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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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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인가?
  • 최삼경
  • 승인 2005.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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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최근 들어 많은 이단들이 한국교회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단이라고 하면 저기서는 이단이 아니라고 하고, 이 사람은 이단이라고 주장하는데 저 사람은 이단이 아니라고 변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논쟁이 감정 싸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누가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인 것입니까?

A: 기독교 역사는 어떤 점에서 이단과의 논쟁과 싸움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단자들이 나타나서 이단 사설을 주장해 왔고, 이에 대하여 정통교회는 반박하고 또한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단자들과의 논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교단이나 종교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경우요,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공방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이단 논쟁은 사실상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단체라도 사람 없는 단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개인의 입장과 신학이 집단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우스(Arius)라는 자는 예수님의 신성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Homoousios)하지 않고 유사(Homoiousios)하다고 주장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제한하다가 이단이 되었습니다. 그는 니케아(Nicaea AD. 325)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은 비록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것이지만 사실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라는 개인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에베소회의(AD. 431)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Nestorius)도 씨릴(Cyril)이란 사람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단이라고 했느냐보다 '왜' 이단이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이단 논쟁을 벌이는 것과, 단체가 이단 규정을 하는 것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 점을 살펴봅시다.

먼저 개인이 이단 논쟁을 벌이는 경우입니다. 사명도 하나님의 역사도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단과 싸우는 일이란 참으로 격려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이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본질적으로 거짓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난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이비 이단과의 싸움은 전투적 성격이 더 크기 때문에 많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 연구가들에게 많은 격려와 후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은 다음과 같은 약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편견의 문제입니다. 개인이란 아무리 객관성을 주장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자기 편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걸러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이기 마련입니다. 높은 것도 더 낮은 곳에서 볼 때만 높은 것이요, 더 높은 곳에서 보면 역시 낮은 곳이 됩니다. 평지도 분지 속에서 보면 높은 산이 되는 것입니다. 검은 것도 더 검은 것보다는 흰 것이요, 흰 것도 더 흰 것보다는 검은 것이 되며, 왼쪽도 오른쪽에서 볼 때만 왼쪽이요, 더 왼쪽에서 보면 오른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은 선하다고 보는 경우가 있고,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은 악하다고 보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단 논쟁은 이런 상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경우 편견이 문제입니다.

둘째, 개인은 단체보다 이단 논쟁을 감정적인 문제로 발전시킬 위험성이 더 크다는 점입니다. 개인이나 교단의 이해 때문에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감정이 개입되면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셋째,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개인의 약점을 교회가 뒤집어쓸 위험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어떤 한 개인에게 이단문제를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그 개인의 사상적, 윤리적 약점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이단자들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결국 교회가 그 약점을 감당해야 하는 피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단 연구의 위험성과 난해성이 때로 이단 연구가를 영웅주의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요, 지양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넷째, 개인 연구가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당수의 이단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려고 합니다. 고소하고 협박하고 심지어 테러까지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를 희생시킨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실제로 한 이단연구가를 죽음으로 넣고만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공적인 단체가 이단을 연구하고 규정하는 경우입니다. 단체는 개인의 약점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집단의 감정도 개인의 감정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은 마찬가지요, 어떤 점에서 집단 이기심은 개인의 편견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이 됩니다. 더욱이 힘이 항상 진리인 것은 아니라는 점과, 다수의 생각보다 선각적인 한 개인의 생각이 훨씬 옳았던 경우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한국교회가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단 문제에 대처해야 함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단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종교회의를 통해서 이단을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회의도 후대로 갈수록 천주교라는 한 집단의 변호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이제 이단 문제를 취급해줄 범세계적 기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비록 세계교회협의회(WCC)라는 기구가 있지만, 이제 이 기구는 이단 문제까지 취급할 힘이나 기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기구 안에서조차 이단 못지 않은 사상이나 행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 논쟁이 생길 때마다 이단이라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변증의 행태는 두 가지입니다. 개인 연구가들에 대하여는 "너 개인이 이단이라고 해서 이단이냐?", "누가 네게 이단을 정할 권리를 주었느냐?"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교단이나 단체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면 "너희 단체가 한국교회의 종교경찰이냐?", "너희 교단이 한국교회의 대법원이냐?"는 등의 반론을 폅니다.

이제 이단을 규정할 세계적 기구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교단적으로 이단을 규정하고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우선, 일차적으로 이것이 제일 바람직하고 또한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이미 한국교회의 여러 교단들이 그렇게 하고 있음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단이 이단을 규정할 때는 두 가지 제한된 의미의 활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 교단의 교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요, 둘째는 형식적으로 그 교단의 교인들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행해지는 사역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단과 교단의 교리적 차이점이 이단에 대한 반대입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실정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사람을 저 교단에서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 문제에 대해서만은 범교단적인 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경우 현재 한기총이나 NCC같은 기구에서 이 일을 했으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그리고 이단 문제는 찢어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을 크게 자극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누가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입니까? 개인이든 단체든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역사적 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기준으로, 그리고 사도들이 물려준 그 전승을 기준으로 이단을 규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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