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5 15:18 (월)
재림 때, 살육 당할 대상이 개신교회라는 손계문
상태바
재림 때, 살육 당할 대상이 개신교회라는 손계문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1.10.05 21: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11HN 성서연구원 마지막편
1. 손계문 목사에 대한 비평
1) 손계문 목사의 주장

손계문 목사가 2019년 8월,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27~29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하단 녹취록 참고)

* 요한계시록 19:19-21은 재림 때 교황과 미국과 개신교인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죽고 새들의 먹이가 됨을 보여준다.
* 재림 이후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게 된다.
*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을 가리킨다.

2) 성경적 비평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결론부에 해당하는 요한계시록 19, 20, 21장 해석에서도 개신교회의 멸망이라는 주제를 이어간다. 그는 짐승, 거짓 선지자, 바벨론을 심판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범주 안에 개신교회를 포함시킨다. 백마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있는 요한계시록 19:17-21 해석에서는 이 주제의 절정을 이룬다. 손계문 목사는 재림 때에 무시무시한 심판을 받고 살육 당할 대상을 교황, 미국, 개신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는 ‘첫째 짐승’(13:1)은 세상 권력과 손을 잡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가톨릭이며, ‘둘째 짐승’(13:11)은 거짓 성령 운동으로 각종 치유 집회 등 기적을 행하는 미국과 개신교회라고 하며 이들이 재림 때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살라지며, 그 시체들은 새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과연 계시록의 본문이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일치할까?

첫째 짐승이 누구인지 요한계시록 13:18이 밝혀준다. 육백육십육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짐승은 ‘네로’이며, 둘째 짐승은 “땅에 거하는 자들”(13:14) 즉 당시 사람들에게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하며 표를 팔았던 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세력들을 가리킨다(13:11-18). 이를 교황과 미국과 개신교회를 가리킨다는 주장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등장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6-10절)와 하나님의 큰 잔치(17-21절)를 구분하고 전자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축복의 대상, 후자의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저주의 대상으로 정의한다. 그는 특히 후자의 잔치 장면은 재림 때에 교황청과 연합된 미국의 종교 세력과 전 세계 개신교인들이 죽임을 당하여 공중의 새들에게 뜯어 먹히는 장면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그런 의도를 찾을 방법이 없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패배한 원수들의 피비린내 나는 희생 제물로 이루어진 승전 연회를 의미한다(데이비드 E. 아우네, 『요한계시록 17-22』 330.) 여기에서 ‘그 잔치’에 해당하는 토 테이프논(τὸ δεῖπνον)은 9절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언급할 때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이 잔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구분되는 별도의 잔치가 아니라 동일한 잔치이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이 잔치의 하객으로 형상화된 승리한 교회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된 반면 이 하나님의 큰 잔치는 종말론적 적대 세력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하나의 잔치이지만 각기 다른 관점에서 묘사되었다. 이 적대 세력들은 왕들, 장군들, 장사들, 말 탄 자들, 자유인들, 종들, 작은 자나 큰 자, 모든 자(19:18)이며, 이들의 시체의 살이 공중의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를 가리켜 교황을 중심으로 한 종교 세력들과 전 세계의 개신교인들이 장래에 공중의 새들에 실제로 뜯어 먹히는 장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해석이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부정적인 개념과 요소들을 가톨릭과 개신교회에 적용하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21:2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은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성전이 아닌 하늘에 있는 실질적인 성전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요한계시록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즉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로 묘사한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로 인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성전이 건물이 아님이 확인된다. 다시 말하면 새 예루살렘 성은 신부라는 인격과 결부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1:9-10에서는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진작 보인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 양의 신부이다. 그러면 이 신부는 누구일까? 요한계시록 19:7-8은 신랑인 어린 양이 자기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결혼 예복으로 선물한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한다. 신부는 곧 성도이다.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신부는 멸망하는 바벨론(17장)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교회를 다양한 언어로 묘사한다. 셀 수 없는 큰 무리(7:9-17), 십사만 사천(7:1-8; 14:1-15), 두 증인(11:3-13), 여인(12장), 신부(19:7-9)는 모두 교회를 나타내는 상징적 묘사이다. 요한은 교회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는 용어로 응축한다. 요한이 본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 공동체이다.

이단사이비 대처의 스위치를 올려 주세요

기독교포털뉴스 유료기사는 매달 5천원 이상 정기 후원하시는 분들에게만 노출됩니다.

정기 후원자들은 유료기사를 보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포스에서 발행하는 책자를 무료로 배송해 드립니다.

아래 링크로 이동해서 구글 질문지에 답하시면 CMS자동이체 신청이 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