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이단 교리로 머리가 지끈지끈 여전히 아픈 탈퇴 신도들, 그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뇌된 교리를 빼내는 겁니다. 그들이 성경공부를 하다가 세뇌에 악용된 말씀의 오류와 왜곡을 바르게 잡아 주는 거죠. 그러면 그들은 다시 평안을 찾을 겁니다. 이 일을 정통 교회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재만 갖고만 있으면 누구나 이단 탈퇴자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회심을 도울 수 있는 자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교재는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진용식 목사님이 2017년 9월 26일부터 강연한 내용을 여러 번역 성경과 각종 주석 등을 참고해서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이단 신도들의 교회 연착륙을 돕는 성경공부[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4.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구절은 안식일 준수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일부 이단들은 눅 4:16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으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셨다 해도 그건 새언약의 백성들이 그대로 준수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이 지켜야 할 규례를 지키셨다. 할례를 받으셨다. 유대인의 정결의식에 부모에 의해 참여하셨다. 비둘기로 제사를 드리는 데 참여하셨다. 성경 말씀을 확인해 보자.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눅 2:21~24).
예수께서 유대인으로서 지키신 율법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9~11).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새언약의 백성들에게 구약의 율법으로 다시 ‘멍에’를 씌워선 안된다. 더욱이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 전통 아래에서 율법을 지킨 것을 근거로 삼아서도 안된다.
2)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했지 ‘지키셨다’고 하지 않았다
구약
- לְקַדְּשֽׁ֗וֹ(lə-qad-də-šōw, to keep it holy 출 20:8) 거룩히 지키라.
- תִּשְׁמֹ֑רוּ(tiš-mō-rū; you shall keep 출 31:13) 지키라.
구약에선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켰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신약
- 가르치시매(막 1:21).
- 회당에서 가르치시니(막 6:2)
- 안식일에···회당에 들어가사(눅 4:16).
- 안식일에 가르치시매(눅 4:31)
신약의 어느 곳을 살펴봐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또 신약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도 없다. 예수님은 구약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회당에 관습을 따라서 ‘들어가신 것’이다. 더욱이 여기서 하신 일은 뭔가. 이사야 61장을 선택해서 읽으시고(눅 4:18)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신다.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예언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는 바로 예수 자신을 의미한 것이라는, 유대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대선언을 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구약 율법의 준수와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다. 실제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예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으셨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진다.
3)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오히려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자들로부터 “하지 말아야 일을 했다”는 비난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행동은 율법 준수와 거리가 멀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비난 받은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마 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마 12: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 마 12: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 눅 4:28~30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 요 5:8~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 요 5: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 요 5: 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 요 9: 16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사람들이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 태도를 비난할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뭔가?
막 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는 당신이 가르치시는 진리에 대해 단정적이고 선언적으로 선포하심으로써 당신의 초월적인 권위를 나타내 보이신다. 유대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에 인간의 전생활 영역을 안식일 규정으로 얽매어 놓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져들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심으로써 안식일 관행은 이제 당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새롭게 규명(糾明)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특히 이 같은 선언은 예수께서 안식일 규정을 마음대로 뜯어 고치시겠다는 자기 고집에서가 아니라 그 규정을 새롭고도 온전하게 주석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는 당신의 자격과 신분을 선언하신 것이다(Donald W. Burdick). 한편 본문의 '인자' 선언은 마가가 관심을 가진 바 '인자 기독론'에 조화를 이룬다 즉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10절 주석 참조) 드러난 바 영광스런 하늘의 인자는 지금 바로 이곳에 나타나셔서 죄 사함의 권세를 행사하실 뿐 아니라 특히 안식일 논쟁의 결론을 내리시는 권위를 가지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다(Grant, Taylor)(호크마 주석)“
5. 사도행전에 사도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사건은 안식일 준수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1) 사도들은 안식일을 지켰나?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켰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안식교에서도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지켰다는 걸 증명하면 게임이 끝난다. 그래서 그 증거 구절로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개역한글, 행 17:2)라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한다.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지켰고 바울도 지켰다는 근거 구절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단단체 사람들의 논리는 잠깐 들으면 맞는데 자세히 앞뒤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틀리다.
17:2만 보지 말고 그 앞 구절을 살펴보자.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행 17:1). 초대교회의 공동체에 간 게 아니다. 유대인을 만나러 갔다. 유대인들의 회당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소동이 일어났다(행 17:5). 바울이 회당에 간 건, 초대교회 교인들의 안식일 준수 장면이 아닌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안식일 모임은 초대교회의 모임이 아니라 유대교의 모임이었다. 유대인들이 토요일에 모이니 이들이 많이 모이는 ‘안식일’에 말씀 전하러 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행 17:2는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근거 구절이 될 수 없다.
2) 바울의 ‘규례’가 ‘율법’을 의미하나?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됐다. ‘사랑’이란 낱말은 한국어로는 ‘사랑’ 한가지이지만 헬라어는 다양한 단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랑(에로스/ 아카페/ 스트로게/ 필레오). 규례란 말도 3가지 용어가 성경에 등장한다. ‘디카이오마’(dikaioma, 눅 1:6)나, ‘도그마’(dogma, 행 16:4)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유독 ‘관례’에 εἰωθὸς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는 율법 준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관례대로, 늘 하던 대로(공동번역), 평소의 습관대로(현대인의 성경)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영어로는 custom(풍습, 습관)이다. 따라서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라고 할 때 이 단어는 안식일을 지켰다고 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바울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의 모임에 가서 세 주간에 걸쳐 안식일마다 성서를 놓고 토론하였다.”(행 17:2 공동번역)
“바울은 평소의 습관대로 회당에 가서 세 주간 동안 안식일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과 토론하였다.”(행 17:2 현대인의 성경)
“As his custom was, Paul went into the synagogue, and on three Sabbath days he reasoned with them from the Scriptures”
영어 성경에서도 ‘his custom’이라고 돼 있다. 바울이 회당을 다니며 성경을 강론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의미다.
“자기의 규례대로(κατὰ δὲ τὸ εἰωθὸς) - '규례'의 헬라어 '에이오도스'는 '에도'의 완료 부사로서 '습관', '익숙한 일' 등의 뜻이다. 이는 이미 바울이 새로운 도시에서 회당을 찾아 복음 전하는 일을 습관처럼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살라미(13:5),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등에서 바울은 이미 그의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이 회당을 다른 곳보다 먼저 찾은 이유는 회당에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모였기 때문이다”(호크마 주석).
참고구절은 다음과 같다.
13:5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 사람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3: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4:1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바울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의미가 아니라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해왔다는 의미다.
5. 마 24:20 말씀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
1) 마 24장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말씀이자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의 모형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을 뜻한다.
이필찬 교수는 마태복음 24장에 대해 “24장의 처음 부분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라는 주제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마 24장(다른 두 복음서도 동일하게)의 시작부터 언급되는 내용은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이 아니라 성전 파괴를 중심으로 하는 격렬한 심판이므로 이 문맥의 흐름 속에서 심판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양용의 교수도 이에 동의하면서 ‘성전 파괴 사건 자체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야기의 전개상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분석하고 있다(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441).
로마의 타이투스 장군에 의해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이때 로마군의 침략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된다면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지 그 날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B.C 168년 수리아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침공이 있던 날도 안식일이어서 유대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살육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여기서 군대는 로마 군대를 의미한다.
2)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했다. 마 24:20에선 ‘안식일’이 언급돼 있지만 로마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마가복음에선 ‘안식일’이 언급되지 않는다.
- 막 13:18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유대 그리스도인을 독자대상으로 한 마태복음에선 ‘안식일’이 나오지만 로마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마가복음에는 ‘겨울’이라고만 언급했다. 안식일은 1500년 이상, 관습을 지켜온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절기이기에 마태복음에는 언급이 돼 있지만 안식일과 무관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겐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와 관련한 말씀은 이미 기원후 70년에 성취됐다. 따라서 안식일에 도망하는 문제와 관계없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구절을 근거로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진용식, 안식교는 왜 이단인가, 82페이지, 2002)
6. 안식일 계명은 폐지됐다
안식일 뿐 아니라 폐지한 게 많다. 할례도 그렇다. 구약과 신약이 뭐가 다를까? 도표로 살펴보자.
7. 기원후 321년에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주일로 변개하지 않았고 다니엘 7:25의 성취도 아니다
안식교나 안상홍 증인회에 성도들이 넘어가는 이유가 뭘까? 콘스탄틴이 멀쩡히 잘 지키던 안식일을 주일로 변개했는데 이 날은 태양신 숭배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너희들은 콘스탄틴이 변개한 안식일을 지키냐”라고 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신 안식일 지킬래, 콘스탄틴이 변개한 일요일을 지킬래?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이걸 정확히 설명해줘야 한다.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첫째, 초대교회부터 계속 안식일을 지켰고 콘스탄틴 이전엔 일요일을 지키지 않았다. 둘째, 321년 콘스탄틴이 변개한 것은 단 7:25의 성취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반박해보자.
1)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틴 시대 전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첫째, 안상홍 증인회는 자신들의 전도용 책자인 <확실한 증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근거 자료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초대교회부터 321년까지 안식일을 지키다가 변경됐다면 초대교회가 안식일 지켰다는 역사적 자료가 있을 것이다. 만일 그 기간 안식일을 지켰다는 근거 자료가 나온다면 ‘안상홍 증인회’는 자신들의 전도용 책자인 <확실한 증거>에 다 올려 놨을 것이다. 그런데 콘스탄틴 황제 이전까지 300여년간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는 역사 기록을 이 전도용 책자에서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일요일 예배 기록은 있는가? 이 기록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안식일 예배 기록은 안 나온다.
“역사가 보존하고 있는 기독신자들의 예배일에 대한 제일 첫 언급은 그 시간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 첫날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행 20:7~12). 제 7일 안식교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고대교회에서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자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안식교도인 그들처럼 주일 대신 안식일을 지키자고 역설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와 같은 증거는 불충분하다. 신약성서는 물론 고대교회에서도 주일 대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큰소리로 호소한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폴쥬이트 지음, 옥한흠 옮김, 개혁주의신행협회, 1994년, 52페이지),
둘째, <교회사핸드북>은 그리스도인들이 초기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이 책은 안상홍 증인회 신도들도 잘 아는 도서다. “이 책을 인정하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안증회 신도들은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스스로 전도용 책자인 <확실한 증거>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일부만을 인용해서 사용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사핸드북> 9페이지에 안식일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은 기독교회의 초기부터 성수됐다. 그것은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을 지키는 유대교로부터의 기본적인 이탈이었다. 한 주간의 첫날로 옮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마다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4세기초 콘스탄틴의 시대까지는 주일(일요일)이 공휴일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예배 모임을 가졌다”(라이온社편, 송광택 譯, 교회사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995년, 9페이지).
321년부터 콘스탄틴의 명령에 의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게 아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요일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하러 가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예배 모임을 가졌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문화를 잘 아는 콘스탄틴은 321년부터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일요일을 공휴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이단들은 콘스탄틴이 ‘공휴일’로 제정한 날을 ‘안식일을 주일로 변개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미 초대교회부터 지켜왔던 거라면 콘스탄틴이 변경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미 초대교회 교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는 많다.
“지켜온 가장 오래된 절기는 부활절과 일요일의 예배였다. 부활절 축하는 오순절까지 연속하였고, 터털리안은 이 기간에 무릎을 꿇지 않고 예배하는 습관을 언급하였다. 일요일은 매 주간에 오는 부활절이었고 그리고 일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과는 신중하게 구별하였다.”(JW.완드, 이장식 옮김, 교회사(초대편), 대한기독교서회, 1995년, 139페이지).
“그분은 또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의 월삭과 안식일을 견딜 수 없노라’(사 1:13) 하시도다. 거기에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내가 받을 만한 것은 현세의 이 안식일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 정한 것이니, 그것은 내가 모든 것들을 안식케 한 후에 제 팔일째에 시작케 할 것인바, 즉 새 세계의 시작임이라’하는 뜻이다(또한 우리도 역시 제 팔일째 날을 지키며 기뻐하는 것은 그 날에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시고 그 자신을 다시금 보이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셨음이로다).”- 바나바의 서신 중에서(이형의 편역, 초대교회의 신앙문서, 기독교문사, 1999년, 252페이지)
“(주일예배에 대하여) 주의 날에 모여서 떡을 떼고 성만찬을 드리라. 그러나 먼저 너희 잘못들을 고백하라.”- 디다케 (이형의 편역, 초대교회의 신앙문서, 기독교문사, 1999년, 215페이지).
여기서 주의 날이 언제일까?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라는 말씀에 근거, 초대교회 성도들이 떡을 뗀 날은, 주간의 첫날, 즉 일요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면 첫날은 당연히 일요일이 된다.
2) 콘스탄틴의 칙령은 단 7:25의 성취가 아니다.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안상홍 증인회 등은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주일로 변개했다”며 이는 다니엘서 7:25절의 예언의 성취라고도 해왔다.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콘스탄틴 이전부터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은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내왔다. 콘스탄틴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개한 게 아니라 단지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한 것일 뿐이다. 초대교회부터 성도들은 이미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켜왔다. 그렇다면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을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개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콘스탄틴 칙령은 단 7:25의 성취라고 볼 수가 없다.
둘째, 단 7:25에서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에서 ‘~할 것이며’는 וְיִסְבַּ֗ר(wə-yis-bar)이다. 이 단어의 뜻은 '유념하다', 즉 '소망하다':- 생각하다'이다. ‘바꿀 것’이 아니라 ‘바꾸려고 할 것’, 또는 ‘바꾸려고 시도할 것’, ‘바꾸려고 생각할 것’이라는 의미다. 영어 성경도 이를 ‘try’(NIV, KJV), ‘intend’(NASB)로 번역했다. '의도하다, (…하려고)생각하다'는 의미의 단어들이다. 의도하다, 시도하다, 생각한다고 기록했지 ‘바꿀 것’이라고 한 게 아니다. 만일 이 구절이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주일로 확정적으로 변개한 것을 예언한 구절이라면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
셋째, 단 7:25는 안식일 변개와는 무관한 말씀이다.
본문의 '때'는 זִמְנִ֣ין(zim-nîn)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정해진 기한을 나타내는 말이다. 안식일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법'(וְדָ֔ת wə-ḏāṯ)은 '명령'이나 '규례', '포고령' 등의 의미로서 이 역시 안식일과는 다른 의미다. '때와 법'의 변경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에 속한 것인데 이를 변경하려고 하며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는 적그리스도의 극악한 교만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따라서 콘스탄틴의 공휴일 제정과는 무관하다.
Ⅲ.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이유
그렇다면 왜 정통교회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에 예배하는가?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을 짐승의 표라고까지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정통교회는 분명하게 성경적인 근거와 확신 아래 주일에 예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일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안식일 문제 상담을 위한 성경공부는 마무리된다(다음 내용은 진용식 목사의 '안식교의 오류' 97~99페이지를 그대로 인용함).
①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은 폐했기 때문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십자가로 폐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하고 있다. 안식일이 다른 모든 절기와 함께 폐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4-16).
본문의 말씀에서 십자가의 승리로 인하여 폐한 것들은 먹고 마시는 것(음식물 문제), 절기(절기 안식일), 월삭, 안식일이라고 하였다. 절기 안식일이나 월삭뿐만 아니라 제칠일 안식일도 폐하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구약에 할례가 중요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폐한 것이기 때문에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율법주의이며 비복음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이 구약에서는 강조되었으나 신약에서 폐한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비복음적이며 율법주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율법주의자들에게 미혹되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너희가 날(안식일)과 달(월삭)과 절기(절기 안식일)와 해(안식년, 희년 등)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11). 폐한 바 된 안식일을 주장하는 것은 비복음적이며 비성경적인 율법주의일 뿐이다.
②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이 폐했다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강조한 구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안식일이 폐하지 않았다면 왜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겠는가? 안식교인들이 안식일을 주장하려면 신약성경에서 안식일 준수를 명령한 성경의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안식교 측에서는 일요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성경에서 찾아오면 현상금 일천 만원을 주겠다고 한 우스운 일들이 있었는데, 필자는 거꾸로 신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찾아오면 상금 일천 만원을 주겠다는 것을 밝혀 둔다. 구약에서 아무리 강조했던 율법이라도 신약(새 언약)에서 폐한 바 된 것이라면 더 이상 주장하지도 말아야 하며 분토와 같이 버려야 하는 것이다(할례, 절기, 월삭, 안식일 등).
③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째 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요 20:1).
예배일을 첫째 날로 한 것은 안식일이 폐한 후 복음의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그 날에 모여서 떡을 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로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안식일이 폐한 후 초대교회는 자연스럽게 주님의 부활하신 날에 예배하게 된 것이다.
④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첫째 날, 곧 주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행2:1). 성령의 강림이 주일(첫째 날)에 있었다. 안식일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안식일을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그렇게 철저히 지켰고 폐한 것이 아니라면 왜 그토록 중요했던 그리스도의 부활과 최초의 성령 강림이 안식일에 있지 않고 주일에 있었을까? 그것은 안식일이 폐하였고 주일이 새롭게 시작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마 9:17).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하듯이 구약(옛 언약)은 지나고 신약(새 언약)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옛 것은 버리고 새로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구약의 율법적인 모든 제도와 규정은 이제는 끝났다. 할례가 폐하고 마음의 할례 곧 중생의 경험이 왔으며(골 2:11), 유월절의 절기 대신 성만찬의 예식을 하게 되었다. 구약의 유대교적인 안식일이 폐하고 신약의 기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하게 된 것이다.
⑥ 신약(초대교회)에는 중요한 일들이 주로 주일(일요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신약에 나타난 주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일에 예배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째 날에 부활하셨고,주일의 첫날 저녁에 10명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요 20:19), 그 다음 주일 첫날에 11명의 제자 앞에 나타나셨다(요 20:26). 성령 강림이 첫째 날에 이루어졌고(행 2:1), 그 주일에 삼천 명이 회개했다(행 2:4). 드로아에서 그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로 모였고(행 20:6-7), 주일중 첫날에 초대교회는 예배와 헌금을 드렸다(고전 16:2). 계 1:10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이 본문에서 주의 날은 첫째 날, 즉 주일이 분명하다. 안식교는 토요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나 안식일을 주의 날이라고 칭한 적이 없고 신약에도 토요일은 안식일이라고 했다. 유월절이 폐했지만 유월절이라고 칭했듯이, 토요일도 폐했지만 안식일이라고 했지 주의 날이라고 한 적이 없다).
이렇듯 신약(초대교회)에는 중요한 일들이 주로 주일(일요일)에 있었다. 만일 안식일 교회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으며 첫째 날이 평일이었다면 왜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일에 있었으며, 제자들에게 주일에 나타나셨는가? 왜 성령 강림은 주일에 있었고, 왜 주의 날에 요한에게 계시가 임했는가? 신약에 사도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켰다는 기록이 있는가?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지켰다면 왜 사도들이 초대교회의 안식일 예배에 참석치 않고 유대인의 회당이나 성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안식일에 갔었을까?(행 17:2).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에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 안식일마다 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적으로든, 신학적으로든, 교회사적으로든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엔 유월절 문제를 다뤄보겠다[안식일 성경공부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