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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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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성령론
  • 교회와신앙
  • 승인 199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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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룡 총장(호남신학대학)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는 그 심각성이 이미 공지된 사실이다. 그러나 심각성에 비해 대처와 처방이 미흡하고 적절하지 못했다. 이단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 또한 대처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이단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는 교리적인 문제의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단 사상에 대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교리에,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본지는 이단이 발생할 수 있는 전 교리를 고찰, 오늘날의 이단 사상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고자 '기독교 2처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을 기획했다.

필자마다의 다소간의 학문적 차이점이 있고, 전문적인 용어 때문에 독자들에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집중해서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편집자 주>

 

영(Spirit)이라는 낱말의 성경적 어원은 히브리어에서는 루아호(ruch), 희랍어에서는 프뉴마(Pneuma)라 하는데, 양자가 대기 운동을 가리킨다. 문맥에 따라서 이는 바람, 미풍, 폭풍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그러나 보다 더 자주 숨(breath)이라는 말로 사용하는데 이는 상징적으로 생명의 근원, 생명력(vitality)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요, 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의 생명의 숨(루아호)을 불어넣어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생령(a living soul)이 된다(창2:7, 욥33:4).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하나님의 입김을 통하여 살아 움직인다(전3:19,21, 창6:17, 7:15,22).

세계 안에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그의 생명의 영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명을 얻으며, 거두시면 죽음으로 되돌아간다(창6:3, 시104:29, 욥34:14).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힘이요, 그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창조와 재창조 중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자신에 속한 것으로 어떤 피조물도 지배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어원적 의미를 통하여 성령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영으로서(life-giving Spirit)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언제나 다시 불러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인 동시에 자신의 인격적 주체 속에서 언제나 새롭게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에 관한 간단한 정의를 통하여 성령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사역을 감당하시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삶, 신앙, 신학에서 무관심하거나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분으로 삶, 신앙, 신학의 요체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론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물론 이에 관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이게 관하여서는 본 장에서 약하도록 하겠다. 여기에서 비롯된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의 부족과 또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의도적으로 악용하여 성령론은 이단 사상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본 장에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사적 성령론에 나타난 중요한 4가지 이단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

성령의 하나님되심, 즉 성령의 신성을 부정한 이단 사상이다. 성령의 신성은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교리였다. 헤르마스는 성령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유스리누스는 영과 로고스를 동일시하였다. 마태복음의 저자로부터 비롯하여 디다케의 저자 및 유스티누스에게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을 알려져 있다. 이레니우스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신앙고백의 학습문답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마케도니우스와 성령 훼손당(Pneumatomachen)이라는 이단이 일어나서 성령이 하나님의 피조된 능력 내지 도구라고 하였다. 특히 아리우스는 더욱더 성령의 피조성을 강조하였다. 사실 아리우스는 처음에는 성령의 인격성을 주장했지만 나중에는 성령의 인격성 및 신성을 부정했다.

아리우스를 비롯한 그들의 견해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지금까지 모든 정통적인 교회는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신조에 의하면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않고 누가 그를 낳으신 것도 아니고 다만 나오신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Constantionople) 신조에 의하면 "주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으니, 그는 성부로부터 나오시고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니"라고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앙고백에도 유사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하나님 안에는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가 통일을 이루고 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지존하셔서 나시거나 발생하지 않으셨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오신 분이며(begotten),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 분(proceeding)"이라 한다. 이 같은 교리의 가르침뿐 아니라 성경 역시 성령의 시적 본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성령의 주(Lord)라고 부르심에서 볼 수 있다.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 중에는 앞에서 살펴본 마케도니우스(Macedonius)를 비롯한 성령 훼손당과 아리우스(Arius)와 함께 또 하나 유념해야 될 이단은 사벨리우스(Sabellius)가 주장한 양태론(Modalism)이다. 사벨리우스는 하나님의 통일성과 일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구별하지 않고 부정하여 성자, 성령은 단지 성부의 다른 양태(mode)의 나타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실제로 삼위일체론을 부정한 것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계시는 동등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삼위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호칭하는 것은 서열, 우열, 순위를 뜻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관계만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하나님되심, 즉 성령의 완전한 신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믿지 못한 자는 성령의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단일 수밖에 없다.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이단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이단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한 인격이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한 인격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근본적 계시이다. 그럼에도 성령의 인격성은 수세기에 걸쳐서 여러 차례 부인되거나 등한히 여겨 왔으며 근대까지도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령의 인격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대적한 아리우스는 성령은 단지 피조된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에너지(energy)로 보았다.  16세기의 소치니우스(Socinius)와 그의 추종자 역시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경향이 오늘날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성령을 비인격적 감화력, 능력, 세력, 힘 등으로 생각한다.

이것들은 다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론을 조직적으로 체계화시킨 오웬(J. Owen)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증거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들로 말미암아 밝혀지도록 계획된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즉, 성령은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같이 신적 본성 안에 있는 하나의 물질이 아니며,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단순한 선도, 능력도 아니며 우리의 성결을 위해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아니다. 그는 거룩하고 지적인 실재, 또는 한 인격체이시다"

성령을 한 인격으로 보지 않는 이단은 교회사에 나타나기 이전에 벌써 그 기원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성에서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을 본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에게 돈을 주고 이 성령의 권능을 팔도록 요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술사 시몬이 사도들에게 성령을 팔도록 요청한 것은 성령을 붙잡아 그의 뜻대로 이용하려는 뜻에서였다. 그는 성령의 인격성보다는 그의 욕망, 그의 뜻을 성취시키려는 수단 도구로서 성령을 이해한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인격성을 세 가지로 나타내고 있는데, 첫째, 성경은 성령을 인격 대명사로 부르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에서와 같이 성령을 그 분(He)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외에도 요한복음 16장 7절, 8절, 13절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둘째,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인격적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나타내고 있다.
-성령은 말씀하신다(계2:7).
-성령은 인간의 연학함을 도우신다(롬8:26).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신다(롬8:26).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신다(요14:16).
-성령은 주님에 관하여 증거하신다(요15:26).
-성령은 그리스도인을 인도하신다(요16:13).
-성령은 주님의 사업을 도우신다(요16:6-7).
-성령은 일꾼을 선택하신다(행13:2).
-성령은 그리스도인을 위로하신다(행9:31).
-성령은 근심하신다(엡4:30).

셋째, 성경은 성령이 인격적 속성인 지·정·의를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성령은 지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고전2:10).
-성령은 정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엡4:30, 롬8:26).
-성령은 의지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고전12:11, 행15:6-7).
성령은 단순한 힘, 능력, 영향력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가진 인격적 주체로서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고 만나는 신적 인격이시다.

자칭 보혜사라고 하는 이단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혜사 성령이라고 칭한 이단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며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하여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분이 보혜사 성령이시다. 이처럼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분으로 요한복음서에 나온 성령에 대한 독특한 칭호이다.

보혜사라는 말의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 하는데, 이 칭호는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흠정역에서는 위로자(comforter)로, 개역성경에서는 위로자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난외 주에 대변자, 도와주시는 분을 의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개역표준성경에서는 상담자라고도 번역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대부분의 신약성경은 도와주시는 분(helper)으로 번역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되었다. 성령을 보혜사라 한 것은 성령이 삶의 용기와 힘을 주시는 위로자이시며, 생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상담해 주시는 상담자이시며,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며 더 나아가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대변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해사라는 말 속에는 위의 네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혜사가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이며 힘이며 사람의 능력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말씀이시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예수님은 보혜사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의 '다른'이란 상이(defferent)하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또 하나(another, one more)의 뜻으로 동일하고 동질적인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던 똑같은 일을 하신 분, 즉 주님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신 분, 즉 주님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하며 행동하는 같은 분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보혜사 성령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 스스로 보혜사 성령이라고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바로 몬타누스(Montaneus)이다. 몬타누스는 이교도 제사장으로 주후 155년경에 세례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본다. 그는 세례를 받은 후 자신이 성령을 받았다고 떠들었으며 그는 성령에 따라 예언한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그와 함께 두 명의 여인 프리스킬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가 가세하여 또한 예언했다. 그들은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새로운 계시를 따라 새로운 세대(dispensation)가 시작한다고 떠들면서 계시의 시대가 자신들에게서 끝나고 곧바로 이 세상의 끝이 온다고 보았다. 그들은 새예루살렘이 프리지아(Phrygia)의 페푸자(Pepuza)에 건설됨을 주장하여 많은 몬타누스주의자들이 그곳에 모여 최후의 날을 증언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다. 몬타누스는 그 자신을 가리켜 성령의 기관, 더 나아가 보혜사 성령이라 하였다. 특히 이 같은 경향은 후기 몬타누스주의자들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 한 것은 초대교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같은 주장은 근래에 우리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박태선 씨로 그는 1955년 12월 25일 '한국 예수교 전도관 부흥협회' 일명 전도관, 1980년 1월1일부터는 천부교로 이름을 바꾼 이단 종파를 창설한 자로 그는 스스로를 '감람나무' 또는 예수님이 보낸 보혜사 성령이라 칭하였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 본 대로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 자신으로 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보혜사 성령이라 한 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이라 칭하는 자이므로 이들은 더 말할 필요 없이 이단이다.

자아 도취의 이단

인간의 심령술과 사탄의 초자연적 역사를 성령의 역사하시는 능력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이단이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시대가 혼란할수록 영들을 바르게 분별하는 영적 안목과 지혜가 필요하다. 특별히 오늘같이 혼란한 시대에는 이 같은 영적 분별력은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 시대에 신초월주의(noetranscendentalism), 뉴에이지 운동, 적극적 사고, 정신측정(phychometry), 영매(mediumism), 마술, 최면, 강신술(spiritualism)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령치유(phychichealing)가 성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방법은 성령이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신18:9-13), 이 같은 심령치유 방법을 마치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 악용하여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성령을 이용한 이단들이다. 우리는 심령(정신)의 치유, 즉 사고의 능력만으로도 가능한 치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을 성령의 치유하심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심령술을 통한 치유란 여전히 인간의 정신 영역에 속한 것이지만 성령의 치유하심은 위에서 오는 것으로 심리적 영역을 넘어서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심령술을 통한 치유와 함께 초자연적 치유(supernatural healing)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초자연적 기적이 사탄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며(신13:1-2), 적그리스도도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또 그것을 통하여 미혹하여 우상을 섬기게 한다(계13:13-14).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막13:22)고 하였다. 따라서 모든 초자연적 기적, 초자연적 치유가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우리는 말 할 수도 없고 이를 동일시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사적 성령론에 나타난 이단 사상을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다.

이 같은 이단 사상은 고대로부터 현대라는 긴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이동하여 왔지만 이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계속 일어나는 반복적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단 사상을 접할 때 이것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 단정하여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가 되풀이되듯이 이단과 같은 사상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반복해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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