교단을 살펴야 한다. 자기가 속한 교단이 건전한 신학적 바탕에 서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 현대 교회사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손계문 목사는 개신교회의 설교를 거짓 가르침으로 매도하기 전에 자기 설교를 먼저 살펴야 한다. 자기 안에 건전한 신학적 토대가 형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성서 해석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 연구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단어나 문장을 모자이크처럼 연결하는 짜깁기식 해석은 성경 해석이라 볼 수 없다.
 

2. 다음은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20부를 요약 녹취한 것입니다. 
계시록 11장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누구를 심판하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 제단은 성소 첫째 칸에서 심판을 하는 장면입니다. 첫째 칸에서 심판이 벌어지는데 ···멸망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전에서 의인들을 인 치시는 재림 전의 심판입니다. 그 재조사위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신원해주는 심판의 장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2절입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교신을 섬기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한다고요? 마흔 두 달 동안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

여기 딱 맞는 존재는 교황청 밖에 없습니다. 여기 아주 익숙한 숫자가 나왔죠? 마흔 두 달은. ···1260일···1260년 이겠죠. 1일은 1년이니까···AD 538부터 1798년까지 중세 교황청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기간입니다. ···3절과 4절입니다. ···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장면이거든요. ···감람나무는 감람유 기름을 제공하는 기름의 원천이 되는 나무구요,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암흑기간 동안 감람유와 촛대처럼 계속해서 불을 밝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옷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베옷은 상복이에요. 슬픔과 고난을 나타낼 때, 깊이 회개할 때 베옷을 입는다고 성경에 나오고 있거든요. ···성경의 진리를 담대히 전하는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를 당하고, 또 깊은 산속과 동굴에 파묻혀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처지가 되었을 때 이 충성된 두 증인이 그 베옷을 입고 슬피 울면서 예언했습니다. ···

그 어두움의 시대에 슬픔과 그 고통의 시대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대이며 빛이 되어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여러분 시편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이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므로 두 증인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증인이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처참하게 짓밟히는 그런 인류 역사가 등장합니다. 7절부터요···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성경을 완전히 박살을 내고 죽이는 그런 처참한 역사가 벌어집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인데요. ···11장 10절입니다. ···이 두 선지자는 앞서 말했듯이 구역성경과 신약 성경입니다. 방금 읽었던 말씀처럼 시민들은 곳곳에 있는 성경들을 찾아내서 될 수 있는 대로 모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침을 뱉고 발로 짓밟고 불에 태웠고···그리고 이 공포시대동안 아주 희안한 일을 하나합니다. 1793년 11월 26일 프랑스에는 성경을 금하는 법을 만들어서 공포를 했습니다. ···9절과 11절입니다. ···여기 보니까 성경이 삼일 반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1797년 7월 17일 성경을 의회에서 다시 회복시킵니다(손계문, 2019년 5월 4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 20부” https://www.youtube. co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