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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서거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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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서거에 즈음하여
  • 정동섭 목사
  • 승인 2018.02.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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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목사(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Ph.D.)
▲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설교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우측은 통역하는 김장환 목사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가 2018년 2월 21일 99세를 일기로 주님 앞에 갔다. 그는 나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사님을 회고한다.
1. 1960년대에 한국의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은 그의 매주 방송되던 30분 설교프로그램 “결단의 시간”(the Hour of Decision)을 중계하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으로 매주 정기적으로 방송되던 그의 영어설교를 들으며 영어를 배웠다. 어느 나라든지 설교는 그 나라 표준어를 쓴다고 하는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는 미국영어의 표본이라 할 만큼 명확하여 나중에는 그의 설교를 따라 하며 영어발음을 익혔던 것을 기억한다.

2. How do you do, ladies and gentlemen? This is the Hour of Decision brought to you by the 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 Welcome to another broadcast of the Hour of Decision. 방송을 시작하는 멘트는 Cliff Barrows가 했고 찬송은 유명한 복음가수 George Beverly Shea가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빌리 그레이엄은 설교를 마칠 때마다 청취자에게 Write to me. Just address your letter to: Billy Graham, Minneapolis, Minnesota. That is all the address you need 라고 마무리했다. 당시 신앙보다 영어를 배우는데 관심이 많았던 나는 서툰 영어로 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 그가 직접 또는 전도협회에서 동역하던 Grady Wilson 같은 이들이 답신을 보내주곤 했다.

3. 영어를 좋아하던 나는 결국 경희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는데, 그런 영어공부 덕분에 나는 특대생 선발영어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4년간 등록금을 면제받고 매달 6만원의 장학금을 받는 가운데 특전을 누리며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나의 서신요청에 응해 그의 저서 World Aflame이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나는 아직 대학 재학생이었지만 그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불타는 세계]라는 제목으로 생명의말씀사를 통해 나의 첫째 번역책을 출간하였다. 그 후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하나님과의 평화](Peace with God)를 번역해 같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게리 콜린스의 [크리스천 카운슬링], [크리스천 코칭] 등 50여권을 번역하는 번역 작가가 되었다.

4. 나는 대학 재학 중 고려대 영문과를 다니던 친구로부터 빌리 그레이엄을 능가하는 사람, ‘성경을 통달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가 바로 구원파 유병언이었다. 구원파와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전도서 1장을 통째로 암송할 정도로 성경에 박식해 보였다. 진로상담을 요청했던 나에게 그는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 12:12)는 말씀으로 공부를 비롯해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니 자기의 훈계를 따르라고 권유하였다. 나는 그와 그의 장인 권신찬 씨가 전하는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았다. 후에 침례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이것이 ‘다른 복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1973년 여의도에서 10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Billy Graham Crusade(전도대회)가 열렸다. 당시 극동방송을 운영하던 선교사들은 치솟는 기름 값으로 미국성도들의 헌금이 급감하면서 한국어방송을 구원파 측에 맡겼었다. 미국의 팀선교사들은 ‘죄사함, 거듭남’이라는 말에 미혹되어 그들과 동역하기로 하고 유병언에게 극동방송 부국장, 권신찬에게 방송부장직을 맡겼다. 육군병장으로 병역을 마치고 막 제대한 나는 교주의 지시에 따라 극동방송 아나운서로 취직해 매일 아침 권신찬의 “은혜의 아침” 프로에 사회를 맡았었다. 나는 권신찬의 지시에 따라 방송녹음 장비를 가지고 여의도에 가서 김장환 목사가 통역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녹음해 왔다.

▲ 99세를 일기로 별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회가 끝나자마자 나는 방송국에 돌아와 당시의 구형녹음기로 권신찬 목사 앞에 설교를 들려주었다. 설교를 다 듣고 난 권신찬 목사는 큰 한숨을 내쉬면서 “그래도 빌리 그레이엄은 구원받은 줄 알았는데, 빌리 그레이엄도 구원을 받지 못했구먼...”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구원파의 구원관이 정통교회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죄사함을 깨달으라고 설교하지 않고 빌리 그레이엄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설교하였기 때문에 빌리 그레이엄은 구원파 기준에 미달하였다는 것을 나는 1980년 사랑의교회에서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면서 뒤늦게 간파하게 되었다. 구원파의 구원은 의지적 결단 없이 죄사함의 복음을 수동적으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6. 나는 구원파에서 8년간 유병언의 통역비서 역할을 하면서 충성하는 동안에도 늘 구원파의 믿음이 보편타당한 믿음인가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다른 나라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받으면 기도를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가? 당시 팀선교부 선교사들도 나에게 왜 구원파 교인들은 기도를 하지 않는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실 내가 구원파가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학에서 이탈한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빌리 그레이엄의 [하나님과의 평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였다. 권신찬은 “기도를 해라 해라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맡은 자만이 할 수 있다. 예배의 형식은 이교도의 제사의식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짙다. 예배는 성도간의 교제다. 형식을 갖춘 예배는 필요 없다”고 가르쳤다. 반면에 빌리 그레이엄은 “교회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업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도의 사람들이었다...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이다...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해야 하겠는가?”라고 항상 기도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7. 나는 두 번 ‘구원’을 받았다. 한 번은 권신찬의 설교를 듣고 내 죄가 사함받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가짜 구원을 받았고, 또 한 번은 1980년 사랑의교회에서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음으로써 진짜 구원을 받았다(행 20:21). 구원파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정통 신앙은 자신의 죄인 됨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즉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8.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그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단과 정통을 구분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라디오와 TV, 책과 잡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복음전도자는 침례교인이었지만, 그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인정해 Time지는 그를 Dr. Christian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그는 한국을 가리켜 Spiritual Superpower(영적 강대국)라고 불렀다.

9. 나는 지금도 구원파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18번째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 유병언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1992년 상습사기혐의로 구속하고 징역 4년형을 선고했었다.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서거 소식에 그가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참된 기독교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가정생활의 본을 보여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영적 갈등의 순간에 중요한 지표가 되어 주었던 것에 감사한다.

10. 구원파가 극동방송을 잠시 운영하였으나, 결국 그 이단성이 드러나 선교사들이 구원파 직원들을 해고하고, 그 경영권을 빌리 그레이엄의 통역을 담당했던 김장환 목사에게 넘겨주어 정통교회 목사가 지난 30여 년 간 극동방송을 이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진 역사라고 본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의 [결단의 시간] 설교 중 청취자들에게 종종 중요한 진리를 상기시키곤 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거짓선지자들은 좋은 의도로 멸망의 길을 가는 “진실 되게 잘못된(sincerely wrong) 사람들”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기독교복음침례회 반론 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2018년 2월 23일 뉴스면에서 ‘빌리그레이엄 목사의 서거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구원파의 구원은 의지적 결단 없이 죄사함의 복음을 수동적으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권신찬은 ‘기도를 해라 해라해서는 안된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맡은 자만이 할 수 있다, 예배의 형식은 이교도의 제사의식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짙다, 예배는 성도간의 교제다, 형식을 갖춘 예배는 필요없다”, “구원파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구원파가 극동방송을 잠시 운영하였으나, 결국 그 이단성이 드러나 선교사들이 구원파 직원들을 해고했다”라고 했으며, 구원파의 교리와 관련하여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라 언급하며 이것이 ’다른 복음‘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신앙생활 가운데 어떤 문제가 생기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내용을 권신찬 목사의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음에 따라 일맡은 자만 기도하거나 기도나 예배를 무시한 사실이 없으며, 팀선교부와 평신도 복음선교회(당시 기독교복음침례회) 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1976년 주요 일간지에 공동해명서를 내고 “교리나 설교가 그릇 비방된 점··· 등은 오해이며 분쟁상태의 진상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은 “‘구원’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으로써 회개의 과정을 전제하고 있으며, “본 교단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믿음’을 제외한 ‘지식’이 아니라 ‘믿음’을 전제로 한 ‘변화’를 의미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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