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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옥한흠·박윤선·박도삼·이동휘·이중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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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옥한흠·박윤선·박도삼·이동휘·이중표 목사
  • 정윤석
  • 승인 2009.05.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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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월례회 "목사들이 기리는 선배 목회자들"

 
‘선배들의 신앙을 기리며’란 주제로 5월 8일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회장 김명혁 목사) 월례회에서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박삼열 목사(인천 송월교회), 이윤재 목사(분당 한신교회)가 선배 목회자인 한경직·옥한흠 목사, 박윤선·박도삼 목사, 이동휘·이중표 목사를 각각 회상하며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오정호 목사는 존경하고 사모하는 목회자로 한경직 목사와 옥한흠 목사를 꼽았다. 오 목사는 한경직 목사에 대해 “목사들의 목회자이자 한국교회의 목사님인 동시에 세계교회의 목사이셨던 분”이라며 “해방 전에는 고아들을 품고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고아와 미망인, 병든 자를 품는 등 신앙 실천의 최선봉에 언제나 서 계셨다”고 말했다.

▲ 오정호 목사
오 목사는 한 목사에 대해 “평생 청빈한 삶을 살고 한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 평, 집 한 채 사본 적이 없고, 저금통장 하나 없었다”며 “수많은 해외여행에서 어떤 외제품도 반입하지 않아 세관에서도 그의 수화물 조사를 항상 면제할 정도였고 영락교회에서 사택을 지어주었으나, 너무 크고 사치하다 하여 남한산성의 아주 좁은 공간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오 목사는 한 목사의 청빈에 대해 “없는 가운데서 가난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있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있음을 포기하고 자족생활을 한 것”이라며 “한 목사는 ‘참된 목사는 가난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오 목사는 옥한흠 목사에 대해서는 ‘목회의 멘토’라고 소개했다. 그는 옥 목사에 대해 “1985년부터 1992년까지 만 7년을 사랑의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옥한흠 목사의 목회사역에 동참했다”며 “자신과 사역에 대하여 무서우리만큼 정직하게 대면하시며 어떤 이들에게는 흠모함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비교를 통한 자기 비애의 감정을 나타나게 했던 분”이라고 평했다. 오 목사는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한 목사님을 비롯한 전시대의 아름다운 신앙적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전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시대를 아우르는 교회와 성도의 성숙한 모습을 갖추게 하는 일에 횃불을 드신 목회자다”고 존경의 마음을 표시했다.

▲ 옥한흠 목사
오 목사는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의 재발견을 통해 평신도들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본격적으로 열었으며, 교회 내 소그룹 사역을 정착시켜 양떼들의 행복을 도모한 목회자”라며 “평신도들을 사역의 주체로 이끌어내어 그들의 은사를 극대화하여 교회에서 봉사하며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행복한 사역자로 설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고 회고했다.

오 목사는 미국 유학할 당시 목회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주제가 ‘옥한흠 목사의 지도력과 목회현장’이었는데 강의 후 여러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가까이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담임목사인 옥 목사님을 존경할 수 있는가?”라고 진지하게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 목사는 “그때 저의 대답은 오직 한마디였다”며 “제가 ‘강의 시간에 표현한 이상으로 옥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윤재 목사(분당한신교회)는 이중표 목사와 이동휘 목사를 기렸다. 이 목사는 이동휘 목사에 대해 “만 49세에 전주 안디옥교회를 개척하고 군산 비행장 격납고를 건물로 지었다”며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겨울에는 히터대신 장작난로를 피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겨울에는 장작난로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여름에는 선풍기 소리 때문에 예배를 드리기 힘겨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 이동휘 목사
이 목사는 “이동휘 목사님은 선교일념으로 사셨기 때문에 불편하게 사는 것을 감안해야만 했다”며 “당회장실에 한번 가보면 비닐소파에 세계지도가 하나 있고 각종 공문서가 너절하게 있어서 이것이 복덕방인지 뭔지 모를 정도였는데 ‘선교 복덕방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목사님이 은퇴한 후 수원에 사시는데 한 번 찾아가 ‘왜 수원에 오셨어요?’ 하니까 ‘수원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왔어’ 하시더라”며 “정말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고, 철저히 선교에 미쳐 사는 이런 분을 우리의 선배로 모신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중표 목사에 대해 이윤재 목사는 “그분의 두 날개는 ‘예수님과 민족’,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었다”며 “어렸을 때부터 질병과 가난 속에 사시고 또 여러 목회현장에서 자기를 죽이는 경험을 통해서 신학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중표 목사님은 특별히 세 번의 수술을 통해서(네 번째 수술 후 별세했다) 죽음과 가깝게, 죽음과 삶이 늘 백지장 한 장처럼 느끼는 그런 삶을 살았던 분이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중표 목사의 별세신학에 대해 “1980년대에 별세 신학이 나왔는데 당시는 먹고 살만한 시대에 진입했을 때”라며 “먹고 살만한 시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부터 떠나고 물량주의에 빠져가는 한국 교회를 보면서 철저히 그리스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인 반성으로부터 별세신학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 이중표 목사
이로 인해 이중표 목사의 설교는 “‘예수로 살고 예수로 살게 하라!’였다”며 “설교를 딱 끝내고 교회당을 나갈 때, 그 사람에게 예수가 남았으면 성공하는 설교, 다른 게 남았으면 그건 성공 못했다는 것이 이 목사의 설교론이었다”고 말했다.

이윤재 목사는 이중표 목사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한 번은 암으로 판명된 뒤에 어떤 분이 방문했더니, 눈물을 쫙 흘리셨다고 해요. 그래서 ‘왜 우시냐고, 별세를 말하시던 분이 왜 우시냐고?’ 했더니, 이중표 목사님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암 선고 받기 전에 예수님 안에 일찍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감사해서 운다’고, 예수님 안에서 일찍 죽었기 때문에 지금 사는데, 지금 그 때 죽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고, 암 걸려서 큰 일 날 뻔 했다고, 너무 너무 감사해서 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일찍 죽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해서 우셨다고 합니다.”

박삼열 목사는 고 박윤선 박사에 대해 “목사님은 무엇보다도 진실하고 뜨거운 분이셨다”며 “설교순서가 될 때까지 목사님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깊이 숙이고 몸을 흔들면서 ‘주여! 주여!’ 기도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박 목사는 박윤선 박사에 대해 “설교시간에 강단에서 늘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였던 분”이라며 “정작 단에 서면 뜨거운 영력에 쌓여서 전하곤 했는데 그 열정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마지막 순간까지 잘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박윤선 박사의 설교 준비에 대해 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께서는 주일 설교를 위해 주초부터 하나님 앞에 계속 여쭌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나요···?’ 그러다보면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하루 이틀 더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본문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고 그 본문이 점점 더 확실해 지면 그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본문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대하는데, 이미 목사님이 다 주석한 본문이지만 다시 더 깨닫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원문도 보고 다른 주석들이 있으면 또 참고하신다는 것입니다.”

박 목사는 박윤선 박사에 대해 돌아가실 때 “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초를 하신 분도 아니신데 돌아가실 때 간이 없었습니다. 다 닳도록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은 ‘주여! 주여!’를 계속하시면서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박삼열 목사는 자신의 선친인 박도삼 목사를 존경하는 목사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박 목사는 박도삼 목사에 대해 “목사님은 새벽기도를 마친 후 골목골목 그 가정이 믿는 가정이든, 아직 믿지 않는 가정이든 상관 않고 방문해 새벽심방을 했던 분”이라며 “‘이 집은 아침 뭘 해서 먹나?’라고 들여다보고는 ‘기도합시다!’라고 하면서 기도해 주곤 했는데 그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모종의 신앙이 자라기 시작해 교회로 모였다”고 말했다. 박삼열 목사는 “그렇게 신앙이 배양된 성도들이었기에 방금 신학을 마친 초보 목회자인 저로서는 따라가기 멀기만 했다”며 “선친인 박도삼 목사는 사랑의 농부였다”고 평했다.

오정호·이윤재·박삼열 목사의 회상을 들은 전병금 목사는 한경직 목사에 대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낸 신기한 분”, 이중표 목사에 대해 “그 앞에서 울기만 하면 도와 줄 정도로 계산이 없는 순수한 분”, 이동휘 목사에 대해 “선교를 위해 자기의 전체를 드린 분”, 옥한흠 목사에 대해 “한국교회 갱신과 교회 연합을 가슴에 품고 항상 고민하시는 분”, 박윤선 박사에 대해 “말씀 중심의 성경해석으로 설교의 틀을 세우신 분”이라고 평했다.

‘선배들의 신앙을 기리며’란 주제로 5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연 한복협은 6월 12일에는 강변교회(허태성 목사)에서 ‘작은교회들을 격려하며 함께하는 한국교회’란 주제로 6월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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