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대박의 꿈이 서민들을 사로잡고 있다. “담배값 주택복권으로 4억2천만원 당첨, 초상집 문상 가는 꿈꾸고 10억원 당첨, 운전학원 강사 35억원 당첨.” 연봉 2천만원을 받는 샐러리맨이 175년 동안 모아야 만질 수 있는 수십억대의 돈을, ‘한방’에 벌 것처럼 홍보하는 광고문안들이 복권 판매소, 복권방, 복권 관련 사이트에 난무하고 있다.
복권을 발행하는 국민은행은 꿈까지 들먹이며 서민들의 환상을 부풀리고 있다. 국민은행 복권 사업팀은 지난 해 주택복권, 또또복권 1억원 이상 고액 당첨자 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돼지꿈을 꾼 다음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국민은행은 “당첨과 관련된 꿈으로는 복의 상징인 돼지를 비롯, 조상, 불, 뱀, 시체 순이었다”며 “돼지 꿈을 꾸면 복권을 사라”고 친절하게 보도자료 제목을 뽑기까지 했다. 복권 구매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편만한 가운데 날로 늘어가는 것은 복권시장의 규모다. 이에 따라 애꿎은 서민들의 푼돈만 날아가고 있다.
국민은행 복권 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국내의 복권시장 규모는 7천억 내외지만 기존복권과 달리 구매자가 스스로 번호를 선택하는 로토가 10월에 나오면 복권 시장 규모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늘어가는 복권 시장에 맞춰 복권방도 증가 추세다. 현재 추산되는 복권방 수는 최소 1천여 개. 여기에 전국적으로 2, 3만여 개에 이르는 복권 판매대와 즉석 복권을 취급하는 슈퍼마켓까지 합치면 수 만 개의 복권 판매소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복권 사업을 하는 곳도 53개에 이르고 있다. 결국 맘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현실이다.
복권 종류도 다양하다. 주택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등 모두 20여 가지에 이른다. 최근에는 녹색복권, 플러스복권 등 거의 해마다 새로운 복권이 한가지씩 선을 보이는 실정이다. 이 복권들은 모두 정부기관에서 발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황호찬 교수(세종대 경영학부)는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복권을 발행하는 실태에 대해 “여윳돈이 있다면 재투자를 하고 산업을 부흥시켜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행위를 한다”며 비판했다.
복권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대박의 꿈’을 규제하고 나섰다. 국민의 한탕주의 및 사행심 조장을 막고, 건전한 복권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복권 발행 가이드 라인을 설정하고 최고 당첨금을 5억원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일관성없는 시책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높기만 하다.
ruins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지금까지 한탕주의와 사행심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정부 기관들”이라며 “정말 국민들의 한탕주의가 우려된다면 차라리 정부 차원에서 복권발행을 금하거나 당첨금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복권의 매력을 반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추첨식이나 즉석식 복권의 1등 당첨확률은 대략 1백만분의 1”이라며 “수학자들은 절대 구입하지 않을 통계”라고 말한다. 통계학적으로 볼 때 ‘대박의 꿈’은 거의 이뤄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런 비현실적인 당첨확률에도 불구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구입하고 있다.서울 종로에 위치한 ○○복권방의 주인은 “하루 50여 명의 사람이 찾아온다”며 “복권 매니아 층이 있다는 사실을 복권방하며 처음 알았다”고 말한다. 이 복권방에서 말하는 복권 매니아란 일주일에 한번은 찾아와서 주택복권, 월드컵복권, 슈퍼더블복권 등 추첨식복권을 적어도 10만원 이상씩 구입하는 사람이다. 구로구의 한 복권방 업주는 “한달에 약 200여 만원의 순수익을 내고 있다”며 복권방이 되는 사업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인터넷에서도 복권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인터넷복권의 특징은 복권을 사기 위해 다리품을 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총상금 62억5천만원, 최고 당첨금 40억!”등의 카피가 쓰여 있는 복권을 클릭하기만 하면 쉽게 복권을 구입할 수 있다. 많은 서민들이 “△십억원 당첨!!”이라는 문구에 ‘대박의 꿈’을 꾸며 0.000001 정도의 확률밖에 되지 않는 당첨을 바라고 호주머니를 열고 있는 것이다.
황호찬 교수는 “작년에 발행한 복권은 총 21억장이었고 그 중 8억장을 폐기했는데 그 비용만 150억이 들었다”며 “복권으로 수익을 올리는 발행기관이 드문데도 정부기관이 계속 복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황교수는 크리스천이 복권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 “한 번 두 번 재미로 사다가 중독되는 게 복권”이라며 “복권을 사다보면 사행심과 한탕주의에 편승하게 되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성경말씀을 위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K씨의 사례 - ‘고작 1억원’에 망쳐버린 인생 포장마차를 하며 부인과 단란하게 살던 K씨(당시 35세)가 복권에 당첨된 것은 지난 1984년. 돼지꿈을 꾼 다음날 복권을 구입해 당시 최고액인 1억원에 당첨되는 대박을 터뜨린다. 세금을 빼고 8천4백만원을 손에 쥔 K씨에게 대박은 행복이 아닌 ‘불행’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생긴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K씨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친구들과 흥청망청 돈을 날리기 시작했고, 향락과 유혹의 구렁텅이에 깊게 빠져드는 만큼 아내와의 관계는 나빠져 갔다. 결국 1998년 이혼법정에서 부인에게 위자료 3천만원, 자녀 양육비 3천만원, 재산분할 4천만원 등 총 1억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결국 K씨가 터뜨렸던 1억의 대박은 허망하게 끝을 맺으며 없느니만 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대박이 패가망신을 불러온 것이다.
부부싸움 끝에 부인을 수시로 폭행했고, 아내를 구타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수차례 썼지만 향락의 늪에서 14년을 헤매며 부부는 불행한 날을 겨우겨우 이어갔다. K씨는 빌딩임대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유흥비로 탕진하기에 이르렀고, 아내를 구타하다가 처가 식구들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K씨가 1년 6개월 실형을 살고 나오자 기다리는 것은 아내의 이혼소송이었다.
복권은 인간의 ‘한탕주의’, ‘일확천금’ 심리를 이용한 ‘도박·사행’산업의 대명사이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경마(6조163억)나 경륜(2조1천575억)에 미치지 못하는 6∼7천억 정도의 규모지만, 경마와 경륜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강점으로 이용자 수가 연간 6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복권은 그 도박성 이전에 도박으로 돈을 버는 것이 복(福)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주고, 돈을 곧 복이라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를 부추기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실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그 돈을 잘 사용할 능력이 없어 복권(?)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더 큰 문제는 운영형태에 있어서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복권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문화관광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산림청, 국가보훈처, 보건복지부, 제주도 등 10개 정부기관에서 모두 21개 종류의 추첨식 및 즉석식, 인터넷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익성은 저하되고 그러다 보니 예산 낭비도 심각하다. 지난 해 복권 발행액 1조원 가운데 4천억원 이상이 팔리지 않아 폐기 처분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필연적으로 당첨금을 올려 60억 복권 등이 등장하게 되고, 복권의 붐을 조성하여 사행성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모든 복권이 복지기금 등 공공기금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결국 복권은 부자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헛된 꿈을 유혹하여 주머니를 털어내는 정의롭지 못한 일종의 세금징수 행위(역진세)이다. 무엇보다도 복권은 도박이다. 자신의 지적 혹은 육체적인 노동을 통하지 않고 운(luck)에 의하여 단번에 떼돈을 얻으려는 일종의 도적질이다. 복권은 물질주의를 조장하여 사회의 윤리적 기반을 붕괴시키게 될 것이다. 또 건전한 노동윤리에 타격을 가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유지할 수 있는 가치관을 왜곡시키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허탄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땀흘려 취하지 않은 그 어떤 재물도 도적질이라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허망한 행위를 부추기는 정부정책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계 안에서 복권을 비롯한 사행도박산업을 규제하도록 활동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권장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