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6-08-27 11:05 (목)
“신천지, 존재해서는 안 될 조직입니다”
상태바
“신천지, 존재해서는 안 될 조직입니다”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5.05.20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원 전강사 인터뷰 1편] 32년 신천지 강사가 고백한 입교부터 제명까지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에서 32년 이상을 헌신하며 청년회장, 강사, 총회 문화부장, 불광동 도마지파장 등 핵심 직책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직접 경험한 신천지 내부의 구조와 교리, 충성의 과정과 탈퇴의 결심까지 3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정리해서 글과 영상으로 올립니다. [편집자주]

“신천지는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끝내야 할 조직입니다.”
신천지에서 32년을 보낸 이재원 전 강사의 고백은 단호했다. 그는 1991년 스물셋의 나이에 신천지에 입교했고, 2023년 11월 제명당하기까지 신천지의 중심부에서 활동했다. 이재원 전 강사의 삶은 곧 신천지 그 자체였다. 입교도, 헌신도, 그리고 탈퇴도, 모두 치열한 신앙의 갈망과 그에 대한 좌절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원래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신교단 SFC, 네비게이토에서 훈련을 받으며 성경을 매달 한 번씩 통독했고, 영어 성경과 주석서를 밤낮없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뜻을 풀어주는’ 성경 해석에 갈급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계시록 세미나’ 전단지를 접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3일간 들었는데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부산의 박용찬을 만나 세 날 밤낮 성경 토론을 벌였다. 그는 성경공부할 때 칼을 옆에 놓고 진행했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죽여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1991년 5월 15일, 그는 신천기에 기록된 입교자 번호 0008-0515-00002번으로 공식 입교했다. 신천지 교적부를 직접 작성한 입교자였고, 청년부 회장을 맡았던 그는 이후 강사로, 총회 문화부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군 복무 중에도 그는 신천지 교리를 복사본으로 받아 화장실에서 외우다시피 독파했고, 이만희 총회장에게는 매일 편지를 보냈다. 실제로 이만희가 면회를 오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청년회장, 전도부장, 자비로 설립한 신학원의 강사, 강원도 지교회 설교자, 그리고 불광동 파견 등 신천지 조직 속에서 중심적 위치를 오갔다. 2004년에는 총회 문화부장으로 선임되어 전국 체전을 총괄했고, 신천지의 모든 영상·녹음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실상 자료 박물관과 신문 창간도 주도했다. 이때 창간된 ‘초교파신문’은 오늘날 천지일보의 전신이다.

그는 자신을 내조해 온 아내의 건강 악화로 인해 사역 중단을 요청했고, 이만희에게서 받은 100만 원이 퇴직금이 되었다. 이후 그는 “위에서 보던 조직을 밑에서 보기 시작했다”며 신천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남희 사건, 신현욱 목사 사건, 그리고 코로나 사태는 그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신천지 내부에서 개혁 모임을 준비했다.

그러나 내부 개혁 시도는 발각됐고, 해명의 기회조차 없이 그는 전격적으로 제명당했다. 이재원 전 강사는 “근신도 없이, 단 하루 만에 통보받았다”며, 조직이 이제는 스스로를 정당화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경직되었다고 비판했다. 이후 공희숙 강사 고소 사건을 계기로 그는 실명을 드러내고 공개 증언을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내가 그렇게 충성했던 조직이 사기였다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다시 속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신천지는 반드시 끝내야 할 조직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