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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숙 위한 진통 중” 교계 원로에게 듣는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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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숙 위한 진통 중” 교계 원로에게 듣는다 ③
  • 정윤석
  • 승인 200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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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훈대교회·예장합동 전 총회장 한명수 목사

한명수 목사(71·창훈대교회 원로)는 ‘사회 속에서의 성경적 정의 구현’과 ‘교회 내에서의 충실한 목양’을 균형있게 조화시켜 나아가고자 했던 예장 합동측의 몇 안 되는 목회자 중 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는 4·19혁명 참여, 6·3 한일협정 반대, 3선 개헌 반대 등 역사의 격동기마다 민족 상황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삼선개헌을 시도할 때 교단에서 <개헌문제와 양심의 자유 선언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 일동>이란 이름으로 한명수 목사의 이름을 포함해서 지지성명을 내자 자비를 들여 “저번의 광고는 나의 의사와 상반된, 허위이며 명의를 도용한 것”이라고 밝힌 것은 한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일화다. 이와 동시에 한 목사는 한국교계뿐만 아니라 창훈대교회를, 40여 년 동안 ‘초심불변의 신앙’으로 지켜왔던 큰 산과도 같은 존재다.
  한 목사와의 인터뷰는 5월 23일 본지 상임이사 최삼경 목사의 진행으로 창훈대교회 원로 목사실에서 이뤄졌다. <편집자 주>

▶ 얼마 전에 북한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북한측 안내원들이 한국교회 목사님 중에서도 유독 한명수 목사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을 참 좋아하더군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그리고 북한은 우리에게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 총무로서 활동하며 1989년도에 쌀 2만 섬을 북한에 보낸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북한을 단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령 북한측이 남한의 지원을 체제 유지에 사용한다고 해도 햇볕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조건 없이 도와야 할 한 민족이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사실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런 말을 하면 ‘반미주의자, 친북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친북은 긍정적으로 볼 때 동족하고 친하자는 거예요.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북한에 가면  북한 사람들에게 ‘반미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던 한 수행원이 ‘동무, 여기서 반미하지 말라고 하면 몰매 맞소’라고 언성을 높이더군요. 그래서 내가 ‘말조심하라’면서 ‘친미를 해서 평화를 도모해야지 반미해서 왜 자꾸 싸우려고 하느냐’고 한 마디 더 해줬어요.

▶ 그런데 북측을 도울 때 그들이 정말로 가슴으로부터 고마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가요? 제가 북한에 갔을 때 북측 관계자들에게, 한국교회는 북측에서 투명성과 신뢰성만 보여 준다면 힘껏 도울 마음이 준비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많이 도우신 분들도 한 편으로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는 말을 합니다.

한민족으로서 도우면 됐지, 그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더 강한 법입니다. 오히려 돕는 입장에서 신뢰감을 지속적으로 준다면, 그 사람들도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되어간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 창훈대교회 앞에 선 한명수 목사 (왼쪽)와 최삼경 목사 (본지 상임이사)
▶ 40년 목회를 하신 교계의 원로로서 요즘 한국교회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죠. ‘벼랑 끝에 선 한국교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과연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인가요?

전 ‘위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위기일수록 위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말로 인해 오히려 위기가 가중될 수도 있고, 공연히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계도 위기라고 보지 않아요. 성장을 많이 했기에 이제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기독교가 그러면 윤리적, 교리적으로 건강하다고 보시나요?

우리나라는 상당히 건강한 편입니다. 일부 기복신앙·물량주의적 신앙과 비윤리적·비도덕적 지도자들로 인해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한국교회는 대체적으로 건강하다고 봅니다. 믿음이 좋고, 교회를 잘 지키고, 헌금, 사회봉사, 사업, 민족 통일을 위한 기도 등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편입니다.

그러나 가시적 부흥을 부흥으로 생각하는 가치의 전도와 물량주의적 사고 방식, 큰교회 제일주의, ‘모여라, 돈내라, 집짓자’라는 것이 문제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한 기록을 보면 집짓고 헌금하라는 얘기는 한 구절도 없어요.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비본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부각하는 것이 문제죠.

▶ 한국교회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 주시죠.

본질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가시적 가치에 의미를 두지 않고 너무 큰 것 제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의 병폐를 고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소명의식을 갖고 출발을 해야 합니다.

제 아들이 셋인데 목회자가 되지 않았어요. ‘왜 목사 안 시켰느냐’고 물으면 두 가지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자식들이 대답해야 하지 내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나도 거룩한 곳에 와서 어지럽혔는데 자식들까지 와서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 목회자가 추구해야 할 목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뭔가요?

- 자기 소명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목사가 소명만 뚜렷하면 자기 할 일을 알아요. 그가 노동운동을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교육을 하든지. 그런데 소명의식이 점검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으면 언제나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내 길이다’라는 의식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해요. 이 검증이 잘 안 되어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기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성도들의 지적 수준이 점점 높아가는 것을 현대 목회자들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필요 이상으로 신학교 숫자가 많아서 목회자들이 과잉으로 배출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총회장으로 계실 때 신학교 학생을 줄이고 싶지 않았나요?

숫자가 많은 게 사실이죠. 그런데 숫자를 줄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총회장은 떠밀려 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총회장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신학교의 대폭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40년 목회를 하셨는데 목회자로서 가장 큰 긍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어요. 서울의 큰 교회에서 청빙 받은 일도 있습니다. 그 때 나는 겨우 사례비로 2천원, 3천원 받을 때였지요. 그러나 저는 가난한 곳, 당시 우범지대에서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격려하며 목회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거절했어요. 이곳에서 40년 동안 목회했다는 그것이 나의 긍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도들을 조국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으로 만들기 위해 힘써왔다는 거예요. 누가 내 설교문을 다 읽고 나서 전화를 했는데, ‘목사님 설교는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네요. 하나는 교회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조국사랑이군요’라고요. 맞는 얘기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 해요. 이제 그 누구보다도 우리 조국을 위하여 크리스천들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교회의 어려움은 외부에서 생기고 내부에서도 생기는데, 내부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특히 교회 내부의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라면 목사와 장로와의 갈등처럼 보입니다. 목사님의 경우는 개척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이 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명이 확실하고 진실한 교역자로서 민주화 훈련이 된 목사라면 장로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아집에 찬 주장이나 독단·독선 때문에 목사·장로 간에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목사들이 토론 등 민주화의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몰고 다니게 돼 있어요.

그리고 리더십의 문제도 있습니다. 교회가 세 싸움하는 장소라면 장로는 숫자가 많고 목사는 한 명이니까 항상 목사가 지지 않겠어요? 그러나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장로가 30명이 넘지만 문제가 없습니다.

또 목사직이 힘들다고 합니다. 저는 목회가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 힘들지 않느냐고 해요. 그런데 콩나물 장사, 두부 장사도 새벽에 일어나야 해요.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생해요. 그에 비해 목사는 대우받고 살잖아요?

▲그러면 현재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사와 장로들 간의 문제가 목사로부터 기인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공연히 장로들에게 노이로제, 주눅이 들어서 당회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목사들이 기가 약해서 그러는 거죠. 지도력이 없는 거예요.

어떤 곳은 당회를 뭐하러 만들어놨을까 궁금해지는 곳도 있어요. 당회원들은 당회장의 요구에 따라 거수기 역할을 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건 당회가 아니죠. 장로장립하면서 목사들이 축사할 때 보면 ‘집사 때는 좋은 데 장로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집사 때의 교인의 위치와 장로로서의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알아줘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도 장로가 돼서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들을 오해할 필요가 없어요. 장로가 됐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는 거예요. 그것을 목사가 수용해야지 그것부터 거부해서 ‘장로가 되면 말야, 삼년 동안 입 닫고, 눈 가리고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세월 다 가게요. 장로들이 되면 할 말 해야죠.

저는 장로들이 도전적이고 할 말 해야 좋은 것 같아요. 콩이야, 밭이야 하다가 내가 이기면 내 의견을 따라 가고 장로들 의견이 맞으면 목사도 그걸 따라가야 해요. 이게 민주주의예요. 때론 목사도 잘못한 것은 ‘내가 잘못했네요’라고 인정할 것은 해야 해요.

목사들이 자기 맘대로 해야 교회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장로교회가 아니에요. 다 털어 놓고 불만 얘기하고 토론하고 결정을 내린 대로 나가는 거예요. 장로들도 목사만큼 교회를 사랑하거든요.

그러나 목사들은 전문가이기에 장로들의 발언이 비전문적인 발언이라고 해도 통치하고 리드할 수 있어야 해요. 교회가 크면 목사도 커져야 해요. 정신의 크기가 커져야 해요.

▲목사님도 언론에 관계를 맺고 있던 분이기에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치부가 눈에 더 잘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나 목회자들의 치부일 때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밝은 내용 70%와 비판적인 내용 30%면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했어요.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기자와 신문의 목적이 뚜렷하면 고발기사를 통해 한국교회를 각성시켜야 해요.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써야 해요.

기독신문사 주필할 때 어떤 기자가 교단내의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썼어요. 그런데 나는 그 기자가 좋았어요. 지시하는 대로만 하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거든요. 큰 틀에서 한국교회를 보고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것 못하면 기자도 아니고 신문도 아닙니다.

▲목사님이 소속한 합동교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합동측에서 가장 큰 문제인 총회 은급재단 이사회의 은급재단 기금 불법 사용문제가 조속한 시간 내에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또 기독신문 조사처리 문제도 심각한데요. 이 문제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은급재단 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은급 기·연금으로 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사업에는 반드시 부정직한 일들이 오가기 때문이죠.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를 대하는 교단의 모습에 있습니다. 방관하는 총대·목회자들과 고발하지 않는 언론 그리고 집단 지도체제의 나약함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법정소송으로까지 이 문제가 번졌으니 정확하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관련자들은 모든 것을 확실히 밝히고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책임져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목사님의 암 투병 이야기도 유명한데요. 지금은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쾌유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암이 걸린 지 12년이 됐는데 지금도 항암제를 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목사님 은퇴한 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3가지예요. 먼저 40년 목회를 기념해 설교집을 내고 싶어요. 두 번째는 장애자를 위해 밀알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장애인 교육 훈련을 받는 센터를 세우고 싶어요. 세 번째는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의 이사장으로서 남북의 하나됨을 위해 힘쓰고 그것이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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