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승우 목사 요한계시록 설교 2019년 2월 24일 주일 설교: 며칠 전 2월 17일 설교로 잘못 기재돼 24일로 수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록 해석을 초자연적으로 부어주셨다”
“사실 저는 계시록 해석이 이렇게 초자연적으로 부어질 때,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왜 내게 계시록 해석을 주시지? 나는 암만 생각해도 적임자가 아닌데, 자격이 없는데, 난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이지? 그런데 제목을 주셨을 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 답을 알았어요. 제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제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고, 누구도 자격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계시록 해석을 부어주시는 이유는 제가 자격이 없다는 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도 자격이 없고 다른 사람도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저는 다른 사람과 달리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거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하나님만 의지하고 또 하나님만 높여야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여러분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계시록 해석을 초자연적으로 부어주신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게 세계적인 말씀의 은사를 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강력한 세계적인 말씀의 은사를 부어주셨다는 것을 여러분 극적인, 세 가지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확증을 시켜 주셨어요. 그중에 하나가 신학교 1학년 때 꾼 꿈인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 제가 특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신학교 앞에 있는 OO순복음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어요.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왜 하나님은 나에게 방언 통변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 걸까, 평소에도 늘 궁금했던 그 의문이 떠올랐어요. 너무 궁금해서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손을 들고 질문을 했어요. 여러분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 설교 할 때, 이건 꿈 얘깁니다. ‘목사님 저는 오랫동안 방언 통변의 은사를 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에게 방언 통변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 걸까요?’
강사 목사님이 잠시 설교를 중단하고 기도를 하시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제게 해주었어요. 하나님께서 강사님에게 성경책을 보여주셨어요. 그 성경은 제가 신학생 때 읽던 성경책이었어요. ··· 하나님께서 그 성경을 보여줬는데 저의 눈에도 그 성경이 보였어요. 분명히 저의 성경인데 겉장과 속장이 모두 투명한 유리로 돼 있었습니다. 성경이 덮여 있는데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눈에 다 보였어요. 또 제 성경책에는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을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빈틈이 없이 막 적어놓았는데, 여러분 그 투명한 성경책 여백에도 빼곡하게 성경해석이 적혀 있었어요. 그것은 엄청난 분량이었어요. 도서관 책으로 만든다, 그러면 도서관 하나를 채울 수 있는 그런 분량의 성경해석,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적이고 완전한, 올바른 성경해석이었어요.
근데 성경이 덮여 있는데 그 모든 것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어요. 성경이 덮여 있었는데 성경전서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완벽한 해석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미국·영국·독일·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찾다가 너를 발견하고 이 은사를 주었다”
“이것을 보여주고 난 다음에 성령께서 탄식하면서 말씀을 했어요. ‘내가 원통하구나 이것을 어찌 방언 통변이나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가 있겠느냐 내가 이 은사를 누구에게 줄까. 미국·영국·독일·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찾았다. 사람을 찾다가 너를 발견하고 너에게 이 은사를 주었다. 그런데 이 은사로 인해서 내게 한 번이라도 감사한 일이 있느냐? 늘 방언 통변이나 신유의 은사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지 않았느냐. 내가 작은 다른 은사를 주고도 감사 기도를 받는데, 이런 엄청난 은사를 주고도 원망만 듣고 있으니, 불평만 듣고 있으니, 어찌 원통하다 하지 않겠느냐?' 성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꿈에서 깨어나고 난 다음에 저는 잘못을 회개했어요. 어릴 때부터 여러 기도하는 사람들 통해서 저에게 말씀했어요.
‘하나님은 학생을 은사로 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학생을 말씀으로 쓰려고 선택했어요. 은사를 자꾸 구하지 마십시오. 방언 통변이나 치유나 다른 은사를 구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책을 열심히 읽으십시오. 하나님은 학생을 말씀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했어요. 말씀에 힘을 기울이십시오’ ··· 이것은 역대하 16장 9절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거를, 여러분 말씀하고 있는 거에요. 나의 눈은 온 땅을 보고 있다. 나의 눈은 전 인류를 보고 있다. 나의 눈으로 전 인류를 보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찾고 있다. 지혜로운 자를 찾는 게 아니다. 능력 있는 자를 찾는 게 아니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단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단지 다른 어떤 것으로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나는 나를 향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나는 나만 의지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나는 나만을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 사람을 찾고 그를 통해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한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말씀의 은사를 주시는 사람으로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신 것이에요.”
“요한계시록, 거의 2천년 동안 바르게 해석된 일이 없습니다”
“앞에서 제가 신학교 때 꾼 유리처럼 투명한 성경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그 꿈을 꾼 지 35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떠올릴 때마다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나는, ‘아닌데? 나는 로마서 9장을 해석할 수가 없는데?’.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9장을 해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해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하나님의 은혜로 드디어 로마서 9장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하나님이 부어주셨어요. 그리고 여러분 예정론의 최고 난제 토기장이의 비유풀이라는 책을 펴낼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이었어요. 로마서 9장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로 거의 2천 년 동안 바르게 해석된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여러분, 계시록은 로마서 9장보다 훨씬 길고 해석하기도 7배는 더 어렵습니다. 덕담처럼 되어버린 영성운동진영의 예언처럼 일곱 봉인이 떼어졌지만 마치 봉인된 것처럼. 아무리 읽어도 헷갈리고, 알 수가 없는 요한계시록, 온갖 상상들이 난무하고 해석이 소설화돼버리고, 학자들이 주석을 씁니다. 유명한 강해 설교자들이 강해를 합니다. 읽어보면 소설입니다. 읽어보면 소설이고 읽어보면 상상입니다. 소설화되어버린 요한계시록 주석들, 소설화되어버린 요한계시록 강해집들. 이게 뭘 말해 주는 것인가.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지혜로는 해석할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제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가 있겠어요. 도저히 해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 해석을 오래전에 포기해버렸어요. 저는 요한계시록 연구하지 않았어요. 요한계시록은 오래전에 포기해버렸어요. 오래 전부터 저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 요한계시록 해석이 제겐 미션임파서블이었어요. 완전히 불가능한, 완전히 불가능한 임무였어요. 심지어 저는 많은 입신간증들처럼 계시록도 어쩌면 엉터리 계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심이 내 안에 들어왔어요. 왜 그런 의심이 내 안에 들어왔느냐. 그렇지 않으면 2천년동안 해석이 안 될리가 있는가. 요한계시록을 알기 위해서 세계 신학자들이 쓴 주석들을 봤어요. 읽다가 덮어버렸어요. 이거 읽어봤자 답이 안 나와요. 자기 말에 벌써 모순이 되고 있는데도 본인도 모르고 있다고. 강해설교집을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유명한 강해설교집을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거 끝까지 읽어봤자 답이 안나와. 근데 하나님께서 책을 주셨는데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을 주셨는데 2천년동안 해석이 안 된거예요. 2천년동안 해석이 안되면 그게 무슨 일한거냐, 무슨 가치가 있냐. 이게 무슨 성경이냐 그런 의심이 막 들어오는 거에요.”
“갑자기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저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요한계시록 해석은 저에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에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에요. 아니면 거짓말 같은 날이,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야 될 거예요. 갑자기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저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갑자기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임했어요. 얼마나 경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자랑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그것이 저의 지혜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계시록 해석이 부어지면서, 우리 목회자들이 증인입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한 말이 있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아니라. 내 지혜가 아니라. 내가 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갖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요한계시록에서 진짜 요한계시록에 해석을 부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제가 잘나서도, 제가 똑똑해서도, 제가 훌륭해서도, 제가 영성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고린도 전서 1장에 나오는 그 원리에 의해서 못난 제가 하나님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에요. 바꿔 말해서 소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부어졌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러분, 나의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미련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여러분 내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거에요.
지난 수십년 동안 해석이 완전히 불가능했던 게 갑자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 나의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미련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여러분 내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게 지난 수십년동안 해석이 완전히 불가능했던 걸 갑자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그건 내 지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이 표현 오해하지 마세요. 바울이 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제 말은 하나님이 요한계시록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는 것을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너무 자기 지혜와 지식을 믿는 신학자들에게, 너무 자기의 지혜와 지식을 믿는 말재주를 믿는 강해설교자들에게,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이처럼 사람의 지혜보다 지혜로울 수 있다! 깨달아라! 지적 교만을 버리고 너 자신의 지혜와 판단력을 믿지 말고! 내 앞에 엎드려라, 하나님을 바라봐라! 하나님을 의지해라! 오직 성령님만 의지해라! 믿습니까?(신도들 아멘!) 선지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내 말이 내말이 아니라고 그랬던 것처럼, 바울이 사람의 가르친 말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이 가르친 말로 했던 것처럼, 성경에 나오는 모델을 따르라! 성경의 그 길을 본받아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통해서 신학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목사들에게 지식화되어버린 교회에, 그래서 교리화되어버린 교회에, 성령을 무시하는 교회에 여러분 경고하시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평생 학자·목회자들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들을 관심을 가진 지 삼십분만에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계시록 설교에 서론 본론 결론 모두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것들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연구하는 동안 평생 다니엘이나 계시록을 연구한 학자나 목회자들이 깨달을 수 없었던 것들을 관심을 가진 지 삼십분만에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어요. ‘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도 있다’, 학자들은 그래요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이게 옳아 보입니다. 그런 어용해석이 아닙니다. 완벽하게 할 수 있었어요. 학자들이 평생할 수 없는 것을. 관심을 가진 지 삼십분만에, 관심을 가진 지 한 시간 만에 어떤 해은 왜 틀렸는지 백프로 증명할 수 있었어요. 왜 해석이 많은지, 논쟁이 많은지 백프로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어요. 성경이 가짜가 아니라면 이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도록. 백프로 여러분 증명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한 두번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에요. 상시적으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그 다음날 해석이 됐어요. 전 날 어려웠던 게 그 다음 날 해석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여러분 가장 늦게 된 것이었어요.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경이로운 시간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제가 경이감을 느끼고 얼마나 감탄하고 얼마나 가슴이 뛰고 얼마나 놀라운 그런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간의 지혜로는 불가능한 것이에요. 전문가들이 수십년 연구해도 풀리지 않는, 거의 이천년동안 축적된 연구결과와 지식들을 사용해도 그걸 가지고 연구를 해도 풀리지 않던 난제들이 어떻게 삼십분안에 풀립니까. 어떻게 한 시간 안에 풀립니까. 어떻게 하루도 안돼서 풀립니까.···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가장 지혜로운 학자들이 이천년동안 풀지 못한 계시록이 풀리는 것이에요.”
“방언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목삽니까?”
“이렇게 말했어요. 복음이나 진리는 그냥 듣는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설교자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역사해야 해요. 성령받지 않으면 설교하지 말아야 되요. 설교할 자격이 없는 목사가 너무 많아요. 성령 세례도 안 받은 것들이, 방언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목삽니까? 성령 세례도 안 받고 방언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설교를 합니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길, 삼년 육개월 동안 직접 가르친 그 사도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성령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그때 비로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돼라’ 그랬는데 신학교만 나와서 목사 안수만 받아서 무슨 설교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까? 무슨 목회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까? 성령 세례 받아야 되고 방언 받아야 되고. 성령 세례 받아야 되고. 부르심 따라 성령의 은사 받아야 되고. 그래야 여러분 설교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야 목회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야 여러분 비로소 사역할 수 있는 거에요. 가짜 목사가 너무 많다는 거에요. 가짜 자격없는 무자격 목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설교자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역사해야 해요.”
“로이드 존스 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설교자들까지 너무 어리석었어요. 너무 어리석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계시록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습니다. 저는 학자들의 어리석음에 경악을 했습니다. 저는 강해설교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았을 때 경악했습니다. 너무 어리석었어요. 너무 교수들이 어리석었어요. 너무 설교자들이 어리석었어요. 이름없는 설교자들뿐만 아니라 로이드 존스 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설교자들까지 너무 어리석었어요. 너무 어리석습니다. 아마 다음 시간에 제가 설교하는 걸 들으면 왜 내가 그런 대설교자를 어리석다고 말하는지 알 것이에요. 백프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착각에 빠졌는지. 그들이 어떤 혼란에 빠지고 그들이 어떻게 오판을 하고 그들이 어떻게 진리를 더럽혀 왔는지. 백프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백프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리석어요. 그들은 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서 그 계시를 주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아요. 책을 이해하려면 책의 저자에게 배워야 되는데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여러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칼빈·어거스틴 이런 자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것들, 말도 안되는 것들···”
“··· 학자들이 알아낸. 칼빈, 어거스틴 이런 자들이 만들어낸 허황된 것들. 말도 안되는 것들, 사실상은 계시록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사실상은 계시록을 파괴하고 있는 거에요. 똑똑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휩쓸려 미혹되는 것을 봅니다. 헛된 것들을 가르치고 헛된 것들을 믿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땅히 알아야 될 것을 모른다는 거에요. 계시록 주석을 썼지만. 마땅히 알아야 될 걸 몰라요. 계시록 강해설교를 하고 계시록 강해설교집을 냈지만 마땅히 알아야 될 걸 몰라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섣불리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게 없어요. 무엇을 진짜로 알려면 자기가 모른다는 것부터 알아야 돼요. 거기서 시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은 칼빈은 제외하더라도. 워낙 칼빈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뭐 칼빈이 요한계시록 쓰지 않은 거, 그거 하나 잘했다.
그거 하나 참 잘했다. 여러분 칼빈은 제쳐 놓더라도 세계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가 많은 책들을 강의했지만,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건들이지 않았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강해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분의 책을 갖고 있지만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만 강의했어요. 요한 계시록의 미래는 주로 4장부터 나오는 것인데 여러분 요한계시록 2장고 3장만 강의한 것이에요.”
“제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계시록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그저 계시록에 관한 책 수십권을 읽고 머리를 굴리고 난 다음에 자기가 계시록을 안다고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계시록을 이해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계시록 강해 설교도 하고, 계시록 책도 쓰고, 계시록을 소재로 부흥회도 인도하고, 세미나도 인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계시록을 모릅니다. 그들은 계시록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들은 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그들은 모릅니다. 내가 여러분 계시록 해석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람의 책을 수십권을 확인하면서 보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거에요. 모르더라고요. 너무 충격적일 정도로 엉터리더라고요. 권위자라는 사람들이 제일 엉터리야. 계시록 해석에 권위자라는 사람들은 아주 경악할 정도에요. 너무 잘못 빠졌어요. 너무 잘못 빠졌어. 너무 모르더라고요.”
“계시록 강해 설교집들이 마치 그와 같아요. 계시록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거에요.”
“그들은 정말로 알게 된 후에 안다고 말해야 돼요. 너무 빨리 안다고 생각해요. 너무 빨리 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여러분 충분히 연구하거나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과거 제도가 있었어요. 과거를 볼때 보통 임금님이 어떤 시제를 딱 줍니다. 그러면 과거에 참석한 수많은 선비들이 그 시제를 시제 하나를 가지고 각각 상상력을 발휘하는 거에요. 각각 자기 지식을 이용하고 자기가 가진 정보를 이용하고 상상력을 발휘해가지고 문장을 씁니다. 그러면 잘 쓴 사람을 뽑는 거에요. 지금 여러분 계시록 주석이 마치 그와 같아요. 지금 여러분 계시록 강해 설교집들이 마치 그와 같아요. 계시록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거에요. 계시록을 소재로 목사들이, 신학자들이 이런 상상, 저런 상상, 이런 추측, 저런 추측 그리고 여러분 소설을 쓰고 있다는 거에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 해석을 빙자해서 계시록을 난도질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언서인 계시록을 잘못 해석함으로 말미암아 계시록이 그들 주장에 따르면 역사서처럼 되어버렸어요.
“계시록을 안다는 사람과 여러번 말을 하고, 유명한 학자들 글을 봤지만 하나같이 엉터리”
"역사서처럼. 계시록이 그들 주장에 의하면 마치 교회사처럼 되어 버렸어요. 계시록이 무슨 책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성령을 터부시하고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과연 그 잘난 지식으로 게시록을, 여러분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겠습니까. 계시록을 여러분 제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계시록을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과 여러번 말을 해봤어요. 또 주의깊게 그들의 말을 들어봤어요. 그러나 여러분 계시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유명한 학자, 유명한 설교자, 유명한 무슨 뭐 마이크 비클, 많은 운동가들의 글도 읽어 봤지만 하나같이 엉터리였어요. 저는 여러분 특히 요한 계시록 주석을 쓴 학자들 그 다음에 요한 계시록 강해집을 낸 목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모른다는 거를 빨리 깨달으라고. 그래야 희망이 있다고. 당신이 계시록을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당신이 계시록을 모른다는 걸 빨리 깨달으라고. 그리고 거기서 다시 출발하라고. 그래야만 희망이 있다고.
"난 아주 경악을 했어요. 칼빈·어거스틴부터···유명한 학자들이 엉터리 소설들을 썼는지”
“다른 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설명에 사용하는 다른 장이나 다른 책에 나오는 구절들, 거기에 대한 견해 이 해석이 옳다는 거를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불가능합니다. 그래 가지고는 이거 뭐 그거 가지고 열 시간 얘기해도 안돼요.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왜냐면 너무 잘못된 해석들이 많아서. 난 아주 경악을 했어요. 경악을. 칼빈부터, 어거스틴부터 얼마나 계시록에 대해서 잘못 이해를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명한 학자들이 계시록에 대해서 정말 엉터리 소설들을 썼는지. 저는 여러분 성경으로 이게 환히 보이면서 정말 경악을 했어요. 여러분 잘못 해석하고 오해하고 결정이 나지 않고 두 가지 이론이 서로 이렇게 팽팽하게 붙고 있고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단 말이에요.
“(제 해석을)여러분들이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백프로 동의하게 될 거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혼란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 생각을 내려놔야 된다는 거에요. 그 생각을 내려놓고 일단 저를 신뢰하고 그걸 들으라는 거에요. 일단 저를 신뢰하고 들어라! 그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어? 그러면 맹신하라는 말입니까, 목사님의 말을 무조건 맹신하라는 말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장에서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책에서 어떤 구절들을 인용하고 또 이것이 어떤 의미라고 그 구절을 인용하면서 본문을 설명해 나간다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지금은 그것들을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은 본문을 말하는 시간이에요. 계속 듣다보면 시간이 되다보면 그거를 다루는 본문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다뤄야 될 본문, 그걸 다룰 시간이 온다는 거에요. 그거를 들어보면 여러분들이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백프로 동의하게 될 거라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 허풍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허풍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백프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백프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그때가 되면 여러분이 다 알게 될 거란 거에요. 그러니깐 기다리라는 거에요. 겸손한 마음으로. 특히 신학자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너무 잘못알고 있는게 많어. 설명할 수가 없어. 용어가 말들이 틀려. 그게 그 말이 아닌데. 그게 그 구절이 그 말이 아닌데. 이게 특히 신학자들에게 제가 하는 얘기고 이게 특히 계시록 주석 만드는 목사들에게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말이에요. 백지 상태에서 들어라! 겸손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성경이 틀리지 않았으면 이 말이 틀릴 수 없다”
“여러분 학자들 조심해야 됩니다. 학자들 목회자들 조심해야 됩니다. 알고 있는 게 정확한 게 아니기때문에. 또 그것들을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때에 다 그런것들을 계시록 해석하면서 전부 다룰 것이기 때문에. 그러고 논쟁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증명해 드릴 것이기 때문에. 설교를 들으면 그렇게 돼요. 성경이 틀리지 않았으면 이 말이 틀릴 수 없다. 그렇게 됩니다. 성경이 틀리지 않았으면 이 말이 틀릴 수 없다. 다니엘 칠십 이레에, 전 다니엘 칠십 이레에 관심도 없었어요. 근데 한 번 토대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다니엘 칠십 이레 예언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상대로 해볼까. 그래서 세계적인 설교자 로이드 존스의 책을 보고 로이드 존스가 다니엘 칠십 이레를 해석한 걸 보고 나하고 해석이 완전히 틀려. 난 충격 받았어. 문맥이 너무 맞어. 그래서 정직하게 살펴 봤어. 근데 놀라운 걸 알았어요. 어떻게 이런 걸 못보지? 이렇게 세계적인 설교자가 어떻게 이런 걸 못 보지? 그리고 막 해석이 되는데 경악을 했어요. 경악을. 오늘 뭐 시간 다 갔으니까 맛보기로 간단하게 얘기하면 다니엘 칠십 이레 예언중에 제일 중요한 이슈중에 하나가 간격이론이란 겁니다. 가격이론. 가격이론이 뭐냐면 69이레와 70이레 사이에 왜 교회시대 2000년이 있느냐.”
다니엘 70이레 예언이 다니엘서 9장 24절 이하 27절에 네 절 기록이 돼 있는데. 그 다니엘 70이레, 다니엘서 9장 예언인데. 암만 본문을 봐도 간격이 없어요. 그러니까 학자들이 69이레 다음에 당연히 69다음에 70이지. 70이레로 들어가는거지. 여기 아무런 단서가 없는데 왜 69이레 다음에 교회시대 2000년 이방인의 때 2000년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마지막 한 이레가 대 환란 때 일어날 일이라고 예수님 재림 직전에 대 환란 때 일어날 일이라고 이런 얘기를 하느냐. 그게 여러분이 보세요 안 나와요. 거기 간격이 안 나옵니다. 근데 성경을 이해하면 간격이 보입니다. 문자로는 안 보여요. 성경을 이해하면 보여. 여러가지를 ++ 가. 네 다섯가지로 설명할 수 있어요.
근데 결정적인 해석을 그날 주님께서 계시적으로 저에게 알려주시는데. 말 못해(특유의 흐흐흐흐흐흑 웃는 웃음을 짓자 신도들 함께 웃음). 결, 결, 결정적인 해석을 알려주시는데 말 못해! 그거를 탁 아니깐. 진 목사님도 그렇고 들은 사람들이 경악을 하는 거야 경악을. 이렇게 분명한 걸 왜 모르느냐. 이거는 성경을 부인하지 않는 한 이거는.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요. 교역자들보고. 내가 로이드 존스하고 한판승으로 승리했다. 내가 로이드 존스하고 다니엘서 70이레 가지고 붙어서 한판승으로 승리했다. 지금 뭘 얘기하는데. 그게 옛날에. 편지를 보내잖아요. 근데 중요한 기밀문서를 보내 때 종이에 글이 아무것도 안 써있어. 글을 암만 보봤자 무슨 내용인지 몰라. 아무것도 엇어. 근데 그거를 초 앞에다가 불 앞에다가 이렇게 하면 초로 글씨를 썼어. 그럼 초가 녹으면서 글씨가 삭 드러나잖아요. 거기에 비유할 수 있어요. 다니엘 칠십이레 예언에 69이레와 70이레 예언 사이에 2000년의 간격이 있다는 게 문자적으로는 그 다니엘서 9장에 전혀 기록돼 있지 않아요.
근데 다니엘 70이레 예언을 진짜로 해석할 수 있게 되면, 이게 뭘 말하는지를 성경으로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어요. 정확하게. 추측이 아니고. 진짜로 해석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보여. 거기에 분명히 들어있어. 거기에 눈에 안 보이는 분명히 간격이 백프로 들어있어. 백프로. 백프로 들어있어. 그래서 그래서 여러분 학자들의 생각이 틀린거야. 거기서부터 단추를 잘못 낀거야. 거기서부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나. 나도 경악했어요. 나도 경악했어요. 그런 것들이 성령께서 계시를 부어주셔서 풀릴 때 제 자신이 막 경악을 했어요. 무슨 성경이 이렇게 풀리나. 어떻게 이렇게. 그러고 인제 풀어가지고 딱 증명을 하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나하고 똑같이 생각했어. 성경에 그게 나와. 예수님이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졌어. 예수님이 다니엘 70이레를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이 해석하셨어. 아니 근데 왜 학자들이 그거를 못보지? 난 도대체 이해가 안 가. 똑같은 성경을 보는데. 그래서 여러분. 그래서. 그래서 시편 119편 18절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거에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에 기이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이 구절 가지고 수없이 기도했어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읽고 연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근데 시편 기자는 그렇게 생각을 안 했어. 하나님 내 눈을 열어 주셔야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냥 내 머리로 읽는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 주셔야 된다. 내 눈을 열어주시는 건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내 눈을 열어주시는 일은 그게 ‘갈라’라는 단어인데 계시를 뜻하는 단어에요. 계시.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를 주실 때 비로소 말씀을 보는 눈이 열리는 거에요. 믿습니까? 그게 안 열리면 다니엘 칠십 이레를 봐도 절대로 거기서 간격이 안 보이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꾸 엉뚱한 해석을 하고 그 해석이 틀려버리니까 계시록이 막 소설이 돼 버리는 거에요. 계시록을 학자들이 막 엉망진창을 만들어 버린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계시를 주시면 그 눈이 열리는 거에요. 그 눈이 열리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이해할 수 있게. 성경의 문맥에 기초해서 다니엘 70이레 예언이 무슨 의미인지를 확연하게 백프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확연하게. 눈이 떠진 것처럼 환히 보이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딱 보면 틀림없이 그 안에 2000년이 있는 거에요. 근데 예수님도 그거를 본거야. 바울도 그거를 본거야. 예수님도 그걸 바울도 봤어. 사도 요한도 그걸 봤어. 학자들만 그걸 못 봐. 그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는 거야. 성경에.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서 요한은 또 요한 계시록에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눈이 열려야 됩니다. 여러분. 눈이 열려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걸 다음 시간에 할 겁니다(흐흐흐흐흐).
3부 설교 녹취
“김세윤이 틀렸어”
“그때 해석을 주셨는데, 김세윤 교수 데살로니가 전서 강해를 보니까, 거기를 모르더라구요. 딱 보니까 이 구절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더라구요. 여러분, 그런 해석이 안 왔기 때문에 이 구절을 갖고 이게 전체를 종말에 될 일을 알아야 보이는 건데, 그냥 본문 가지고 씨름하니까, 그냥 형식적으로 써놨더라고. 그래도 세계적인 학자가 써놨으니까, 이 사람의 해석이 맞나?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해석이, 정말로 맞나? 그런, 조금 감이 남아 있었는데, (설교)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깔끔하게 말씀하시더라고. 보니까, 김세윤이 틀렸어.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해석이 100% 맞는 거예요. 이게 뭐, 증명이 되는데, 뭐. 걷잡을 수 없이 증명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아주 희한하고 기발한 생각으로 2천년 동안 안 풀렸던 계시록을 해석했다, 그러는 거 아니예요.”
“가브리엘이 틀렸어”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다, 가브리엘이 와 가지고 롤랜드 벅 목사님께 말씀하였어요. 예수님의 휴거 시기에 대해서 환란전, 환란중, 환란 후, 세 가지 견해로 학계에 나눠져 있는데, 이걸, 예수님 재림 때까지 절대로 풀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맞는지.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그게 결론이 안 날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롤랜드 벅에게 그랬어요. 그땐 나도 어떤 건지 몰랐어요. 불과 몇 주전에. 저도 갑자기 하나님께서 갑자기 부어줘서 알게 된 거지, 몇 주 전만 해도 계시록 몰랐어요.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물론 어느 때에 예수님이, 환란전인지, 환란 중인지, 환란 후인지, 언제 재림할지,저는 몰랐어요. 그런데 가브리엘이, 이건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결론이 안 날 것이다고 해서, ‘야, 이게 참 어렵긴 어려운 주제인데, 이게 결론이 안 나려나보다’, 그런데 이게 결론이 안 나면 그냥 계시록은 몰라요. 이걸 분별 못하면 계시록 해석은 불가능해요. 그냥, 상상이고 추측을 말하게 되지, 진짜 계시록을 해석은 못하게 돼요. 그래서 그걸 제가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거 가브리엘이 틀렸어. 가브리엘이! 왜냐하면 정확하게 답이 나오는데? 이럴 수도 있다, 저럴 수도 있다, 이러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7년 대환란 전인지, 후인지, 통과설인지, 정확하게 답이 나옵니다. 그것도 이제 제가 몇 주 안에 성경 갖고 입증해 드릴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