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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언저리 떠도는 신화사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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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언저리 떠도는 신화사상들
  • 정윤석
  • 승인 2009.03.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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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 · 위트니스 리 · 이현래 씨 등 설교 · 서적서 등장




‘사람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신화사상의 편린들은 기독교계 언저리에서 적지 않게 발견된다. 기자는 대구교회(이현래 목사) 사이트를 갔다가 이상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끊임없는 축복을 부으시는, 아니 마구마구 부으시는 형에게 감사드립니다. ···천국의 문을 열고 나를 불러들이시는 당신이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승리로 나의 승리를 보장하시는 형.” 모 신도를 향해 또다른 신도가 “당신이 나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어주는 은혜를 받은 것과 동일한 표현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현래 목사의 설교를 듣다보면 이 교회안에서 서로를 향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일이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둥을 봤다. 하나님의 기둥을 봤다. 하나님의 표징으로 봤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보편화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교회에서 간증을 한다든지, 고백을 한다든지 할 때 우리가 아무개 그리스도라고 표현을 합니다. 가르친 것도 아닌데(신도들 웃음) 그런 말을 해요. 어떤 형제를 그리스도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러면 밖에서 모르는 사람들은 ‘야, 저 사람들 저희들끼리 그리스도라고 한다, 자칭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한단 말예요. 모르니까 할 수 없죠.

왜 이 말을 하냐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본 독생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독생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들어와서 보편화된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신도들 아멘)”(이현래 목사, 2004년 5월 29일 뉴욕집회, 최종완성04-살아 있는 인격체).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보편화되면 사람을 그리스도로 불러도 된다는 건가? 여하간 이유를 막론하고 대구교회 신도들이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신화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대구교회 사이트에서 신도를 상대로 그리스도라고 호칭한 글(대구교회 사이트 캡쳐화면)

이러한 신화사상은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최근 ‘사람이 하나님·그리스도가 된다’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오성삼 목사(한우리교회)의 ‘신화(神化) 사상’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서 책 한권이 생각났다. 헨리 나우웬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2000년, 초판 17쇄, IVP)이라는 책이다. 신화사상을 언급하는데 웬 헨리 나우웬? 그에게 많은 감동을 받은 독자들은 상당히 의아할 것이다. 무분별한 비판을 하는 것 아니냐며 거부감을 갖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다음 주장을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사실상 영적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최대한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애 쓰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다른 사람들로 예수님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치 못하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으로 감명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못하다. 오히려 영적 생활은 우리들에게 훨씬 더 철저하게 근본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즉, 그것은 역사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 여기에서(here and now) 살아 있는 그리스도들(Living Christs)이 되는 것이다”(위의 책, 8p).

▲ '신화사상'이 언급되고 있는 헨리나우웬의 서적
헨리나우웬은 영적 생활의 본질은 사람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다음 내용을 보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모든 시공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들이 되어진다. 우리는 또한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알았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분이 행하셨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위의 책, 21p).

“십자가의 길, 즉 하나님의 하향성은 우리가 예수를 닮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아 있는 그리스도들로 변화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영적 생활은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생활이다”(위의 책, 20~21p).

그의 이러한 주장은 계속해서 언급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여금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과 뜻 전체를 지배하도록하여 우리로 또다른 그리스도들이 되도록 기꺼이 허용하고 결심하는 것을 포함한다”(위의 책, 38p).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성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 있는 그리스도들로 만들어진다. 이 형성은 지식과 교훈, 건덕, 감화를 훨씬 초월한 것이다”(위의 책, 42p).

한국교회의 유명 목회자들이 탁월한 영성가라고 칭찬하는 헨리 나우웬의 위의 발언이 ‘신화사상’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코 건전한 주장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돼야 한다고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신화사상’은 예장 통합측이 1992년 이단으로 규정한 위트니스 리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적시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다.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리스도가 될 때까지 우리를 적셔 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됨으로써 그리스도가 된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인 이유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표현인 단체적인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주의 회복이다. 주님은 긴 치마를 입고 긴 소매의 옷을 입는 것을 회복할 의도가 없으시다. ···주님의 의도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놀랍지 않은가! 교회 생활은 무엇인가? 교회 생활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가 됨’이다. 주의 회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믿는 이마다 그리스도가 됨으로써 그들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주의 회복에 관하여, 70~71쪽)”(<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주의 회복의 유일함(2)’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2004년, 143페이지).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생명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우리 안에서 그분의 생명의 영에 의해 거룩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계속 수행하신다.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은 변화를 통해 하나님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같은 형상을 이루기까지 일생동안 진행되는 변화이다. 결국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몸의 구속이다. 이것은 우리 온 존재를 위한 구속의 마지막 단계로서 우리를 영광안으로 이끈다. 우리는 거듭남, 거룩하게 됨, 새롭게 됨, 변화됨, 같은 형상이 됨, 영화롭게 됨을 통해 하나님이 된다.

···이 과정의 결과로 하나님의 유기체가 산출된다. 이 유기체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과 결합시키고 연합시키시어 하나님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신 것이다“(<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 ‘모든 것을 이어받은 시대의 이상’, 워치만니&위트니스리, 2005년, 16~17페이지).

사람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위험한 사상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다. 영원토록 영광받으실 성부·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런데도 만일 어떤 유명 인사가 서적이나 설교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가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조물주와 피조물, 신과 사람을 혼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극도로 악한 주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곧잘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으로 쉽게 물들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느 교회나 단체에서 목사나 지도자, 교주가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주장하거나, 자신을 성경에서 예언된 자, 약속된 자로 부각시킨다면 그가 누구이든 이단이며 사이비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직접 자신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그리스도가 된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이단사상을 가르친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보통 신화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구절 중 하나가 갈라디아서 2:20 말씀이다. 이 말씀은 누구나 암송하고 애용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구절을 악용해 자신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삶인 것처럼 말하고 더 나아가 사람이 그리스도가 된다고도 주장한다.

그런데 이 구절의 참뜻은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거나, 나의 자아는 없어지고 그리스도만이 내 안에 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갈 2:20의 말씀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는 죽음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삶을 언급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 곧,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그 사건에 나의 죽음이 포함된 것을 의미한다. 내가 받을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대신 받으셨다”(박윤선 주석).

즉 내가 죽었다는 것은 자아의 죽음이나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내 죽음이 포함됐다는 의미가 강하다. 결국 이런 죽음으로 죄의 저주에서 해방됐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의와 사랑의 종이 되었으며(롬 6:19), 비록 제한된 육체 가운데 살지만 더 이상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으며, 성령을 좇는 삶을 살게 되었다(롬 8:4).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 안에서'사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애썼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께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요 15:7)라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은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라고 말한다. 이는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에는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를 따른다는 의미이다”(후크마 주석).

즉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있는 실제적 삶은 갈 2:20 하반절에 있는 말씀처럼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삶은 내가 그리스도가 되거나 그리스도가 내 삶을 대신한다거나 내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바울이 언급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이다.

한국교회는 인간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신화사상에 대해 허용하거나 수용하지 않는다. 예장통합 총회는 신화사상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교회의 여러 이단집단들이 동양의 도교와 같은 재래종교의 영향으로 인간이 신성(神聖)에 참여하는 길을 가르치고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교리를 퍼트리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신화사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번 이 문제가 성경적인지 되짚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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