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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손오공처럼 근두운을? - 그가 구름 타고 오시리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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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손오공처럼 근두운을? - 그가 구름 타고 오시리라(3)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0.08.11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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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름은 영으로서 ‘한 육체’를 택하거나 ‘사람’을 비유한 게 아니고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구름타고 오시는 겁니다.

2-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합니다. 가심을 본 그대로이니 제자들이 하늘로 가신 어떤 모습이 어땠는지 성경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행 1:9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여기서 3가지에 주목합니다. 첫째 “그들이 보는데” 둘째, “올려져 가시니”, 셋째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올라가셔서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실 때 이렇게 가셨으니 재림하실 때 “볼지어다”, “구름”, “오시리라”(계 1:7)라는 세가지 구문이 그대로 사용되는 게 당연해집니다. 따라서 구름은 영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오심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단어입니다.

2-2. 재림하시는 그분에게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 고난받으신 증표가 있어야 합니다(요 20:2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고 승천은 부활하신 예수가 하늘로 올리신 것입니다. 다 아는 내용이지요. 여기서 주목할 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을 때의 상태는 부활하신 그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 사이에 부활과 승천 사이에 어떤 체질적 변이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실 때도 부활승천하신 그분이 그대로 다시 오신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하셨을 때의 상태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 20:27을 보겠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는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옆구리에서 우리는 뭐를 볼 수 있냐 하면, 창자국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죽은 것을 알고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옆구리를 창으로 찔렸습니다. 부활하신 그분이 그대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재림하실 때도 반드시 손과 옆구리에 그분임을 알 수 있는 증표가 있을 겁니다. 저는 재림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그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표시가 있어야 하고 그 표시가 없으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말씀드립니다.

2-3. 다시 오실 때는 사람으로 오시는 게 아니라 2천년 전에 육체로 오셨던 그분이 영광의 왕으로 오십니다(계 1:13~18).

2천년 전에 초림하실 때만 사람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이유가 명백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막 10:45). 대속물은 뭡니까?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대신 죽으셔서 죄값을 치러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람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값을 예수님이 일부만 치러주셨나요, 사람이 갚아야 할 모든 죄값을 다 치러주셨나요? 이것에서 우리의 신앙이 참 신앙인지 여부가 갈라집니다. 일부만 처리해 주셨다는 사람은 ‘갚을 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재림을 인간의 몸으로 다시 오는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죄에 대한 대속을 모두 감당하셨다, 완성하셨다’고 믿는 사람은 재림할 때 ‘몸’으로 오신다고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이 갚아야 할 죄 값을 모두 처리하셨는데 뭐하러 몸을 입고 사람으로 다시 오신다는 겁니까. 재림 신앙에는 우리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 그의 피로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를 통해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졌고 그분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경배하고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죄값도 다 갚지 못한 분을 향해 이 찬양을 할 수 있나요? 계시록에서 이렇게 찬양하는 것은,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예수님께 있다고 찬양하는 것은 그분의 대속이 완벽하게 이뤄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대속은 완성됐기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사람으로 오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다시 사람으로 오셔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첫째, 예수님의 대속이 불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성경을 부인하는 겁니다.

둘째, 육체를 입고 다시 와야 한다면 대속이 부족하다는 의미잖아요. 그래서 몸을 입고 왔으면 예수께서 죽으신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거나 아니면 사형당하거나 반드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속사를 위해 왔는데 구속사에 ‘피흘림 죄사함이 없는 것’(히 9:22) 아닙니까. 그러니까 재림주로 왔어도 구속사에서 부족한 게 있어서 왔다면 자기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놓고 죽으라 이겁니다. 늙어 죽는 것도 아니고, 병들어 죽는 것도 아니고, 국수 먹다가 쓰러져서 죽는 것도 아니고, 자기 범죄 행위 때문에 구속됐다가 죽어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자신의 신도들을 위해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숨 내놓을 용기도 없고, 그럴 능력도, 그럴 사랑과 희생도 갖지 못하면서 예수의 사역이 실패했다고 평가절하만 하고 자신은 그 미완성된 사역을 채우기 위해 왔다고 하고는 재림주라고 추앙받는 것 아주 치사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목숨 내놓으라는 겁니다.

2-4. 구름타고 오신다니 손오공의 곤두운을 얘기하며 우스갯 소리로 비하하는데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는 의미는 손오공처럼 구름을 둥둥 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름을 타고에서 ‘타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μετὰ로서 with라는 뜻입니다.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 구름을 타고라기 보다는 구름과 함께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구름과 함께오신다는 의미는 ‘구름을 둥둥 타는’ 손오공처럼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재림이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시는 것임을 의미하는 함축적 단어로 사용된 겁니다. 성경에서 구름이란 단어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확인하면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출 19:9).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출 24:16).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쌔”(출 34:5).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왕상 8:10).

구름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이게 영이 육체 가운데 임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재림하신다는 의미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용법과 마찬가지로 구름타고 오신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영광과 위엄’ 가운데 있을 것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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