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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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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로합니다"
  • 장운철
  • 승인 2012.10.12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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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철 목사의 세상읽기 Ⅱ/ 2. 위로

 
<채널 A>에서 방영하는 ‘이영돈 PD의 먹거리 X 파일’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한다. 우리네 주변의 부정직한 먹거리들의 고발과 함께 정직하게 장사하는 가게를 ‘착한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고발의 예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중국식당 등에서 흔히 해삼, 소라들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이 재료의 상당수는 수입품이다. 해삼은 말린 상태의 건해삼이다. 이를 다시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원래 상태로 부풀려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일반 물에 넣어 10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성소다(양잿물)에 불려서 유통되고 있었다. 가성소다는 한 마디로 독극물이다. 가성소다 물에 담궈 두면 2-3시간 만에 건해삼이 불려진다. 그 시간만 잘 맞추면 정상 크기의 최대 11배까지 커진다고 한다. 방송 PD가 그 현장을 직접 암행 취재, 고발한 것이다. 소라는 말린 상태로 들여오지 않음에도 같은 방법인 가성소다에 불려서 유통되고 있었다. 재료를 물로 깨끗이 씻는다고는 하지만 가성소다의 잔량이 재료에서 검출되었다. 그 장면을 보니 갑자기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냉면 육수는 어떠한가? ‘쇠고기 다시다 + 설탕 + 카레멜색소’를 끓여 만드는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여름에 먹었던 시원한 냉면 육수가 조미료 끓인 물이라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떡집도 예외는 아니다. 팔리다 남은 떡이 재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화려한 떡의 색깔은 전통적인 천연재료가 아닌 인공색소였던 것이다. 남은 반찬을 재사용하는 식당의 예는 이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모든 식당들이 위와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디 마음 놓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매일 매식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고통이다.

위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착한식당’도 소개해 주었다. 양심대로 정직한 재료와 올바른 조리법을 사용하는 음식점이다. 정말 ‘위로’가 된다.

▲ ‘착한식당’ 인증 간판
그 예를 기자가 직접 체험해 봤다. 얼마 전 강릉에서 목회자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식사 때가 되어 식당을 찾았다. 인터넷에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전주식당’이 올라왔다.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기분 좋게 핸들을 돌렸다. 30년 동안 순국산콩으로만 직접 두부를 만든다는 곳이다. 점심 시간이 약간 지났지만 사람들은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 식당에 그것도 점심 때가 얼추 지났음에도 사람이 많다는 게 의아스러웠다. ‘착한 식당’의 능력(?) 때문일 게다. 주문한 두부찌개가 나왔다. 기대감을 갖고 맛을 보았다. 그동안 먹어보았던 두부보다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로 조금은 더 거칠어 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맛을 잘 모르겠다. 밑반찬들은 조미료없이 조리된 것이라 싱겁기도 했다. ‘착한 식당’의 이름을 믿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뺑드빱바’라는 빵집이 있다. 가로수길 끝자락에 위치한 아주 작은 가게다. 그런데 이곳에서 빵을 사려면 오전에 가야 한다. 오후에 들르면 왠만한 빵은 모두 팔리고 없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을 사 간다. 왜! ‘착한식당’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국산 밀 50% + 직접 만든 효모’가 이 빵집의 특징이다. 국산 밀 100% 빵 만드는 게 주인의 소망이라고 한다. 그를 위해서 농사를 지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곳에 들어가 보았다. 아니 빵의 구수한 냄새가 필자를 ‘확~’ 끌어당겼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했다.

오후 3시,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2평 남짓 작은 매장 공간엔 이미 6~7명의 손님들이 들어와 있었다. 모두 빵을 사기 위해서다. 진열대에 통식빵과 바게트 그리고 몇 개의 빵 외에는 없었다. 그것도 곧 바닥 날 듯했다. 주방에서는 3명의 직원이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었고, 카운터에서도 3명의 직원이 열심히 포장을 해주고 있었다. 통식빵을 사와서 먹어보았다. 무엇이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옛날에 먹던 빵맛’이라는 느낌이었다.

한 군데만 더 이야기 해보자. 용산구 남영동에 있는 ‘제일어버이순대집’이다. 이곳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신선한 재료로 순대를 직접 만든다는 이유로 착한식당에 선정됐다. 조만간 들려볼 계획이다.

착한식당으로 선택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재료와 조리 방법을 모두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인데...’라는 주인의 철학이다. 위 ‘뺑드빱바’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빵’이란 뜻이다. 주인은 정말 그런 심정으로 빵을 만든다고 했다. 이런 이유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위로’를 준다.

▲ 전주식당 두부찌개
다른 주제에서 ‘위로’를 찾아보자. 대통령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판이다. 유력 후보 3인(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의 발걸음이 매일의 주요 뉴스가 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안정된 조직과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냐, 보다 신선하고 진정성 있어 보이는 인물이냐는 시각이 많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이미 맛 본 적이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때다. 기존의 시각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우리네 백성은 그를 선택함으로 정치적인 ‘위로’를 기대했다.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눌렸던 자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백성들은 정치로 ‘위로’를 원한다. 그것이 보수적인 위로이든, 개혁적인 위로이든 개의치 않는다. 더 이상 정치인으로 인해 고통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교계 이야기를 해보자. 얼마 전 주요 교단의 총회가 마쳐졌다. 쟁점 중 하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예장통합측이 탈퇴 결의를 했다는 점이다. 한국 장로교 교단 양대 축이라고 한다면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이다. 이들이 연합활동을 하고 있는 유일한 단체가 바로 한기총이었다. 서로 주장하는 신학노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손을 잡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릇이 깨졌다. 원인의 핵심은 이단문제다. 그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 두 단체가 갈라섰다는 게 참 슬픈 현실이다. 우리네 작은 신앙인들은 교계 지도자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참 힘들다. 위로는커녕 화나는 일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이번 한기총 사건이 언론에 거론될 때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아니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피해서 말이다.

우리 각자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복잡한 일들 속에 얽혀있다. 재정, 건강, 직장, 가정, 자녀, 부모, 결혼, 비전 그리고 교회 문제 등 너무 많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도 답답해진다. 남몰래 눈물을 흘릴 때도 많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안팎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다. 정말 위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Comfort ye my people)고 명령하신다(사 40:1).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가 필요함을 하나님은 익히 잘 아셨다. 위대한 음악가 헨델도 이 부분을 잘 표현해 주었다. 그의 음악 ‘메시아’의 첫 번째 노래 가사가 바로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성경구절이다.

▲ 뺑드빱빠 빵집
이사야는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다. 여전히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범죄했다. 원수들과 동맹을 맺으며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 주제도 크게 두 가지다. 죄에 대한 경고와 하나님 손길에 의한 위로다. 사 40:1부터는 위로에 대한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다. 물론 그 전까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

죄악에 물든 사회 구조 속에서 헤매며 눈물을 흘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제 위로하라는 게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소명이다. 죄의 심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회복이 반드시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궁극적인 회복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게 이사야 선지자 메시지의 핵심이다.

위로하며 살아간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상대의 형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필요하면 식사를 대접해주고 손을 붙잡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한 신혼부부가 출산을 했다. 기쁜 마음에 병원엘 찾아가려고 했지만, 아내가 말렸다.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며 출산 직후 심방은 산모에게 정말 불편한 일이라며 후에 방문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 산모의 의견을 물으니 정말 그러했다. 3주가 지나 드디어 심방했다.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기 때문에 집으로 갔다. 산모는 이런 저런 간증을 했다. 그동안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이야기다. 뒤 늦게 온 아기 아빠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정을 위한 기도도 했다. 그 가정은 물론 필자에게도 큰 위로와 영광이 된 줄로 믿는다.

우리는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가 위로해 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을 섬기고 도우라’는 등의 명령이 많이 나온다. 그런 우리 자신은 누구에게 사랑, 도움, 위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시므온이라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역시 위로를 준다(눅2:25-32).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성령과 동행한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메시야의 오심이다. 모든 구약의 백성들이 고대했던 일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만난 것이다. 시므온은 한 눈에 그가 메시야임을 알아보았다. 그 아기를 한 번 안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찬송을 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주님, 이제 주님의 종을 주님의 말씀대로 평화롭게 떠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제 눈으로 주님의 구원하심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구원을 모든 백성들 앞에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는 이방사람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눅 2:29-32, 쉬운성경).

주의 백성을 위로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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