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의 사상은 그의 설교 전반에 걸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기자는 '박철수 영성'의 실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밝히기 위해 박목사의 문제 설교를 녹취 정리했다. 이중 일부를 본 호에 싣는다. 준비한 자료들은 <영성 성장 세미나1>(총 7개), <영성 교육 상담 세미나>(총 10개), <영성성장 세미나2>(총 8개), <성령의 이중적 사역>(총 15개) 등이다.
박목사 인간론 사상의 핵심은 '이원론'이다. 이 사상은 구원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박목사는 철저한 영과 육(혼)의 분리, 영과 육(혼)의 별개의 인격 등의 인간론 사상을 가지고 있다.
박목사에게 있어서 혼은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는 기관으로서 '죄'와 연결시킨다. 육은 컴퓨터 같은 기계로서 인격이 없다고 설명한다. 반면 영은 박목사의 주장을 따르면 거의 초인적인 존재로 부각된다. 영은 마치 슈퍼맨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첫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이것을 잘 개발한 사람은 천리밖에서 누가 자기를 찾는지 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한 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둘째, 영은 육신보다 지능이 만 배나 고차원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영에 대한 관점은 구원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박목사에게 있어서 중생은 이렇게 설명된다. 철저히 육과 인격적으로 분리된 영의 인격으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을 본래의 주인된 자리에 올려놓는다고 한다. 이때부터 영의 성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본지는 이처럼 황당한 박목사의 인간론과 구원론, 성령론, 성경해석 부분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인간론
영과 혼과 몸의 인격은 전혀 다르다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자 예수님. 언뜻 보면 세 분처럼 착각할 만큼 인격이 다르시다. 이걸 알아야 되. 나중에 여러분이 영과 혼과 몸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만 영과 혼과 몸을 배워보면 영의 인격과 혼의 인격이 달라요.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육신은 죄의 법을 사랑한다고 했어요. 전혀 달라요. 인격이. 겉사람은 평범한데 속사람은 영혼이 탄식하는 게 있어요. 속에서. ‘내 영혼아 왜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느냐?’ 다윗이 그렇게 얘기했다는 말예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고 성령이 말씀하실 때가 있는 거예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신앙이 자라야 해. 그냥 모르니까 무조건 주먹구구식으로 똑같이 생각하니까 문제가 많이 생겨요”(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번 테이프).
우리 영혼도 천사와 같은 투명한 몸이 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중 부자가 음부에서)“저 건너를 보니까 아브라함 품에서 자기네 집에 와서 떨어진 것 주워 먹던 거지, 나사로가 신바람 나게 막 위로를 받고 있어. 너무너무 편안해 보여. 그래서 ‘아브라함이여, 아브라함이여. 저 손 끝에 물 한 방울 찍어 가지고 나의 혀 끝에 발라서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왔다 갔다 할 수 없다. 너는 세상에서 신나게 살았으니까 고난을 받는 게 마땅하고 그 사람은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위로를 받는 게 마땅하지 않느냐?’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야긴데.
그러면 거기서 보니까 몸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서로 보고, 듣고, 말하고, 손가락 찾고, 혀 끝에 대냐 이 말이에요. 우리 영혼도 천사와 같은 몸이 있어요. 천사와 같은 투명한 몸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천사와 같은 몸이 있어요. 몰라요? 왜, 몰라요? 그래서 플라톤이란 사람은 뭐라 그랬느냐 하면 그런 얘기를 해요 우리 육체는 그림자이고 영혼은 진짜배기 형상인데 죽는 것은 원 형상대로 돌아가는 것이 죽는 거다.
불교에선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육체는 거짓 나, 영혼은 참 나라고 합니다. 영은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인격처럼 자라는 것을 성불이다. 그리고 세상에 얽매인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 초탈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기쁨의 극치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그들이 열반의 경지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사 중에 고대 기독교 사상이란 책이 있어요.
그 책에 보면 성 어거스틴이란 사람이 얘기한 얘기를 000박사라는 사람이, 아세아 연합 신학원의 원장인가 그렇습니다. 그 책에 보면 영혼에 대한 플라톤의 인식론, 지식론을 인용해서 쓴 글이 있는데 뭐라 그랬느냐 하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육체의 눈이 있는 것처럼 영혼도 본다. 육체의 귀가 든는 것처럼 영혼도 듣는다. 육체의 눈으로 보고 인식하는 것처럼 영혼의 이성으로도, 영혼도 이성이 있다. 영혼의 이성으로도 인식한다’”(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 a).
우리 영혼은 지능지수가 육체보다 만 배나 고차원적이다
“저는 여기다 조금 더 발전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영혼은 천사와 같은 투명한 몸이 있는데 그 영혼이 우리 몸에서 빠져 나가면 나의 육체적인 몸과 영혼의 몸이 이렇게 분리되어 가지고 영혼이 나를 보고 내가 영혼을 보는 단계가 있어요. 그렇게 실제적으로 보는 단계가 있어요. 실질적으로 그래. 그래서 현대 심령 과학은, 어떻게 보면 ‘미신적이다, 사탄적이다, 마귀적이다’ 그렇게도 얘기합니다만은, 그러나 현대심령과학을 과학으로서 알려 그러는 것보다는 심령 현상으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참고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나라에 나와 있는 심령 과학이란 책이 있는데 000 씨가 썼는데 그 사람은 불교 신자고 불교 식으로 쓴 책이에요. 그런데 그 겉장을 탁 보면 천연색 칼라 사진으로 나와 있는 사진이 있는데 사람이 죽을 때 카메라로 촬영을 했더니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과학적으로 촬영해. 그런데 몸하고 영혼 사이에 하얀 선이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카메라에 나온 것을 그대로 보여 준 거예요.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또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 간증을 들어보니까. 분명히 죽어가지고 시체는 관속으로 푹푹 썩어져 가는데, 어떤 사람은 냉동실에 들어갔는데 아, 영혼은 다 예수님 만나고 보고 그리고 돌아와서 살아났단 말이야. 그런데 분명히 몸이 있잖아요. 눈과 귀도 있으니까 예수님과 얘기를 하지 않느냐 이 말이에요!
이해가 되죠? 영혼이 그런 존재예요. 막연하게 영혼, 영혼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 영혼이 천사와 같은 몸도 있고, 귀도 있고, 눈도 있고, 이성도 있단 말이야. 저는 거기다 하나 더 보태서 설명을 하고 싶어요. 우리 영혼은 IQ, 지능지수가 육체보다 만 배나 고차원적이다”(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 a).
내가 보니 몸은 기계니까 인격이 없고 혼은 죄인이구 영은 사랑의 극치였다
“삼분설에 대해서 좀 이해하시기 쉽게 제가 개인적인 체험을 조금 설명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내가 나를 보게 하시는데 내가 셋이라고. 셋. 하나는 영이고, 하나는 혼이고, 하나는 몸이야. 마치 셋인 것처럼 보여져. 이상하다. 그것으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지. 그 다음. 두 번째. 며칠 지나서 나의 영과 혼과 몸에 직능을 보여줘. 직능. 몸은 컴퓨터. 기계. 녹음기처럼. 기계 같아. 혼은 야비한 사람 있죠. 그렇게 보여. 영은 그냥 좋은 사람. 세 번째 인격을 보여 주는데 녹음기 컴퓨터 같은 몸은 기계니까 인격이 없어. 혼은 무지무지한 죄인이더라구. 영은 사랑의 극치더라.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래서 나의 혼과 영이 둘이 교제를 하는데 친한 친구들이 만난 것처럼 교제를 하는데 내 혼이 내 영에게 하는 말이 ‘내가 지금까지 죄를 지어서 미안해. 그래서 내 온 몸에 주인 행세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주권을 나의 영에게 인계를 하더라고. 그런데 내 영이 아주 아름다운 사랑과 관용으로 포옹해 주고 인격으로 정복하니까 혼이 영에게 아주 인격적으로 승복을 당해. 그것을 보여 줘.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때부터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영이 하고 싶은 대로 내 몸이 따라가 주는 거야. 기능만 얘기할 때. 그러니까. 이와 같이 영과 혼과 몸에 개체의 구분이 다르고, 삼위일체의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 다르신 것처럼”(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 b).
몸은 인격없는 기계, 혼은 무지무지한 죄인, 영은 사랑의 극치
“(개인적인 체험을 말하며) 하나님이 나의 영안을 열어 주시는 거야. 우리 영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영도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이성도 있어서 영을 잘 개발한 사람은 천리안이 열린다고 해서 보통 세상 사람 중에서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이 천리안이 열린다고 해서 영을 잘 개발한 사람은 천리 밖에서 누가 자기를 찾으러 오는지 그 사람이 무슨 일 때문에 찾아 오는지 압니다. 영은 거듭나지 못해도 그런 기능이 있다 이 말이에요. 철학자들의 영이 움직이고 문학가들의 영이 움직이는 것은 그것은 거듭나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영이 원래 그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 말이에요. …
이제 눈이 열리는데 영혼의 눈이 그 기능이 어떤 것인가를 나에게 먼저 알려 주세요. 나에게. 다시 말하면 나의 육체에게 먼저 알려 준다는 거예요. 왜, 우리 육체라는 것은요 자기가 경험한 이상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 깜짝 놀라요. 지나친 경험을 하면 돌아버려. …육체가 그만큼 약해. 하나님이 그것을 잘 아셔. 그러니까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체험을 줘서, 놀라지 않게 체험을 주시더라구. 할렐루야. …
그러다가 집에 갔어요. 한 일주일 지났는데 이번에는 지구의 반대편을 보여 주는 거야. 이거 정말 점점 더 모를 일이거든. 누구보고 얘기하면 돌았다고 말할테니까 말도 못하고 그러면서 꿀먹은 벙어리로 지내다가 며칠 후 하나님이 나를 보여 주는데 내가 셋이더라구. 영이 있고, 혼이 있고, 몸이 있고. 내가 셋이야. 점점 모를 일이야. 미치고 환장할 일이야.
셋인데 처음에는 슬쩍 모습만 보여 주시더니 한 주간 지나니까 세 개의 개체에 두 명을 보여주는데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컴퓨터 같아. 기계 같더라고. 혼은 그냥 야비한 사람, 영은 좋은 사람, 그런 것이 보여 기능이. 얼마 쯤 지나서 다시 보여 주는데 몸은 기계같으니까 인격이 없어. 혼은 야비하다고 했지. 혼은 무지무지한 죄인, 우리 사람으로 비교했을 때, 무지무지한 죄인.
영은 인간적으로 말하면 아주 좋아서 사랑의 극치 있잖아요. 그런 존재더라고, 내 영이. 그러더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몸의 입장에서 영과 혼을 보게 하시고, 혼의 입장에서 영과 몸을 보게 하시고, 영의 입장에서 혼과 몸을 보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조명하시더라고. 야, 별스럽다. 그런 경험을 했어요. 그 다음에 두 인격이 다르다고 했잖아요. 영하고 혼하고, 영하고 혼하고 계속 허심탄회하게 교제를 하는데”(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혼이 몸의 주인행세를 했던 것을 내 영에게 사과했다
“혼이 내 영에게 하는 말이 내가 지금까지 주제 넘치게 온 몸에, 선후배로 따지면 형님이, 에서와 야곱처럼, 쉽게 말하면 영이, 영이 형님인데 에서가 먼저 났잖아요. 겉사람. 혼이 먼저 난 게 에서거든. 그런 것처럼 혼이 지금까지 온 몸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별 짓 다했는데 그걸 깨닫고 혼이 영에게 사과를 해.
그런데 내 영이 혼에게 그 사과하는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용서해 주면서 이해하면서 사랑으로 포용을 하니까 나의 혼이 영에게 인간적으로 말하면 홀딱 반하는 것 있죠. 인간적으로 홀딱 반하는 거야. 그래서 영이 혼을 사랑하는데 혼이 아주 담대해지는 거야. 영의 사랑이 아마 부모로 말한다면 어머니 사랑같다고 하면 혼의 사랑은 자식의 사랑 같다고 그렇게 비유할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런 관계가 돼서 이제는 완전히 주인이 바뀌는 거야.
이제는 혼이 주인이 아니고 영이 주인이 되는 거야.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영으로 깨닫기 시작하는데 하나님 말씀에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들이 문자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야 다시.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이제 그 말씀대로 지켜보려고 노력하게 되고. 조금씩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켜지고 그런데 얼만큼 가니까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을 느끼게 돼.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에 비추어서 원 말씀에 비추어서 나는 정말로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연약성을 내 영이 고백하는 거야.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 주시는데 그쯤 깨달으니까 보여 주시는데 내 죄가, 내 죄라는 말은 온 몸의 죄죠. 영혼몸 전체가 짓는 거니까. 죄를 졌는데 죄가 산더미처럼 많은 것을 보여 줘. 그래서 내 영이 주인이 돼서 ‘오, 하나님. 나는 정말로 죽을 죄인입니다’하고 고백을 하니까 그 순간 하나님이 그 모든 죄를 다 바람에 날아가는 티끌처럼 없애 주는데 너무너무 기쁘고 즐거워. 할렐루야”(발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영혼이 몸하고 분리돼서 영의 심장이 별도로 뛰기 시작했다
“하루는 갑자기 내 몸에서 영을 뽑아내, 분리시키는 거예요. 아까는 인격적으로만 분리된 거예요. 인격적으로만 분리된 거고. 이제는 아주 몸뚱아리 자체를 분리시키는 거예요. 이제는 몸하고 영혼의 몸하고 분리를 시키는 거예요. 분리되서 영의 심장이 별도로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영의 생각과 마음이 완전히 별도로 떨어져 있는 거예요. 내 몸은 따로 떨어져 있고. 완전히 분리가 되는 거야. 그쯤 되니까 영의 이성과 지성, 인격이 완전히 동원돼서 훤히 깨닫게 되고 깊은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내 영이 저 뒤에 서 있는 거야.
떠 있는 거야. 공중에.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야. 그 때 내가 최초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 내 영혼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영생했노라’하는 음성이 들리는데 그 영혼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얼마나 기쁜지. 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대해 해방이 되었어. 그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졌어. 그런 후에 하나님이 나의 사고방식을 고쳐 주시는데 영의 기능, 영의 인격으로 사람을 보게 만들어 주시는데 사람을 육체로 보지 않게 하시는 거야”(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영혼에는 눈도, 귀도, 이성도 있다
“영혼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거예요. 영혼은 천사와 같은 투명한 몸, 혹은 신령한 몸을 가지고 있다.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눈도, 귀도, 이성도 있다”(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9강의 개인상담의 기본원리와 방법).
“하나님은 주관적 구속사에서 각 개인의 영혼을 거듭나게 만들고 육체가 하나님과 원수되고 또 영혼과 육체가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것을 우리 육체에게 성령의 은사 능력을 줘서 아주 쉽게 말하면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 국제 외교상 많이 써먹는 것처럼 북한에 반대 급부니 경제적인 실리를 줘야 협상이 잘 진행되고, 합의되듯이 우리 육체에 가지가지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능력과 권능을 소유해서 뭔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줘서 한 단계, 한 단계 우리 육체를 무능한 육체를 능력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는 이제 윗단계,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들어가면 …육신도 은사적으로 어떤 차원에 올라가면 무능한 게 아니라 말씀대로만 살면, 순종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게 보장되었다는 걸 깨달아. 그 때부터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야”(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10강의 영성목회 사역).
구원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그것은 우리의 영을 말한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영과 혼의 차이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많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그것은 우리의 영을 말해. 영! 영! 육체의 생명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을 말하는 거예요. 성령의 일과 육신의 일이 잘 분별이 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 신자들은 맨 육신이 잘 되는 것에만 빠져 가지고 영적으로 잘 되는 일이 뭔지 몰라”(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
‘나’라고 느끼는 그것을 박살내고 죽이기 위해 예수를 믿어야 한다
“영에는 직관이 있고, 양심이 있고, 영적인 교통하는 영교가 있다. 그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 그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우리 영의 눈과 귀, 이성이 열려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거듭나야 되죠. 그러면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린다는 말을 듣죠. 그것이 실제적인 거예요. 말로만 있는 게 아니에요.
또 혼에도 생각이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단 말예요.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심리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응관계, 서로. 좋고 나쁘게 느끼는 마음, 감정 있잖아요. 그것을 지정의라고 하거든요. 에, 그런 게 다 있단 말예요. 그 다음에 우리 몸에는 세상적인 의식인데 세상 의식, 뭐, 촉각, 후각 뭐 이런 것 있잖아요. 기분 나쁘다, 음산하다, 뭐 이런 것들은 다, 우리 몸이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환경과의 관계, ‘아이, 뜨거워. 그러는 것은 신경에서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괴롭다고 느껴도 우리 혼이 괴롭다고 느끼는 것하고, 영은 평안해. 육신적으로는 막 괴로운데 영은 찬양, 성부, 그런 식으로, 영은 또 찬양을 해. 영은 또 막 괴로워 죽겠는데 혼은 또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 부를 때도 있단 말예요. 이게 혼과 영의 차이점이에요. 이 전혀 다른 거예요. 언뜻 보면 이중적으로 느껴지는 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서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이제 기억하세요. 이렇게 기억하셔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고 느끼는 것. ‘나’, ‘나’, 나라고 느끼는 그 나가 누구입니까? 나, 나, 그러는 게 바로 하나님과 원수라. 고게 죽어야 돼. 고게. 박살 나게 죽어야 된다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살릴라고 한단 말예요. 고걸. 고걸 살릴려고 예수를 믿거든. 고걸.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죽이려고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고”(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테이프 서론 1 b).
“내적 중생을 공부하는데 우리가 인간론을 배웠죠? 인간론. 인간론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이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나타나는 현상이냐? 세상 만사가 다 법이 있습니다. 법대로 안 하면 안돼”(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육체보다 지능지수가 만 배나 높은 우리 영으로 영원한 천국을 사모할 수 있을 때까지 자라야 조금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거듭나는 것은 뭐냐? 우리가 이분설적으로도 배웠고 삼분설적으로도 배웠어요. 삼분설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속사람 영이, 영,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생명이 갈라져 있었는데 죄 때문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고 영혼의 영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나의 영이 하나님과 갈라져 있는 것을 죽음이라고 해. 그래서 ‘영이 그 생명적인 관계가 회복이 돼서 영이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게 사실은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배웠잖아요. …
미리 말씀드렸거니와 영의 지능지수는 육체의 지능지수보다 만 배나 고차원적이다. 육신으로는 좋은 어머님도 몰라요. 영으로는 심령 과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텔레파시라 그래서 저 너머의 것도 봐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물론 은사적인 거지만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죄 짓고 있는지도 보여 준다는 말이에요. 그 신비한 사건을 성경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통찰력, 그래서 영혼에도 눈과 귀와 이성이 있다고 하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통 생활 속에서 말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뭐, 예수님 믿는 사람들 영안이 열렸다는 등, 영의 귀가 열렸느니 그런 얘기하는데, 그런데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것하고, 대충 환상이 보이는 것하고 음성이 들리는 것하고 이제 장성해지면 분별이 되요.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서 막상 뭔가 보였다 하는 것은 초보적인 것이고, 우리를 하나님이 영적으로 깨우쳐 줘서 영적으로 자라게 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지 깊은 단계로 들어가면 영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영으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박집사님 같은 경우에 동생으로 알잖아요. 서로가. 내, 친동생, 부모님을 알고 자기 가족으로 안단 말예요. ‘이건 내 자식이다. 이 분은 부모다.’ 안단 말예요.
그런 것처럼 내 영이 우리 육체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예요. 내 영이 내 영혼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육신적으로는 못 봤지만 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서 그 예수님이 정말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확실히 아는 것. 우리 부모님이 나를 낳아서 나를 기른 것은 잘 몰라요. 사실. 믿어지지가 않어. 그런데 우리가 자녀를 낳아서 길러 보고 내가 자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느껴보니까 부모가 나 사랑하는 것을 느껴보니까 고게 고거야.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알게 만들어 주시고 나의 영으로 말미암아. 나의 영은 시공간을 초월하거든. 영의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해요. 육신의 세계는 시간속에서 살지만 우리 영의 세계는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육천 년 전 사건도 알고 만 년 전 사건도 알아요. 세상 말로 말한다면. 그리고 지금부터 영원한 내세까지 알게 되어 있어요. 할렐루야. 이것이 영적인 통찰력이요, 영적인 신령적인 사건이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깨달아 아는 것은 육신의 유한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육체보다 만 배나 IQ가 높은 우리 영의 지능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의하여 알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원한 내세가 믿어지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런 것이죠. …
성령에 의하여 우리 영으로 알게 되서 심지어는 사랑하게 될 때까지 저 영원한 천국을 사모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자라야 우리가 그래도 조금 뭐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는 말예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게”(박철수 목사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로마서 2장 29절,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말은 바로 우리 영혼이 거듭나는 것을 말해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맨 껍데기는 우리 육체라고 하면 몸이라고 하면, 두 번째 껍데기가 혼, 혼 안에 그 속에 영이 있다. 그러니까 마음의 가죽, 혼의 가죽을 베면 영이 흘러 나온다. 뭐 이렇게 우리가 그림처럼 상상하면서 설명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할례에 대해서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까 영적으로 거듭나야 영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그래야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만들어 주겠다. 성령을 통해서. 그런 얘기예요”(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구원사역).
영혼이 온 몸의 본래의 주인이다
“두 종류의 성령충만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영혼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첫째는 영혼이 자기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혼이 온 몸의 본래의 주인이라는 것을 성령께서 인식시켜 줘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심령 과학이나 불교나 다른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초단계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조금 더 변하면 우리가 뉘집 딸이었던 존재가 아내요, 어머니란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라고 하는 재발견을 하게 만들어요… 영혼에 대한 영성은 첫째 우리 몸의 원 주인이 영혼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또 영혼과 육체가 한 몸인데 온 몸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보여줘”(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3강의 영혼과 영성).
몸의 주권자를 영으로 발전시키자
“첫번에는 영혼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요. 영혼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영혼이 내 몸에 주인이 되고, 주인이 되도 과거에 육체가 마음대로 하던 주인 노릇하는 게 아니라 가장 고상한 인격적으로 몸의 주인이 되서 혼을 다스리는데 지배하지 않고 상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인정해 주는 세상에 그렇게 민주적인 방법이 없어. 그래서 하나님이 영혼을 세워 주셔.
육체가 제 영혼에게 과거에 주인 노릇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영혼은요 폭넓은 관용으로 다 포용하고 이해를 해요. 그러니까 혼이 완전히 감복을 했어요. 어떤 주종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로 순종을 해요. 그런데 영이 점점점 내 몸의 위치에서 커져 가는 거예요. 몸의 주권자가 영으로 발전하는 거예요”(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3강의 영혼과 영성).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하나님과 같은 영생체를 만드시려는데 목적이 있다
“기독교 최고의 특권과 축복이 바로 중생하는 거예요.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다시 태어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체로, 영원체와 영생체는 다릅니다. 첫사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쵸?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지만, 영원체는 될 수 있었지만 영생체는 될 수 없어요. 알아들으시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하나님과 같은 영생체를 만드시려는데 목적이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8강의 영성교육과 상담).
성령론 문제
“아홉가지 열매는 생명적(내적충만: 녹취자 주)이고, 아홉가지 은사는 능력적(외적충만: 녹취자 주)이잖아요. 내적, 외적 응? 이 두가지 다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다 있어야 해요. 능력만 받고 생명이 없으면 구원이 없고, 생명은 있는데 능력이 없으면 만날 비리비리한단 말예요. 이해가 되요?… 성령의 내적 충만과 외적충만이 두 가지가 겸하면 핵폭탄 같은 역사가 나타나서 마귀, 세상 나라, 원수마귀 착착착 박살을 내 가는데 한 가지(예를 들어 내적충만만 있을 경우: 녹취자 주)만 있으면 비리비리하다.
그래서 마귀란 놈이 ‘보수, 보수’ 찾는데는 ‘야, 은사는 귀신 방언이다!’라고 해서 은사를 못 받게 하고, 오순절 계통은 ‘라라라, 따따따’ 받으면 ‘그것 받으면 다 됐다!’ 그것 하나만 받으면 다 된 줄 알고, 착각하게 만들어 가지고 저거 못받게 만들어가지고 그런다는 거예요”(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구원사역).
은사를 충만히 받았을 때 나무하고 얘기도 해봤다
“(방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설명을 하며) 개인적인 체험인데 제가 처음에 은사를 충만히 받았을 적에 대물방언을 해 본 적이 있어요. 나무하고 얘기해봤어요. 나무가 보통 사랑이 많은 게 아니에요. 자기만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구요, 옆에 나무도 기도를 해 달라고 하는 그런 것을 봤어요. 제가 그래서 창경원 옆에 비원 옆에 가로수는 옛날에 제가 전부다 안수 해 준 나무들이에요”(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은사 1번 테이프).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왜냐고 하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뭐냐고 하면 기록된 말씀의 원뜻을 알게 해 주신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죠. 은사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하면 A라는 집에 갑자기 심방을 하게 되었어요. 집에서 기도로 준비를 못했단 말예요. 그런데 그 집까지 가는 시간이 5분에서 10분 거리에요. 가면서 ‘하나님, 아무개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가는데 주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야, 무슨 성경 몇 장부터 몇 장까지 봐라!’ ‘예, 알았습니다.’ 기도하고 간단 말예요.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읽어보면 일반적인 내용은 알겠는데 영적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 때 물어보는 거예요. ‘주님,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제목, 대지, 소지, 착착착 알려 주신단 말예요. 이것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예요.
그 다음에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뭐냐. ‘그러면 제목과 대지는 알겠는데 하나님, 왜 이 집에 이 말씀을 주십니까?’ 그럼 그 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혹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그 집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게 해 주세요. 즉 그 말씀을 그 집에 어떤 의도로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 지혜의 말씀의 은사예요. 할렐루야.
이것을 안 받으면 목회를 못해. 목회를. 요것을 짝 받아서 짝짝 써먹어야 아주 편안하게 목회한다고. 이것 안 하면 맨 그냥 짜내가지고 사전찾고 뭐 찾고 그것 찾아가지고 하니까 세월은 다가고 골치만 아프고 머리만 빼개지는 거야. 그러니까 아홉가지 은사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이야. 이것 다 받아서 은사가 충만해서 그것을 평범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면 뭐 보통 좋은게 아니죠. 편안하죠. 설교준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물어요. ‘앞으로 어떻게 설교를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까?’ ‘성경 어디를 강해해라.’ 알았습니다. 강해를 쭉하면 된다고”(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졸도를 해. 그래서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환상이 보이는데 큰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어. 왜 그러냐고 하나님께 물었더니 조상들이 시골에서 집 지킴이라고 구렁이를 섬긴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요. 어떡할까요? 그랬더니 대신 중보회개하라고 시키라는 거예요.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예수 이름으로 꾸짖으라는 거예요. 도망가요. 그 순간 깨끗이 나았어요. 할렐루야”(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주님께 ‘어떻게 할까요?’라고 백번하고 천번하면 나중에 예수님 닮아가며 평범하게 순종하게 된다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즉 방언 기도해서 하나님께 묻잖아요. 자, 물으면 주께서 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해라!’ 우리 생각대로 하면 죄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주께 물어서 하면 가급적 말씀에 가까이 가게 한 번 하고, 두 번하고, 열번하고, 백번하고, 천번하면 나중에 예수님 닮아가는데 우리가 평범하게 순종할 수 있어요.
저도 말씀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요. 기도하고 묻고, 기도하고 묻고, 지시받고 했는데요 처음에 백가지, 이백가지, 혹은 천 가지 정도 지시받을 때만 해도 되는 것도 같고, 안되는 것도 같고 그렇더라고. 그런데 한 만 가지쯤 넘어가는 단계까지 가면 생활 속에 순종한다는 것은 평범해요. 말 잘 듣는 자녀들이 순종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예!’ 하고 순종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해요. 여기서 내가 짚고 넘어갈 것은 이와 같이 신앙생활, 다른 말로 하면 교회 생활이죠.
신앙생활은 영적인 변화와 성장과 훈련에 의해서 성숙한 신자가 되는 것이 교회 생활인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 생활을 잘 못하고 있어요. 그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데는 관심이 없고, 교회에서 니가 높으니 내가 높으니 내가 똑똑하니 네가 똑똑하니,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교회가 기본적인 사명을 상실하고 있는 거예요”(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은사 3번 테이프).
‘조명 계시’ 없으면 안된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설명하며) 13장의 방언도 폐하고 예언도 그치고 그런 말이 나오죠. 여기로 오면 방언을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는 말이 나와요. 그러면서 밑에 보니까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고전 14:6: 녹취자 주) 요즘 예언이 없다는 사람들, 계시가 없다는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에요. 여기 보니까 분명히 성령의 은사적으로는 계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말 것은 성령의 은사로부터 오는 계시는 조명 계시예요.
다시 말해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아 알게 하는 계시지 그 계시가 성경외의 다른 계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성령 원 계시는 revelation이라고 하고 깨달아 알게 하시는 조명 계시는 inspiration이라고 해요. 계시 자체가 다른 거예요. 계시를 오해해서도 안되고 계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즉 형제들아’ 거기서 말하잖아요.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거 없으면 안되요”(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은사 3번 테이프).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은 열번을 물리쳐도 떠나지 않는다
“예언은 분별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예언이 있을 때 여러분이 꼭 기억하실 것은 예언이 오면 일단 믿지 말고 그 말은 시험해 보란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께 속했나 안했나. 참 예언인가 아닌가 분별해 보란 얘기예요. 먼저 ‘하나님, 제가 부지중에라도 지은 죄가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먼저 회개를 해야 되요. 그리고 예수 이름을 힘입어서 귀신을 대적해서 물리쳐야 해요.
그 다음에 그 예언을 주는 영도 사탄으로 보고 대적해야 되요. ‘사탄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한 세 번쯤 반복, 강조해서 물리치는 거야. 그러면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시는 예언은 열번을 물리쳐도 계속 옵니다. 그런데 사탄이 주는 예언은 보통 서너번쯤 대적하고 물리치면 떠나갑니다”(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은사 3번 테이프).
“우선 여러분이 한단계 한단계 성장을 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실제가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아, 이렇게 사는 거구나’라고 깨닫고 살아질 때 완전한 단계에 들어가고 나서 그 다음에 때가 와요. 우리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성령님이 먼저 말씀 하시는 때가 와요. ‘야, 너 이렇게 말하라!’ 그렇게 성령님하고 평범하게 교통이 되요. 은사도 초보단계는 방언해야만 꼭 교통이 되. 깊은 단계로 들어가면 우리말로 해도 성령님하고 통해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해!’ 그렇게 되요”(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9강의 개인상담의 기본원리와 방법).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까 방법이 뭐냐하면 성령님과 평범하게 교통할 수 있어서 내가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신뢰할 수 있어서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100% 믿어야 말하는 그렇지 않으면 말해봤자 헛일이잖아. 우리가 거기까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9강의 개인상담의 기본원리와 방법).
성경해석 문제
야곱이 팥죽과 떡을 주고 산 장자권은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물과 피로 장자권을 회복한 것을 말한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두 아내가 율법과 복음이라는 말을 썼어요. 또 두 아들이 이스마엘과 이삭이 육체를 따라 나고 성령을 따라 난 것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나중에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서 쌍태아를 낳잖아요. 에서와 야곱.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잖아요. 이 복잡하잖아요. 또 야곱의 두 아내, 이게 좀 복잡해요. 그런데 리브가가 쌍태아를 낳았는데 그게 먼저 낳고 나중 낳고 그리고 나중에 야곱이 팥죽과 떡을 주고 장자권을 사잖아요. 이게 다 구속사적인 하나님의 언약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물과 피로 영혼이 거듭나게 되서 장자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단 말예요.
그래서 에서가 먼저 났어요. 먼저 난게 우리 육체잖아요. 야곱이 두번째 났잖아요. 우리 영혼이, 우리 영혼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장자권을 회복하고 거듭났을 지라도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잖아요. 그리고 외삼촌 집에 갔는데 자기가 사랑한 것은 라헬을 사랑했는데 그 삼촌이 레아를 먼저 주죠. 그러니까 율법과 복음이 객관적 구속사의 율법과 복음하고 주관적 구속사의 율법과 복음하고 달라요.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야. 아까 말씀드린 아브라함의 두 아내가 율법과 복음을 말했다면, 주관적 구속사로는 야곱이 장자권을 사가지고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말하면 거듭난 후에, 거듭난 성도들이 복음만 사랑하거든요. 복음.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을 먼저 주시지 않아요. 율법을 먼저 주세요. 그래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라헬을 주었죠.
그런 것처럼 두 여인도 두 여인이라는 개념이 율법과 복음, 복음에 있어서의 의미가 각각 달라요. 객관적 구속사로서 다르고, 주관적 구속사로서 다르고.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성령께서 그런 것을 이해하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그랬는데 그런 것들을 본인이 알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그래서 한 가지, 한 가지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시더라고”(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10강의 영성목회 사역).
기타 문제
영서 ‘은사’는 방언, 통역, 예언의 복합적인 은사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나중에 영서 은사를 받은 다음에 기도를 해서 물어보니까 그 때서 말씀하시기를 방언, 통역, 예언의 복합적인 은사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데 방언 기도, 방언 찬송이 나오더니 갑자기 손에 무지무지하게 힘이 오기 시작하는거예요. 그러면서 영서가 써지기 시작하는데 최초의 영서는 한글 영서가 써졌어요. 예언이 탁 써지고.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어요. 내 영은 알았죠. 처음 경험하니까 신기해서 몰랐다 이거죠. 막 그러더니 갖가지 은사가 충만해져서 보통 사람을 탁 보면 그 사람 죄지은 것이 다 드러나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홉 가지 은사를 충만히 받았습니다”(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성령님과 깊이 교통을 해서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방법이 없다
“저는 그렇더라구요. 첫째 성령님과 깊이 교통을 해서 성령님께 물어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성령님께 물어봐서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상황, 수준을 죽 물어봐요. 성령님보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분이 없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보통 육신적으로 밖에 몰라요. 그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고요. 저는 상담 방법중에서 이렇게 말해요. ‘성령상담’을 해야 한다. 성령상담. 성령상담하려면 적어도 자기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어려워요”(영성교육 상담 세미나 제 9강의 개인상담의 기본원리와 방법).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왜냐고 하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뭐냐고 하면 기록된 말씀의 원 뜻을 알게 해 주신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죠. 은사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하면 A라는 집에 갑자기 심방을 하게 되었어요. 집에서 기도로 준비를 못했단 말예요. 그런데 그 집까지 가는 시간이 5분에서 10분 거리예요.
가면서 ‘하나님, 아무개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가는데 주께서 무슨 말씀을 주시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야, 무슨 성경 몇 장부터 몇 장까지 봐라!’ ‘예, 알았습니다.’ 기도하고 간단 말예요.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읽어보면 일반적인 내용은 알겠는데 영적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 때 물어보는 거예요. ‘주님,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제목, 대지, 소지, 착착착 알려 주신단 말예요. 이것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예요.
그 다음에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뭐냐. ‘그러면 제목과 대지는 알겠는데 하나님, 왜 이 집에 이 말씀을 주십니까?’ 그럼 그 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서 혹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그 집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게 해 주세요. 즉 그 말씀을 그 집에 어떤 의도로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이 지혜의 말씀의 은사예요. 할렐루야. 이것을 안 받으면 목회를 못해. 목회를. 요것을 짝 받아서 짝짝 써먹어야 아주 편안하게 목회한다고. 이것 안 하면 맨 그냥 짜내 가지고 사전 찾고 뭐 찾고 그것 찾아가지고 하니까 세월은 다가고 골치만 아프고 머리만 빠개지는 거야.
그러니까 아홉 가지 은사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이야. 이것 다 받아서 은사가 충만해서 그것을 평범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면 뭐 보통 좋은 게 아니죠. 편안하죠. 설교준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물어요. ‘앞으로 어떻게 설교를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까?’ ‘성경 어디를 강해해라.’ 알았습니다. 강해를 쭉하면 된다고”(박철수 '성령의 이중적 사역' 중생 1번 테이프).
(월간<교회와신앙> 2000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