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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던진 교주의 한마디 “옷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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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던진 교주의 한마디 “옷을 벗어라”
  • 정윤석
  • 승인 2012.04.26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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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단체에서 태어나 교주의 신부로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

 

처음 그녀가 보낸 제보 메일은 한편의 하드코어처럼 적나라했습니다. 아무리 이단사이비 교주에 대한 제보라지만 그녀의 표현대로 과연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낸 여자였다면 그녀 자신에게도 상당히 문제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나기가 꺼려졌죠. 거짓 제보자일 가능성도 열어놨습니다. 그래도 워낙 심상찮은 제보 내용이라 그녀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대화 중간중간 번뜩이는 지혜로움도 엿보였습니다. 처음 생각과 달리 정신도 온전했습니다. 자기 주장도 선명하게 펼쳤구요.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는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는 단체에서 소위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교주의 행각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녀에겐 ‘참된 하나님’조차 없습니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믿었던 인간 교주 ‘하나님’이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충격이 진짜 하나님도 가까이할 수 없도록 만든 거 같습니다. 그녀를 통해 폐쇄적 조직의 부패한 타락상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편집자주>


김소민 씨(가명, 30세)는 교주의 신부였다. 그것도 은밀한. ‘밤일’을 치르고 나면 하나님으로 추앙받던 교주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세월을 그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를 들을만한 비밀스런 거사를 치른 것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200여 회에 이르렀다. 처음 교주와 관계를 했을 때 그녀는 미성년자였다.

첫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녀에게 60대의 교주가 나직이 말했다. “옷을 벗어라.”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신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교주의 말을 따라 그대로 실행했다. 그녀의 나신을 한참을 쳐다보던 교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지! 하지만 진짜로는 받지 않았잖아. 너도 마찬가지다. 이제 시험에 합격했다.” 교주는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 주며 그녀를 무척이나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돌려 보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 달 뒤 교주는 그녀를 다시 불렀다. 예전처럼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이미 했던 일인지라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날 교주는 그녀의 처녀성을 앗아갔다. 그렇게 첫 관계가 시작된 후 10여 년 정도에 걸쳐 수많은 관계가 이뤄졌다. 몸을 짓밟혔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이 짓밟히는 것인지도, 상처를 받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갖고 단지 하나님이니까, 이 시대의 구원자니까. 그렇게 몸을 바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 학생 신도들을 끌어 안고 있는 한 이단단체 교주의 모습


‘신’으로 추앙받는 교주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다. 뽀뽀 정도는 예삿일이었다. “나는 하나님 아빠이니까 당연히 자녀인 너희들에게 뽀뽀를 할 수 있는 거야.” 교주는 자신의 성적 관계를 교리화하는 설교를 오랜 시간 지속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통해 하늘의 씨가 퍼져 나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른 교주들은 몰래 간통하고 성적 문제를 일으키지만 자신은 하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님의 씨를 퍼뜨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상급을 베푸실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 하나님의 씨를 퍼트릴 사명을 받았다는 한 이단단체 교주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물론 김 씨도 동화됐다. 교주는 사람이 아닌 ‘신’이었다. 이런 교주의 해괴한 주장을 들었던 한 신도는 ‘만일 하나님께서 내 딸을 원하신다면 바치겠습니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도들은 교주가 그런 행각을 벌이고 설교를 하는데도 철저히 신뢰했다.

교주는 김 씨와의 관계를 계속하면서도 새벽 집회를 인도했다. 여체를 비벼대던 얼굴 그대로 교주는 집회 장소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면 신도들은 “우리 주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셔서 얼굴이 부으셨다”고 울어 대며 기도에 전념했다.

태어날 때부터 교주를 하나님으로···.
그녀의 불행은 교주를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부모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폐쇄적 조직을 말세의 피난처로 선택해서 들어왔다. 말세에 정도령이 인간을 구원하게 되는데 그 교주가 바로 말세의 구세주라고 부모는 믿었다. 김 씨의 부모뿐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말을 믿었고 신도들은 자신의 가산을 헌납하며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다. 교주는 “세상이 곧 끝난다”, “북한의 침입으로 한국이 망한다”는 말로 위기감을 조성했다. 14만 4천에 들어가야 구원이 된다며 신도들의 공동체 입소를 독려했다. 공동체에 들어오려면 재산을 헌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녀의 부모도 모든 재산을 바치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 후 그녀가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외부의 문화적, 사회적 모든 부분을 차단당한 상태로 자랐다. 외부의 문화와 사회를 접하는 것은 죄로 여겨졌다. 학업도 ‘세상 일’이라며 의무교육마저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교주는 이곳에서 하나님이었고 신도들은 하나님의 신부들이라고 세뇌를 받았다. 북한의 어린이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자연스레 신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부에선 모든 것을 엄격한 율법으로 통제했다. 밤에 배가 고파서 라면을 몰래 끓여 먹었다고 어린 아이가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신도는 단체에서 금지하고 있는 대중가요를 들었다는 이유로 단식 5일의 처벌을 받기도 했다.

세상 교육은 사탄의 교육이라며 모든 정규 교육은 금지됐다. 남성이고 여성이고 성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도 없었다. 데이트도 금지했다. 교주가 신이었기에 그 외의 다른 사람,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연애를 하다가 걸리도 금식이나 체벌 등의 벌을 받았다. 그렇게 이단 단체의 엄격한 율법에 순종하며 순결을 간직했던 김 씨는 꽃다운 나이에 교주의 호출을 받고 그의 거처에 들어갔다가 일을 당한 것이다.

그녀의 귀에 바람을 불며 속삭이던 교주의 목소리. “소민아, 내가 너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나는 지금 꿈 속을 거니는 것 같아. 우리 둘이 꿈나라에 그대로 있으면 아무도 못 찾겠지?” 그게 교주의 사랑인줄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교주의 성 행각에 대한 소문은 교단 내에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교주가 집회가 있을 때마다 어떤 처녀의 전신 마사지를 받고 있더라’, ‘장례가 있는 집안의 모 교인과 성적 문제가 있었다’, ‘남편이 잘 때 어떤 부인을 건드렸다’, ‘교역자 모임이 있을 때 여신도와 몰래 빠져나가 모텔에 갔다’ 등등. 캐내면 캐낼수록 수도 없는, 교주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성행각이 김 씨의 귓전을 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 씨는 교주가 자신을 신으로서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저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많은 여신도 중의 하나로 생각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에게 지금 하나님은 없다
어느날 그녀는 용기를 냈다. 먼저 친족들에게 10년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눈물을 흘리며 털어놨다. 성관계가 도대체 뭔지조차 모르는 십대부터 시작해서 십여년 동안 교주에게 자신의 성이 무참히 짓밟혀 왔다고. 교주를 신이라 생각하고 참아 왔지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죄의식 때문에 항상 너무 힘들었다고. 사람들에게 숨겨야했고, 긴장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지금 자신에겐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더 큰 충격이었다. “소민아! 그것은 하나님이 널 사랑하셔서 한 것인데 왜 그렇게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냐?”, “너 그렇게 선생님을 인정하지 못하겠거든 가족과의 인연을 끊자!” 김 씨는 친족들의 말을 듣고 도저히 그 단체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신도들에게는 엄격한 율법을 강조하며 순결과 성결을 강조했지만 교주 자신은 수많은 여신도들의 성을 유린하는 이중인격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족 모두 눈이 멀어 있었다. 그 부도덕함을 김 씨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단체를 떠났을 때 김 씨는 우연히 TV를 보다가 또다른 이단단체 교주의 성행각에 대한 보도를 접하게 된다. 모 단체 교주의 성행각이나 자신이 교주에게 당한 일이나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것이 사회적 범죄라는 판단을 하며 교주를 고소하는 용기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결정한다. 이미 십 대 때 당한 일은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는 것이다. 여신도를 맘껏 유린한 교주는 지금도 어디선가 활보하며 여신도들을 우롱하고 있지 않을까.

이단단체에서 인생을 시작한 김 씨의 마음 가운데 지금 하나님은 없다. 그녀는 기자에게 말했다. “하나님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복잡해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색마 같은 교주 밑에서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도대체 뭐하고 계셨을까라는 원망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더 심각한 건 뭔지 아세요?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영의 하나님이 떠오르지 않아요. ‘하나님’ 하면 아직도 입에서 마늘 냄새를 풀풀 풍기며 제 몸을 짓밟고 유린하던 교주가 머릿속에서 떠올라요.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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