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올립니다. 이 원고는 이광은 목사(우리주님의교회)가 다락방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촉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기포스(www.kportalnews.co.kr)는 총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지금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다락방에 참여해왔던 신실한 분들은 이런 궁금증이 있으실 겁니다. 지금 다락방 내의 메시지나 나타나는 현상들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뭔가 이상하다. 열심히 전도는 하고 있지만 불신자든 기존신자든 새가족이 다락방 교회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본부에서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몇 개의 중대형 교회 외에 현장 일선의 다락방 개교회들은 점점 더 약해진다.
다락방 십 수년 따라다녔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할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결국 다락방은 구조적으로 류목사를 의지해야만 하는 전도이다. 성경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가르침이 없고 세계복음화라는 거룩한 사명에 대한 독려와 책망만 있다. 특히 성화에 대한 내용은 거의 전무하고 일부지만 다락방 목회자와 성도의 삶 또한 문제가 있다.
교회에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는 따듯한 교제는 없고... 이상하게 차가운 곳이 되어 버렸다. 성도들이 성경은 읽지 않고, 교회에서 성경의 기본진리들이 전혀 가르쳐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
그런데 내게 일어나고 있는 전도의 열매는 무엇인가? 전도현장에서 실제로 영접이 되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전에 한명도 영접시키지 못하던 내가 다락방을 통해서 불신자를 영접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접이 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다락방은 올바르게 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다락방 내의 신실한 분들을 위해서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영접인가를 설명해보겠습니다.
1. 다락방 복음
(1) 인간의 근본문제 - “하나님 떠남, 죄를 지음, 사탄에게 잡힘”
(2) 지금 인간의 모습 - 불신자의 여섯가지 상태
① 마귀의 자녀(요 8:44) - 하나님 떠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며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② 우상숭배(엡 2:2) - 그 결과 미신 우상에 빠져 점 굿 운명 사주팔자에 빠져 산다
③ 정신적 고통(엡 2:3) - 불안, 허무, 정신병, 노이로제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자꾸만 망해간다.
④ 육신의 고통(행8:4-8) - 불치병 난치병 고질병에 시달리는 육체의 질병까지 온다.
⑤ 죽음과 지옥심판(눅16:19-31) - 사는 동안 영혼 정신 육체까지 고생하고 죽어 지옥에 간다.
⑥ 영적인 유산(출20:4-5) - 결국 모든 문제가 또 다시 자녀에게 대물림 된다.
(3)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 - 예수 그리스도(삼중직)
① 참선지자(요14:6) -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회복)
② 참제사장(롬8:2) -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고(해결)
③ 참왕(요일3:8) -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다.(해방)
(4) 이 예수를 영접하면 - 신자의 일곱가지 축복
① 하나님의 자녀(요1:12, 롬8:14) - 영접하는 순간 신분의 변화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② 성령으로 동행(요14:16-17) - 하나님은 신자를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또한 충만하게 역사하신다.
③ 기도 응답의 비밀(요16:24) - 성도는 기도할 수 있는 자격, 그리고 응답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④ 흑암 세력 꺾음(마12:28-29) - 하나님 자녀에게 사단을 꺽을 권세를 주셨다
⑤ 하늘군대 파송(계8:3-5) -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가는 곳에 주의 천사들을 파송하신다.
⑥ 하늘 시민권(빌3:20) - 하나님이 구원얻은 백성에게 주신 축복은 영원한 신분을 주신 것이다.
⑦ 세계 복음화의 축복(마28:18-20) - 세계복음화 현장에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다.
(5) 구원받은 신자가 확신해야 할 것 - 다섯가지 확신
① 구원의 확신(요일5:11-13) -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② 기도응답의 확신(요16:24)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③ 승리의 확신(고전10:13) -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④ 사죄의 확신(요일1:9)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⑤ 인도의 확신(잠3:5-6)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다락방 분들은 이 내용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신학적으로 지적해보라고 할 것이다. 어느 누가 보아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어떻게 이단이 되냐는 것이다. 맞다. 분명히 그렇다.
여러분도 이런 다락방 영접메시지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한번 자세히 찾아보시길 바란다. 일반인 평신도들은 절대로 찾을 수 없고, 전문가인 목사님들도 거의 지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자체로는 그리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비판하는 분들은 지엽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정도일 것이고 그 부분도 이것이 신학 논문에 나온 글이 아니라 불신자 전도 현장에 사용되는 것이라고 할 때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하나님 떠난 인간의 모습을 불신자 여섯가지 상태라고 설명한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참 독창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신학교에서만 배웠던 칼빈의 그리스도 삼중직으로 설명하고(딱딱한 교리로만 배웠던 내용을 전도현장에서 평신도들이 말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영접 이후 신자의 일곱가지 축복을 설명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적절하고 단 신자의 일곱가지 축복에는 구원받은 자신에 관한 내용만 있지 구원받은 우리들 곧 교회에 관한 축복은 없다. 이것은 다락방을 오래하면 할수록 더욱 개인주의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은 부족하게 설명한 것이지 틀리게 설명한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자의 확신은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다섯 확신 그대로이고... 이 내용 자체로만 보아서는 절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직접 다락방에 참여해 본 사람은 여기에 중대한 두가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내용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설명하는 자의 강조점(무게중심)에 관한 문제이다. 이 내용은 누가 어디를 강조하며 설명하느냐에 따라 십자가 복음과 다락방 복음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금까지 언급해온 교리적인 부분이다.
다락방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세가지로 말하나 결국 사탄에게 잡힌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반교회 영접메시지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죄에 대한 강조를 하지만 다락방은 사탄에 대한 부분을 중요시한다. 죄를 지었다. 하나님 떠났다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지금 사탄에게 잡혀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자 예수님은 십자가 죄사함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를 꺽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이다. 이것이 다락방 복음의 핵심이다.
둘째, 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부분이다.
다락방의 영접은 불신자의 상태와 신자의 축복을 대조 설명하고 예수를 영접시킨다. 불신자 전도할 때, 전도대상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됨을 인정하게 하고 자신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말하기보다, 죄의 심각성과 죄의 세력, 죄의 결과인 사망의 상태, 죄와 사탄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보다
지금 당하고 있는 불신자의 상태와 예수 영접 후 얻게 되는 신자의 축복을 비교 설명함으로 불신자들이 영접행위를 하기 쉽게 한다.
따라서 다락방 전도의 영접은 일반교회의 전도보다 훨씬 영접자의 수가 많다. 이것을 보고 류목사가 다락방에는 전도 역사가 일어난다고 자랑하고, 다락방 일반 성도들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영접한 이후 사람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변화의 면들을 엄밀히 분석해보고 확인해 보아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을 거부한 죄인임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에 대한 고백없이 하는 영접.... 영접 이후 죄를 멀리하는 의지적 결단과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는 영접... 하나님 앞에 죄인됨은 전혀 모르고, 지금 자기가 고통당하고 있는 문제해결을 위해 현실적 필요에 의해 하는 영접... 이런 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영접인가?
영접은 했는데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영접을 했는가? 아니면 불신자 저주에서 신자 축복을 얻기 위한 목적의 영접행위를 한 것인가? 죄사함의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사탄 꺾는 다락방 복음의 그리스도를 영접한 당연한 결과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의 실제 다락방의 전도현장에서 일어나는 영접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영접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2. 십자가 복음
(1) 성경 - 구원의 길(행16:17)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누구신가?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대한 경외감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온 우주와 나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 때 인간은 참된 지식을 갖게 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시111:10)
둘째, 나는 누구인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의 모습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의 본성에 묶여 지금도 내 뜻대로 살며 계속 실패하고 있는 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고 싶으나 절대로 거룩해질 수 없고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있는 나... 그 결과 사탄의 참소와 내 양심의 정죄로 인해 죄의식과 죄책감에 눌려 살고 있는 나... 사는 동안 사망의 고통 고난과, 육체의 죽음 이후의 완전한 죽음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나... 구원의 소망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나... 이러한 죄인된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 인간을 처절한 절망가운데 빠지게 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아담의 법적인 죄책과 지금 내속의 부패한 죄의 본성을 해결하기 위해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분... 십자가 대속으로 죄를 씻음으로 더 이상 사단의 참소와 공격을 이길 수 있게 하신 분.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서 하나님의 대권을 가지고 지금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나를 위한 죽음으로 믿고 영접한 자들의 주가 되셔서 그들을 보호 인도하시며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
넷째, 성령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룬 완전한 구원을 지금 내안에서 실제로 이루어 가시는 분. 내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이 요구하는 더러운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사함으로 거룩케하셔서 죄의식뿐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분.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사단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도록 법적 실제적 의로움을 가져다 주시는 분. 또 귀신 사탄과의 직접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내안에 영원토록 내주하시는 나의 든든한 보호자. 비록 우리가 아직 죄의 세력이 지배하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미 얻은 구원의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인쳐 주신 분.
다섯째, 구원받은 성도들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새로워진 거룩한 무리들의 공동체... 교회... 자기의 죄인 됨을 시인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한 자들의 공동체... 죄인을 거룩케 하는 십자가 복음으로 죄악으로 더러워진 세상을 치유하는 흰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들... 전도현장에서 귀신과 사단의 실제적인 공격과 싸워 이기는 복음의 영적 능력을 가진 거룩한 백성들...
여섯째,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들은 세상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가진 자들이 죄로 더러워진 온 세상을 주의 거룩함으로 정복해 나가고
영광의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의 세력이 끝나고 사단이 무저갱에 갇히게 될 날
더 이상 눈물이 없고 고통도 유혹도 죄의 저주도 사망도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통치하시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예수 피로 거룩해진 영적 아브라함 자손, 새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는 반드시 죄와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사단과 싸워 승리할 것이다. 그래서 주의 재림 전까지 이 땅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는 창조질서가 점차 회복되어 갈 것인데 하나님이 창조(Form)하신 세상이 인간의 범죄로 타락(Deform)하였는데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해 진 성도가 회복(Reform)해 나간다. 이것이 성도가 갖는 세계관이다.
(2) 영접 - 이 사실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받아들이는 것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을 듣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게 되고 또 하나님 떠난 자신의 처절한 모습을 알게 된다. 자신의 비참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친히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게 된다. 구원은 예수 십자가가 나를 위한 대속적 죽으심이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성립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이 이루어지고, 정결하게 되고, 의로움 얻게 되고, 거룩해지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예수를 믿는 것을 영접이라고 한다.
참고로 영접은 다락방과 한국교회에서 전도시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특히 다락방은 더욱 영접을 강조하며 특히 영접기도의 유무를 구원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다락방의 영접은 믿는 것보다는, 迎接(=모셔들임)을 더나아가 靈接(=성령과 접촉)하는 개념으로 강조된다. 이는 다락방의 영접이 불신자 속에 있는 사탄의 영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영을 모셔드리는 쪽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락방 일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영접에 대한 실제적인 개념이다.
나는 불신자에게 영접기도를 따라하게 하는 것을 거부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다락방식 영접기도를 구원여부의 판단기준으로 삼아 한국교회를 비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몇 마디 언급하겠다.
영접은 요1:12절에 근거한 용어이다.
성경 전체에서, 구원의 첫 단계로 기술된 다락방식 영접기도, 영접행위가 기록된 것을 찾아보시라... 전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영접은 영접기도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손님을 모셔드리는 것이다.(모든 성경구절을 찾아보시라). 구원에 이르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접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요한복음은 영접이 아닌 믿음이란 단어를 98회나 사용한다. 성경에 영접기도라는 별도의 단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도들이 그렇게 전했는가... 전혀 아니다. 사도들은 구원의 첫단계로 영접기도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믿는 것이다. (래리모이어 구원과 전도에 관한 21가지 오해 P43)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구절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그림언어로 잘 설명하는 것이지 영접을 별도의 것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계3:20 "볼지어나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이 구절은 불신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글이다. 성도에게 주님과 교제하기를 힘쓰라는 것이지 불신자에게 영접기도하라는 내용은 아니다.
어려서 정상적인 믿음의 가정에 태어난 아이는 영접의 특별한 체험이 없어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 언제 예수를 영접했는지 기억이 없지만 어려서부터 배운 믿음의 말씀들이 그 속에 들어가 지금 믿고있고 구원받은 것이다. 이것이 개혁신학의 장로교회가 유아세례를 주는 이유이다. 이런 믿음의 아이에게 구원의 확신을 위해 진지하게 영접기도 시키는 것은 장려하고 전적으로 인정하지만 어려서 믿고 교회생활 잘하는 아이에게 다락방식 영접기도 안했다고 구원 못 받았다고 단정하고 정죄하는 것은 전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이 말은 전도현장에서 영접기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소수의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다락방 분들이 영접을 강조하되 그 정도가 지나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기준으로 한국교회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 자중하기 원해서 언급해본 것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을 듣고 그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믿을 때, 영접할 때... 우리의 구원은 발생하는데 이때 영접은 몇가지 다른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믿음(요1:12) - 예수 십자가 대속을 나를 위한 사건임을 인정하는 것
이천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역사적 사건을 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건임을 알고 인정하는 것. 요1:12절에서 영접의 다른 이름은 믿음이라고 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인가? 아무거나 믿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고, 강하게 믿는 것도 아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접이다. 사탄만 꺽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대속을 믿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주로 시인함(롬10:9-10) - 나의 주인 됨을 거부하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함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창조주 되심과 나의 피조물 됨을 거부하는데 있었다. 내 속에 실제하고 있는 아담의 범죄한 속성이었던 자기 주인됨을 회개하고 나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그분의 십자가 사역이 나를 위한 대속제물이셨음 그대로 인정하며 나의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의 주되심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접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의 주되심을 말함으로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화형당해 죽임을 당했다.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전 영역에서 예수의 주되심이 나타나는 것이다.
셋째, 회개(행2:38) - 예수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것
회개는 구원 얻기 위해 행해야 하는 어떤 통과의례 절차가 아니다. 회개는 성경이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나를 알 때 내게 일어나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나님의 왕 되심 앞에, 또 나를 위해 대속제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무릎 꿇는 것이다. 이 복음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죄인됨이 인정되고 거기에 대한 철저한 고백이 나온다. 의도적으로 구원받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내는 회개가 아니라 자발적인 죄 용서를 구하는 회개가 내 속에서부터 고백된다. 나의 부패함에 대한 처절한 통회와 본성적 악함에 대한 탄식이 나오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회개하면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으면 회개의 열매가 반드시 나온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 성도들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구원 이후에도 짓는 죄도 당연히 회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접이다.
“회개해야 한다”가 아니라 저절로 “ 회개하게 된다”.
이것은 주의 성령을 모신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범죄했을 때 회개하도록 계속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넷째, 거룩함이 나타남(고전1:2) -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고 새사람 된 모습
성령충만은 확신으로도 나타나지만, 그 확신은 필연적으로 교만이 아닌 겸손을 동반하며 그의 삶에는 거룩함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정결케 하고, 거룩을 사모하는 새사람 되게 만든다. 이전에는 본능적으로 죄를 좋아하고 즐기며 따라갔지만, 의와 거룩의 영이신 성령이 내안에 들어오신 후 부터 의를 좋아하고 거룩을 기뻐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거룩함에서 오는 참된 자유, 죄로부터 해방됨에서 오는 기쁨...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복된 소식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접이다.
십자가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필연적으로 위의 네가지 열매가 맺어진다. 물론 네가지 열매가 100% 완벽하게 맺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절대로 완전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열매가 맺어지는 쪽으로 결과가 나온다. 만약 그렇지 않은 영접이라면... 자기가 아무리 확신한다 하여도 다시 처음부터 점검해보아야 한다.
(3) 평양대부흥에 관한 동영상을 보며 십자가 복음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확인해보자.
영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강해설교가 마틴 로이드존스는 하나님이 시대마다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실 때는 몇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했다.(마틴 로이드존스 부흥 P71...).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확신, 하나님에 대한 열망, 자기 죄에 대한 깊은 통회, 그리스도 보혈에 대한 엄청난 강조, 오직 믿음으로, 중생에 대한 확신, 거룩함에 대한 열망... 이것은 역사에 나타난 모든 시대와 지역의 부흥 때마다 동일하다. 여기서 부흥은 교회성장이 아니라 Revival 곧 하나님의 초대교회처럼 강권적인 임재하신 것을 의미한다
오늘 날 한국교회 성장의 태동이었던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이러한 패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 보혈에 대한 감격, 거룩함에 대한 열망... 십자가 복음은 죄에 물든 개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새사람으로 만들어 죄와 저주로 물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의와 거룩으로 변화시켜 나가다가, 이를 거부하는 영적세력을 만나면 직접 사단을 쫓아내기도 하며 승리해 나가다가 주의 재림 때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케하는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다음번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해 보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