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락방에 28년간 몸담았던 박종기 목사(엘림교회)의 지난 과거를 정리한 글입니다. 그는 지난 일을 죄악시하며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막막하던 차에 ‘종말론사무소’에서 상담하며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락방 교리를 분별하여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다락방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그리고 다락방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탈퇴한 뒤 어떤 심리와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의 회고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 목사의 글을 통해 여전히 다락방에 있는 분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바르게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박 목사는 2024년 7월 16일 100여 명의 다락방 교역자들과 함께 한국교회 앞에서 다락방이 이단임을 천명하며 회개 성명을 발표하고 다락방 탈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현재 국제개혁교단에 가입,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편목 과정을 준비 중입니다[편집자 주]
대학생활 내내 진심어린 기도제목이 있었다면 단 하루 혹은 한 순간이라도 ‘평안’이란 걸 맛보는 것이었어요. 다락방을 만나고도 항상 벼랑 끝에 매달려 살아남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듯한 신앙상태였거든요.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끝모를 절벽 아래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항상 따라다녔어요. 주일마다 그런 갈급함과 답답합의 연속이었어요. 그게 휴학을 결심케 했죠. 휴학 1년의 여유는 조급증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듯 했지만 성큼성큼 다가오는 복학은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복학을 앞두고 용기를 내서 진실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어요.
‘하나님, 단 한순간이라도 평안을 누리고 싶어요’
저의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죠. 사실 다락방에 발을 들인지 6개월만에 동기생들이나 선배들, 심지어는 담당 목회자에게 별 소망이 없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총재에게 답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단지 원조는 완벽한데 주변 사람들이 시원찮을 뿐이라는 나름 현명(?)한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담판을 짓기로 했어요. 얍복나루에서 선 야곱처럼 간절한 마음 뿐이었어요.
졸업 학기 초가 되어 기숙사에 들어서자 다행히 한 학기동안 혼자 지낼 기회가 생겼어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에 좋은 환경이었어요. 악착같이 매달리는 신앙이 아니라 여유와 평안을 누리기 위한 시도를 했어요. 그동안 배운 것이 내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부터 시작했어요. 하나님과 학업 그리고 내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했거든요. 교회 사람들과의 접촉은 최대한 줄이고 설교 듣기도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성경과도 대화를 시도했어요.
약 두 주 정도를 매일 개인적인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갖자 변화가 찾아왔어요. 그토록 고대하던 평안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평안함이 찾아왔어요. 비록 잠시였지만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불안에 떨었던 이유와 조급증을 냈던 이유를 독서와 기도 그리고 성경에서 찾아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어요. 놀랍게도 그토록 고대하던 전도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찾아왔어요. 그게 비록 일순간에 그치긴 했지만 저에겐 놀라운 변화였어요. 그 후로 이런 저런 변화를 경험했지만 다락방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대학부 안에서 변화를 위해 무던히 애썼었어요. 대학부안에 건전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여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어요. 신앙이 좋다는 대학생들의 대화 내용에 사명이 가득하고 미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다보니 소통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기도 했어요. 아마도 몇몇 사람들이 다락방 신앙의 불건전성을 감지하기는 했지만 소수 의견으로 묻혔어요.
잠시 몇 달간 맛 본 평안함은 그 이후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항상 그 때를 갈구했지만 좀처럼 돌이킬 수가 없었어요.
그러고도 다락방을 끊어내지 못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총재의 확신에 찬 설교였어요. 젊은 시절이라 아마도 더 열심히 듣고 배워서 더 열심히 전도하면 되리라는 막연한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총재는 어떤 성격의 집회에서든 어떤 청중이 모여있든 흔들림이 없었어요. 전도에 관해선 말할 것도 없었죠. 늘 지난 과거를 들먹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패턴이었어요. 그 설교가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에서 제일 큰 다락방 소속 교회가 설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목회에 적용을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가기에 바빴어요.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현실의 한계에 항상 자책하고 갈등을 했어요. 고민 끝에 어떤 부류는 다락방이라는 단체안에 있는 것 자체가 응답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훈련 따라다니기에 올인하기에 이르렀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었고요. 사춘기 시절 그렇게 갈구하던 진리가 다락방안에 있다는데 적당히 타협하기 싫었어요. 총재가 설교한 게 성취가 된다는데 적당히 듣고 말게 하니라 그대로 해 보고 싶었어요. 목회자가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보니 더더욱 악착같이 다락방이 주장하는 복음과 전도에 매달렸어요. 개인적인 갈급함은 총재에 대한 무한신뢰로 이어져 의심없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그토록 간절이 찾고 찾던 것에 답을 줄 것 같은 확신이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했어요. 신학생을 지나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도 총재의 ‘확신’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현실적인 ‘의구심’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서점과 도서관을 틈틈이 찾았고 어떻게 해서든 ‘전도’라는 지상과제를 풀기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오랫동안 사역해왔던 대학생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문화가 되어버린 다락방식 신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나마 총재의 설교를 '초창기'부터 듣지 않아서 현실감각이 있는 학생들에겐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했어요.
다락방식 복음은 반지성주의적 성격이 강했어요.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전도'앞에 그 어떤 이유도 핑계에 불과했으니까요. 그걸 청소년, 대학생 자녀들이 소화해 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락방 전도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있고 다락방 교회는 세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대형 교회들의 세미나나 간증을 들어보면서 그 생각은 더 확신에 가까워졌어요. 성장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고 들려주어 감화, 감동을 시키는것이 밑바탕이 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교회화가 되고 새신자는 그 사랑을 먹고 신앙이 성장하는 구조더군요.
그 내용을 접하고는 교회에서 전도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없었어요. 수십년간 전도를 배웠다고 자부했지만 전도를 할 수 없는 구조와 신앙색깔로 굳어져버린 현실이 눈에 훤히 보이더군요. 열매 맺기 위한 농부의 수고는 남에게 위탁하거나 하청에 맡기고 본인은 열매를 따먹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다락방식 전도인데 어느 누가 그 속임수에 걸려들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