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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이 농인답게 살아가는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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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이 농인답게 살아가는 대안학교
  • 정연희 기자
  • 승인 2019.04.22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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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김주희 대표를 만나다
▲ 농인들의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김주희 대표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 김주희 대표)’ 대안학교는 대부분이 농인으로 구성된, 농인들이 농인답게 살게 하고자 세워진 학교다. 농인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농인답게 살기 위해선 대안적인 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작은 공부방으로 시작했다. ‘저기에 가면 자유롭게 수어할 수 있대!’ 사회와 특수학교에 수어가 없어서 답답했던 농인 아이들이 '손 소문'만으로 소보사 공부방에 찾아왔다. 13년 전 소보사 공부방을 연 김주희 대표는 농인 아이들에게 수어를 가르치고 농인 아이들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해주었다. 재수반을 열어 보충공부도 시켜주었다. 농인 아이들은 그곳에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인으로써 자신의 언어인 수어를 회복하고 농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인 아이들에겐 더 안전하고, 보장된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족함을 느끼고 10년 뒤 소보사 대안학교를 세우게 됐다.

▲ 개정 수화법에 따라 이제 '수어''라 표현한다

기자는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소보사 대안학교에서 김주희 대표를 만났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을 지나 산비탈의 끝에서야 만날 수 있는 소보사는 자연에 둘러싸인 학교다. 이 곳엔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큼은 스마트폰과 멀어지고 생명과 자연을 느낄 수 있길 바라는 김주희 대표의 소망이 담겨있다.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곳이지만, 고양이와 강아지가 친구가 되어주고 농인 아이들은 이곳에서 청인(=농인을 제외한 들을 수 있는 사람 모두)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소보사의 교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좁은 교실 안엔 커다란 이동식 마카보드가 있고, 그 앞에 책상들이 옹기종기 마주보고 있다. 보통 선생님을 바라보며 책상이 일렬로 정렬되는 일반 학교의 교실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도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 한 명 없다. 소보사 학교는 수업 내내 수어와 표정으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마주보고 수어하며 짓는 표정은 더 생생하다. 왠지 수어를 몰라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알고 보니 음성언어가 감정에 따라 어조나 크기가 변하는 것처럼, 농인들의 수어 문법 또한 손 모양 뿐 아닌 얼굴의 표정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소보사 교실에선 작은 일상 하나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 날엔 자꾸만 이웃집 아저씨의 밭에 똥을 싸고 파묻는 고양이 때문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와 이웃집 아저씨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가 그 주제였다. 작은 것 하나 농인 아이들과 함께 의논하는 모습을 보며, 소보사는 진정 농인들이 이끌어가는 학교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의 농인 아이들은 농인 자체로서 청인들과 비교당하지 않고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연습중이다.

소보사 대안학교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인터뷰에 담겼다. 김주희 대표와의 인터뷰는 일문일답으로 이루어졌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소보사대안학교

- 대표님 자신과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하 소보사) 대안학교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주희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어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수어한지 올해로 23년이 됐어요. 제 나이 마흔인데, 계산해 보니 말했던 시간보다 수어한 시간이 더 길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수어로 일찍 농인들을 만났고, 빨리 꿈을 찾았어요. 덕분에 일찌감치 소보사에 대한 비전을 갖게 돼서, 소보사를 2006년도에 설립했고 10년 동안 공부방으로 운영하다가, 2017년도에 소보사 대안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해서 학교로는 올해 3년 차에요.

소보사는 농 정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에요. 그래서 농인 학생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일들을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학교를 세우게 된 거예요. 소보사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아니라 농인 아이들이 농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해서 행복한 자기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에요. 그런데 그 과정에 교육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소보사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됐어요.

- 인터뷰에 앞서 “농인”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용어에 정리가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보편적으로 같은 용어라 여겨졌던 ‘농인과 청각장애인’, ‘청인과 비장애인’, ‘농인과 농아인’, 이 사실은 서로 다른 말이라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이 같이 청인과 농인이 서로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논쟁들이 농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데요.
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르면 수화라는 말도 수어로 바뀌고, 농아인과 청각장애라는 모든 단어들을 농인이라는 단어로 지칭하기 시작했어요.(<한국수화언어법> 제1장 3조) 그리고 요즘에 와서 이 용어들이 더 예민한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농인 사회 안에서 이것들에 대해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아마 제가 말하는 것이 누군가는 동의하지 못 하는 얘기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소보사의 입장은 이런 단어들이 보존되어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왜냐면 이것들은 소보사가 정한 단어의 정의가 아닌 농 사회의 역사 안에서 많은 농인 선배들이 애를 쓰고 투쟁해서 쟁취한 단어이기 때문이에요.

▲ 수어로 수업 중인 교실 모습

농인과 청각 장애인
청각장애는 병리적인 관점이 많이 드러나는 용어에요. 그런데 청각장애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청각장애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청각에 장애가 있는 것이고 모든 농인들은 청각에 장애가 있어요. 근데 사람들이 쓸 때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서 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된 거예요.

반면에 농인은 농 정체성을 들어내고자 하는 단어에요. 농인은 자신의 농 정체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회문화적인 존재로 봐요. ‘우린 장애인이 아니라 일종의 소수민족이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한국인, 영어를 쓰는 사람은 미국인, 일본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인인 것처럼 우리는 수어라는 언어를 쓰는 농인이야.’라고 주장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선택이에요. 자신이 어떻게 불리길 원하는지를 존중해야 해요. 청인들이 농 당사자들에게 “아니에요. 당신 농인이에요.”라고 나눌 수 없어요. 그건 철저히 농 사회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에요. 청각장애가 있다고 다 농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농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농인으로서 인정하고 자신의 사회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언어로 수어를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청인과 비장애인

옛날에는 단순히 장애인과 일반인으로 구분했잖아요. 그런데 농인의 입장에선 장애인 중에도 농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거든요. 농인에겐 맹인도 다른 장애인들도 다 청인이에요. 그러니 농인들은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귀로 듣느냐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뉘어요. 그러니 우리가 소리를 눈으로 보는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부른다면 소리를 귀로 듣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으니 모두 청인이라고 지칭하는 거죠.

농인과 농아인

농인들 사이에서도 농인과 농아인이라고 하는 두 단어에 대해 시대적으로 “농”과 “인” 사이의 “아”가 굳이 불필요한 한자이기 때문에 빠졌다라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가 아이들의 ‘아’(=어리다, 어리석다)를 뜻하는 것 같아서 빼자는 분들도 계세요. 근데 한국은 한자를 쓰는 나라가 아니잖아요? 일본이나 중국은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담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농’이라는 것은 그냥 들리지 않는 상태를 말해요. 농인들이 “나는 농인이에요.”라고 말할 때 그것이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에요’라는 의미로 생각되지 않는다는 거죠.

단어 자체만 두고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말 뿐 아니라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다 생각해요. 농인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농인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고 청각장애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농인들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 대표님은 청인이지만, 농인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신데요. 처음 농인교육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시작은 그야말로 단순했어요. 원래 장애인이나 소수자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어요. 근데 고1때 처음 수어를 배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딱 1학년만 수어를 배울 수 있는 특별활동 반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수어를 배우면서 우연히 똑같은 나이의 농아인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거에요. 그때 받았던 충격이 상당했어요. 당시 내가 그렇게 가기 싫었던 대학을 가고 싶어도 못가는 친구들이 바로 농인 친구들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 친구들 안에서도 부류가 나뉘는 것을 보았어요. 부유하고 청능 훈련을 받았음에도 청인인 나를 부러워하고 수어를 부끄러워하는 친구들과 조금 가난해도 자신이 농인인 것과 수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친구들. 많은 공부와 만남 끝에 그 차이는 정체성에서부터 온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사실 정체성은 농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어떤 이해와 확신이 있는데요. 내가 나를 농인으로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질적인 삶을 선택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농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저 또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빨리 정체성을 습득하고 확립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청인들에게도 쉽지 않은데, 농인들과 그 어려운 얘길 하려니 제가 수어를 잘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수어를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중•고등학생들을 모아 교제를 해보려고 만났어요.

근데 인공와우 수술이 생긴 거예요. 인공와우 수술이라고 하는 건 귓속에 달팽이관을 제거하고 인공 달팽이관을 넣어주는 건데요. 인공와우 수술이 생기면서 학교나 가정에서 더 많이 수어를 쓰지 않게 됐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난 이제 청인이 될 거다’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수어를 배우지 않는 양상이 더 늘어난 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잘 들리지 않고 말도 잘하게 되지 않으니, 말도 못하고 수어도 못하는 아이들이 엄청 늘어난 거예요. 그러니 아이들한테 “너는 누구니?” 라고 묻거나 “우리가 농인으로써 누구일까?”라는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농 정체성 때문에 소보사를 시작했다가, 급하게 공부방을 만들어 아이들한테 공부를 가르치게 됐어요. 아직 아이들이 사고에 대한 기본기나 언어력이 없으니 무언가 사고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없었거든요.

그러자 이번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문제가 되었어요. 아이들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선생님들의 입모양만 바라보면서 멍 하니 있다 오는 거예요. 그것도 일반학교도 아닌 특수학교에서 말이에요. 청각장애인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마저도 선생님들이 말을 100%한다 했을 때, 그 중 20%만 수어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내내 멍 때리거나 자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소보사로 우르르 와서 세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수어로 얘기하고 고민하고 울고 웃는 거예요.

아이들이 구화로 선생님들이나 부모님과 대화할 때는 자신이 수준 낮고 ‘내가 아직 멀었구나’라고 느꼈어요. 왜냐면 자꾸 엄마가 “다시 말해봐.” “정확히 발음해”라고 말하고 선생님들도 “내 입모양 다시 잘 봐.” 이런 말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소보사에 와서 수어로 공부를 하니 다 알아듣겠는 거죠. 아이들이 이 공간에 있을 때 자신은 정상인데 이 공간을 나가면 정상이 아닌 장애인으로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보사에 있는 스텝들도 ‘이 아이들이 멍하니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언제까지 이걸 기다려야 하는가.’ 고민하다 학교를 세우게 되었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사실 몇 선생님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특수교육과의 4년 커리큘럼 안에 수어로 학습해야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없어요. 있어도 4년 동안 딱 하나. 그러니 이것저것 모든 장애를 배우는 중에 청각장애가 하나고 그마저도 대부분 청력을 강화시키는데 집중이 되어있는 거죠. 그렇게 임용패스해서 특수학교에 무작위로 배치된 선생님들은 농인이나 수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학교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수어도 못하시고 아이들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도 모르시는 거죠.

▲ 소보사의 모둠수업 모습

- 그러면 소보사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잖아요? 근데 대부분의 대학에선 아직도 수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시스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보사 친구들은 어떻게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거죠?
현대 특수학교도 그렇고 대부분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대학교를 선택하는 폭이 정해져 있어요. 주로 농인을 위한 학과가 따로 있고, 농인 교수님이나 전공자 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죠. 그런데 교수님들이 농인들을 너무 봐주시다보니 농인 아이들의 역량이 안늘고, 취업할 때도 청인들과 차이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아이들을 공부시켰을 때는 청인들이 가는 학교를 선택하도록 권유했어요. 아이들은 농인도 없고 수어통역사도 없는 학교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죠.

그러나 수어통역사를 주는 건 나라에서 보장한 법이에요. 원래는 그게 법률로 보장이 되어있거든요. 그러니 해보자고 했어요. 처음엔 여태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기에 아이들도 학교도 굉장히 당황했어요. 그래서 수어통역사를 구하기 전까지는 제가 통역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계속해서 학교를 설득했어요. 그리고 2년 차부터 학교가 받아들이고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기 시작했어요. 농인들은 통역비를 전혀 부담 받지 않고 정부와 학교에서 부담하는 방법으로요. 그렇게 스타트를 끊어 놓으니 소보사 출신 아이들은 다 보통 청인들이 많이 가는 학교들을 가게 되는 거예요. 꼭 대학에 가야하는 건 아니지만, 다 꿈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게 된 거죠. 중요한건 내가 농인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게 하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빨리 통합이 돼서 아이들이 청인들과 섞일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해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들의 자아상이 확립되는 시기부터 “너는 장애야.” “너는 계속 노력해야 해.” 인지를 심어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봐요.

농 정체성이 중요한 건 그리고 이런 공동체가 중요한 것은 사실 아이들은 한 번도 농인이 정상인 공동체에서 자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여태까지 내가 들리지 않는 것과 내가 말을 잘 못하는 것을 늘 극복해야할 장애로 인식하며 살아왔어요. 그러면 결국 사회에 나가 받는 피해나 편견들도 당연해지는 거죠. 왜냐면 ‘내가 장애가 있고 이걸 극복하지 못했고 저 사람들의 수가 더 많으니 내가 더 노력하고 참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소보사는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준거에요. 모든 것이 수어로 가능하고 수어가 상식이고, 자신도 정상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곳. 그래서 사회에 나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내 권리와 인권을 주장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그것들을 키워주는 거예요. 나와 같은 농인 선생님, 어른들이 있는 이런 농인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건강하고 바른 정체성을 가지게 돼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사회에 분노나 원망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아 아직 사회가 준비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고 바르게 자기의 권리를 요청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돼요.

▲ 서울에 있지만 시골같은 풍경에 둘러쌓인 소보사 대안학교

- 주변 경치가 참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학교의 위치를 이곳(서울 강북구 우이동)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원래 기르던 고양이는 아니지만 함께 생활하다시피 한다는 고양이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대안학교 처음 세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자연과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였어요.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 진짜 끼고 살잖아요? 농인 아이들도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아요. 근데 이 스마트폰이 자꾸 생명과 멀어지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소보사 학교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제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냥 하염없이 걷는데 갑자기 밭이 나오고 산이 나오고 신기한 거예요. 그래서 쭉 길이 끝날 때까지 왔더니 이 집이 덜렁 있었고 이 집 앞에 ‘집 내놔요’라고 돼있었어요. 집 뒤에 약수터도 있고 가만히 있으면 새소리도 들리고 고양이들도 찾아와요. 너무 좋았어요.

이곳에서 아이들은 청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연습들을 하고 있어요. 이웃이 강아지 잃어버리면 같이 찾아주고 서로 반찬이나 농작물들을 주고받아요. 서울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죠.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또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

소보사는 매일 산책으로 수업을 시작해요. 산책하면서 그 전날 새벽까지 쩔어 있던(?) 스마트폰의 잔상을 지우고 새로운 공기와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거예요. 또 저희는 각자 나무 친구를 정해요. 자기의 나무를 하나씩 선택해서 그 나무에 리본을 묶어놔요. 그럼 그 나무가 자라 나무를 보며 아이들이 ‘생명이 있는 것이 이렇게 자라나는 구나’를 느껴요.

▲소보사에 터를 잡은 고양이

- 지금까지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농인 아이들에게 ‘농인 됨’에 대한 ‘농 정체성’을 가르치는 소보사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보사 교육현장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수업과 활동들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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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학교(반짝반짝 육아 어린이집)'와 초•중•고 아이들이 속한 '소보사 대안학교(봄•배움 공동체)'를 합쳐서 소보사 대안학교라고 불러요.

다른 특수학교에 없는 수업들을 대표적으로 소개하자면 먼저는 “수어 이야기”라고 부르는 수어 수업이 있어요. 그리고 책을 통해 독서를 배우는 “책 이야기”와 한글을 배우는 “한국어 시간”이 따로 있어요. 농인들은 자기 언어로 수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그저 생활에서 익혔을 뿐이에요. 게다가 농인들이 청인과 소통하기 위해선 한글이 필요한데, 농인들에게 한글은 외국어나 다름없어요. 수어로 된 책이 없어서 독서 시간에는 모든 책을 선생님들이 수어로 번역해서 읽어주거든요. 그래서 수어와 한국어를 따로 배우게 된 거에요.

그 다음으로 농인 문화와 농 정체성, 농 역사와 같은 것들을 확립시켜주기 위한 “농 사회 투어”라는 수업이 있어요. 말 그대로 농 사회를 투어하는 거예요. 초반에는 주로 60세 이상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을 만났어요. 그 때 당시 어르신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듣고 그 분들의 수어를 보는 거죠. 수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보존되고 변화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수어와 아이들의 수어는 완전 다르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이 역사를 알고 농인 선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요. 우리가 국사를 배우 듯이요.

마지막으로 “개별연구수업”과 “주제통합수업”이 있어요. 개별연구수업은 자신의 올해의 관심사를 정해서 그걸 1년 동안 연구하는 거예요. 거기에 선생님들이 1대1로 붙어서 아이들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요. 여기서 아이들은 대학에서의 ppt작업이나 발표하는 것들을 미리 익히게 되요. 반면에 주제통합수업은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교과들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왜냐면 국•영•수와 같은 기본 학문과 기초 지식들이 사회에 도움 되는 것이 되어야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이 아는 지식이 살아있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매 년 마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한 다각도의 접근을 해요.

-교재는 따로 만드시나요?
저흰 교재가 따로 없어요. 저희 아이들은 수어가 모국어다 보니 한글로 된 교재가 별로 의미가 없거든요. 그보다 선생님들이 직접 설명하고 나가서 만져보고 그것을 수어로, 영상으로 정리하죠. 그래서 아이들은 일기나 기록들을 모두 수어로 남겨요. 국어와 수학 같은 시중의 교재들을 사용하더라도 선생님들이 바꾸어서 사용해요. 예를 들면 영어과목들은 주로 발음을 위주로 하는데, 저희 아이들은 발음 공부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 교육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수준과 수업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데, 소보사 아이들의 반은 어떤 기준으로 구성되나요?
그래서 ‘모둠 배움’과 ‘홀로 배움’이라는 게 있어요. 모둠 배움은 나이와 상관없이 욕구와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반을 나눠요. 반면에 홀로 배움도 학년과 무관하지만 아이마다 관심사와 과목을 이해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각자 1대 1로 수업을 해요.

그런데 예를 들면 고2 아이가 있는데, 다른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터울이 많잖아요. 그리고 고2는 곧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는 주로 따로 수업을 받아요. 인턴쉽 같은 수업도 있어요. 쉽게 말해 성인 사회에 들어가서 직업훈련을 하는 건데요. 수어통역사를 부르는 방법부터 수어통역사를 두고 비장애인들과 대화하는 방법 등을 배워요.
 

▲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소보사

- 현재 소보사를 운영하면서 대표님과 선생님,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도 알고 싶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이고 실질적인 자립과 존립의 문제 외에도 농인 대안학교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도 있습니까?
모든 대안학교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지만, 소보사는 그 대안학교 안에서도 사각지대에 있어요. 재정적인 문제가 다른 대안학교들 보다 더 어려운 수준인거죠. 왜냐하면 소보사는 다른 대안학교들처럼 부모님들의 동의와 지지 속에서 세워진 학교가 아니에요. 소보사는 농아인 당사자들과 그것에 동참하는 청인들이 함께 모여 만든 학교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직 아이들이 농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세요. 그래서 다른 대안학교처럼 입학금과 후원금을 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정말 최소한으로 아이들 식비 쓰면 거의 다 날아가는 정도의 교육비만 받고 있어요. 교사들은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돈을 받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은 재정적인 문제보다도 앞서 말한 농인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더 커요. 농 사회를 향한 인식뿐 아니라 농 사회 안에서도 농 당사자들의 농 정체성에 대한 인식들이 분분하거든요. 그러니 농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요. “아니 저 학교에 가면 수어만 한데.” 이것부터가 부모님들한테는 너무 큰 벽인 거예요. 결국 돌고 돌다가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문제가 터지면 그때서야 아이를 데려오시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아이들이 되게 어렸을 때부터 자기 언어로 공부하고 자기 언어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되게 중요한 일이거든요? 근데 사회적인 인식과 편견으로 그 시기를 다 놓치고 나서야 오는 거예요.

- 그렇다면 선생님들 말고 청인이면서 농인 학교의 대표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대표님의 어려움 또한 남다를 것 같은데요.
조심스러운 이야긴데요. 제가 청인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에겐 농인학교인데, 청인이 대표라 하니 마치 제 밑에 농인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봐요. 그러나 소보사는 농인 당사자가 더 많기 때문에 제가 이름은 대표이지만 농인들이 끌어가는 학교라고 생각해요. 제가 먼저 시작했을 뿐이고, 그때 당시에는 이에 동의하는 성인 농인들이 없었거든요. 그때의 학생들이 성장해 교사가 되어 제가 했던 역할들을 하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청인과 농인의 높낮이 우열과는 상관없는 권위의 구조라기 보단 질서인거에요.

그렇지 않다고 소보사 식구들도 생각하지만 스스로 가끔 ‘내가 청인인 게 소보사의 발목을 잡는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가족 중에서도 농인이 한 명도 없거든요. 그래서 농담 삼아 “청인이랑 결혼을 했으니 결혼은 실패했고, 아이라도 농인을 나았으면 좋았을 텐데 두 아이도 청인이니. 출산도 실패했어. 김주희는 가망이 없어.” 얘기해요. 이런 얘기도 할 정도로 더욱이 농인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게 모두가 애쓰고 있어요.

- 앞으로 소보사가 계획하거나 꿈꾸고 있는 비전이나 프로젝트들이 있다면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처음부터 꿈꿔 왔던 게 농인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자기 언어로 대화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원했던 것이고, 지금 그게 이루어졌어요. 농 사회 개혁에 대한 여러 고민들 끝에 저희가 얻은 답 또한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였어요. 한마디로 ‘우리끼리 행복하게 잘 살자.’에요. 그럼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수어로 살아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네?’라고 봐주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올 해 한국 장애인 제단 지원으로 <농 청소년의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사업을 기획하게 됐어요. 저희 모습들을 그냥 편안하게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고 싶어요. 수어로 자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노출시키기로 한 거죠. 유튜브를 통해 농인과 청인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되었으면 해요. 그렇게 인식이 변화될 때 부모님들도 자기 아이가 수어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겠어요?

▲ 소보사는 농정체성과 수어를 교육철학으로 삼아 교육한다

- 어떻게 하면 소보사에 찾아올 수 있을까요? 농인교육이 필요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농인 아이들과 농인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께 안내 부탁드립니다.
소보사는 페이스북 페이지, 네이버 카페,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운영하고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이걸 통해 저희에게 직접 연락을 주시는 거예요. 그럼 저희가 언제든지 부모님과 가족들이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상담해드릴 수 있어요. 아이를 함께 만나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 지 알려줄 수도 있고, 고민 중인 부모님이 계시다면 단순 상담도 가능해요. 어떤 상황이시든 1:1 맞춤 상담이 가능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소보사는 농 정체성과 수어를 교육철학으로 삼아 교육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수어를 사용하고 농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동의하셔야 들어오실 수 있어요. 그리고 부모님들이 청인이시라면 여기서 수어도 배우셔야 하고요.

- 마지막으로 소보사의 대표이자 한국을 살아가는 또 한명의 학부모님으로써 농인이거나 청인이면서도 학부모이자 학생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인생 중에 가장 오래 있는 곳이고 아이들의 가장 기초적인 정체성과 자존감이 확립되고 사회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곳이에요. 아이들이 첫 사회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게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만큼은 그냥 자연스러운 배움의 공간으로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학원도 아니고 치료실도 아니에요. 그게 농인 아이가 됐던 청인 아이가 됐던 학교라는 공간이 단순히 어떤 지식을 배우는 곳, 혹은 농인 아이들이 언어치료를 하는 곳으로 전락되어선 안돼요.

그래서 특히 농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께 하고 싶은 말은, 부모가 생각하는 학교의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단 거예요. 학교가 그저 국•영•수 잘 배우는 곳이라면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면 돼요. 발음을 잘 배우는 곳이라면 언어치료실에 가면 되요. 그러나 우리 아이가 정말 좋은 어른으로, 행복하고 지혜로운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소보사 학교를 바라봐주시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소보사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obosa2006
소보사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sob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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