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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업 씨는 종교 소설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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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업 씨는 종교 소설가인가?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2.04.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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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KSB 왕국의 역습 3편
말세 대환란 4부 강연 중인 박성업 씨(KSB 유튜브 영상 갈무리)
말세 대환란 4부 강연 중인 박성업 씨(KSB 유튜브 영상 갈무리)

1. 박성업 씨의 주장에 대한 비평
1) 박성업 씨의 주장


박성업 씨(이하 박성업)의 2018년 10월 24일 ‘말세 대환란 4부’의 강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대환란 전까지 깨닫지 못하게 했다.

* 에스겔서, 스가랴서, 요엘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을 의미한다.

* 다니엘서 9:24의 칠십 이레가 끝나면 종말이 온다.

* 다니엘서 9:27과 요한계시록 11:3과 13:5에 나오는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통치한다.


2) 성경적 비평

박성업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특정 시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닫아두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를 인용하여 이 같은 주장을 펼친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와 눈을 닫아 버리겠다고 결정하자 이 심판의 집행 시기가 언제까지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 비극의 시기가 성읍들과 토지들이 황폐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있기 전 까지라는 대답을 듣는다(사 6:11-12).

그런데 박성업은 이 참혹한 상황 곧 성읍과 토지의 파괴 및 유린을 7년대환란과 동일시한다. 7년 대환란이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말세 대환란 4부’의 설교 논조에서 그것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7년 대환란 전까지 이사야서를 깨달을 수 없도록 닫아 두었다는 것이다. 과연 박성업의 주장이 이사야서의 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는 것일까?

이사야 6:11-12은 앗수르의 침공에 대한 예언이다. B.C 705년 히스기야가 반 앗수르 봉기를 일으켰고 B.C 702년에 앗수르가 침공할 것을 예언한 구절이다. 이는 이어지는 13절에서 하나님이 이러한 심판 가운데서도 유다에 남겨두겠다는 ‘거룩한 씨’에 대한 약속에서 명확해진다. 비록 유다는 참혹한 파괴를 겪지만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남겨두어 훗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며(10:20-23) 옛 고토에 다시 터를 잡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라고 약속한다(37:30-32). 이 거룩한 씨의 보존은 이사야의 설교의 핵심 중 하나다(1:4-9; 4:2-6; 7:3-4; 10:20-23; 14:32; 28:5-6; 30:14-17; 37:30-32). 하나님이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려 이사야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기간은 앗수르의 유다 침공으로 유다의 성읍과 가옥이 파괴되고 국토가 황폐되기 직전까지이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실지로 자신의 전쟁 연대기에 당시 유다 성읍 46개를 정복하고 200,15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기록했다(김회권, 『이사야Ⅰ』 184-185). 이 기간까지 유다 백성은 이사야의 예언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집요하게 악을 고집한 까닭이었다.

파괴와 유린과 약탈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초래된 예루살렘의 모습이지 7년 대환란과 아무 관련이 없다. 이사야서를 7년 대환란 전까지 봉해두었다는 말은 지금 시대까지 이사야서는 비밀문서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박성업의 주장은 황당 그 자체이다.

박성업의 기이한 주장은 다음에도 이어진다. 그는 에스겔서, 스가랴서, 요엘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는 아마겟돈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7년 대환란 직전 시대인데 구약의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이 이 시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 중 하나가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것이다. 박성업은 2018년 10월 21일, ‘말세 대환란 5부’설교에서 이에 대해 세부적으로 언급한다. 에스겔 38:1-17과 스가랴 14:4과 요엘 3:2의 전쟁을 여섯째 대접 재앙(계 16:12-16)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과 동일시하고 이 전쟁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며 오늘날 시대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과연 박성업의 이러한 주장들이 정상적인가 살펴보자.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애굽과 구스와 연결된 모든 나라를 물리친 후 ‘여호와의 날(겔 30:3)’이 올 것을 전망하며 그 전에 전쟁이 날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모든 대적을 물리친 후 예루살렘에 전능하신 여호와께 경배하는 날 곧 ‘여호와의 날’(14:1, 4, 6, 8, 9)이 올 것을 내다보았다. 스가랴도 여호와의 날이 도래하기 전에 이스라엘에 큰 전쟁을 있을 것을 예고한다.

요엘서의 전반부(1:1-2:17)는 대적들의 침공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상황을 예고하고 후반부(2:18-3:21)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축복의 ‘그 날’ 즉 ‘여호와의 날’을 선포한다. 이 여호와의 날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이스라엘이 치른다는 전쟁이 인류 마지막 날의 전쟁, 즉 아마겟돈으로 인식하는 것이 정상적일까?

요한계시록 16:16의 아마겟돈은 어원적으로 ‘하르+므깃도’로 구성된다. 하르는 산이라는 뜻이며 므깃도는 가나안 족속이 패배했던 장소이며(삿 4:6-16; 5:19), 미디안 족속이 패배했던 장소이며(삿 7장), 버림받은 왕 사울이 패배한 장소이다(삼상 29:1; 31:1-7). 구약에서 므깃도산은 악인이 심판받았던 장소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구약을 모티브로 하여 아마겟돈을 악한 세력들이 심판받는 장소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즉 만국을 이끌어내어 전쟁을 일으키려는 불경건한 자(계 16:14)들이 심판받는 장소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심판을 우주적이며 종말론적으로 그리고 있다(David E. Aune, 『요한계시록 6-16』, 913-914).

여섯째 대접 재앙에 등장하는 아마겟돈은 다가올 종말적 심판이 거대한 악의 세력 즉 로마 제국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됨을 보여준다. 아마겟돈은 이 거대한 악의 세력이 멸망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키워드이다. 에스겔, 스가랴, 요엘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는 박성업이 말하는 아마겟돈과 아무 관련이 없다. 에스겔, 스가랴, 요엘의 전쟁은 실제 전쟁이고 요한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은 상징이다. 박성업의 황당한 주장의 끝이 어디까지일까?

박성업은 에스겔서, 스가랴서, 요엘서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종말적 약속들이 세상 마지막에 예루살렘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는 혈통적 유대인의 회복이라는 대전제를 모토로 하는 ‘인터콥’, ‘메시아닉 주’의 사상과 동일하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 운동’, ‘백투예루살렘 운동’도 이 일환이다. 과연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전제로 하는 구약의 종말적 약속들을 이처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가? 이에 대해 신약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로마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로마서 2:28-29은 혈통적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논증의 결론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 표시가 없어졌음을 지적한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는 혈통적 이스라엘의 해체가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며(6-8절) 이방인이 약속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였으며(25-26절) 혈통적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원받는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논조를 사용한다.

바울은 로마서 11:13-14에서는 자신의 이방인 사역이 자신의 골육을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 ‘얼마’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진술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로마서 11:25-26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에서 ‘온’ 혹은 ‘모든’이란 단어가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직전 사용되었던 ‘이방인의 충만한 수’의 경우를 관련하여 생각해보자. 먼저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모든 이방인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상의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전혀 암시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충만한 수(πλήρωμα)란 단어는 로마서 11:12의 유대인들의 충만함(πλήρωμα)이란 문구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전자는 이방인의 경우고 후자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경우다. 전자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다’가 모든 이방인의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후자 곧 ‘유대인들의 충만함’ 역시 모든 유대인들의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12절의 ‘유대인의 충만함’은 26절의 ‘모든 이스라엘’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26절의 ‘모든 이스라엘’ 또한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43-365)

신약에는 박성업이 주장하는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대한 약속이 없다. 차후에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 특별히 선지자들의 종말적 약속들이 어떻게 기독론적으로 재해석했는지를 다루어보겠다.

박성업은 다니엘서 9:24의 칠십 이레가 끝나면 종말이 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칠십 이레라는 시간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즉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과 1967년에 이스라엘에 편입되었던 ‘예루살렘’에 적용되는 시간인데 이 구절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서 성취가 되었으므로 곧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구절이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다니엘은 9:4-19절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긴 기도를 드린다. 현재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과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5-6절은 자기 민족의 죄에 대한 고백이다. 자기 민족이 범죄하고 패역하고 행악하고 반역하고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으며 주의 종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7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유다 사람들, 예루살렘 거민들이 당한 수치는 B.C586년의 남유다 멸망을 가리키며 이스라엘이 당한 수치는 B.C722년의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나타낸다. 다니엘은 9:9-14절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범한 죄와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재앙을 다시 받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는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는 시점의 이스라엘이 어떤 상태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현재 매우 심한 곤궁에 빠져 있다. 안티오크스 4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잔인한 악행 때문이다(이희학, 『다니엘』, 439)

다니엘은 15-19절에서 간절히 청원한다. 출애굽 때 보여 주었던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현재의 적들로부터 예루살렘이 수욕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즉 안티오크스 4세의 만행의 종결을 희망하고 있다. 24절에서 가브리엘은 이 기도에 응답하여 그 수욕의 기간을 ‘칠십 이레’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칠십 이레란 무엇일까?

한 이레는 7일이므로 칠십 이fp는 7×70=490일이다. 하지만 칠십 이레는 정확한 수학적 숫자가 아니라 묵시문학적으로 표현한 상징적 숫자이다. 이 숫자의 목적은 정확한 역사적 기간을 확정하는 데 있지 않고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데 있다(위의 책 438).

24절은 칠십 이레 기간이 끝나면 이스라엘의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기록한다. 25절은 이 일의 시작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라고 전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는 때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 즉 칠십 이레까지 안티오커스 4세가 주는 수욕을 견디어내야 한다.

칠십 이레와 종말을 연결하는 것은 다니엘서 9장의 문맥과 동떨어져있다. 오히려 이는 극단적 종말론을 내세우는 세대주의 신학에서 발견된다. 세대주의는 이 칠십 이레를 490년으로 계산하고 이를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건(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 1967년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편입)과 연결시켜 재림과 종말의 시기를 추정해 내는데 몰입한다. 박성업 설교는 한국교회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세대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다니엘서는 유대인 공동체의 위기에 초점을 맞춘 묵시적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헬라의 지배에 저항했던 유대 공동체를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이런 다니엘서 안에는 인류 종말에 대한 정보가 없다. 다니엘 9:24 안에도 490년(칠십 이레), 1948년, 1967년에 대한 단서가 없다. 박성업의 마구잡이식 설교의 끝이 어디일까? 박성업은 다니엘 9:27과 요한계시록 11:2과 13:5에는 세계를 통치한다는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드러나 있고 그의 통치 중에 7년간 세계 평화협정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단 9:27)에서 ‘그’는 안티오커스 4세를 가리킨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은 적그리스도의 평화조약이 아니라 안티오커스 4세가 B.C 167년에 내린 칙령을 가리킨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은 그가 토라에 규정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 것을 가리킨다. “가증한 것”은 그가 제단에 세운 제우스 신상을 가리킨다(John E. Goldingay, 『다니엘』 465-466.) 안티오커스 4세가 예루살렘에서 자행한 만행들은 외경 마카비서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마카비상 1:20-28, 41-59; 마카비하 5:1, 6:2 참고). 그의 유다 종교 말살 정책이 곧바로 마카비 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다니엘 9:24 안에는 박성업이 주장하는 세계를 통치하며 평화 조약을 맺는다는 적그리스도가 없다.

박성업이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11:3의 ‘두 증인’이 세계를 통치하는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요한계시록 11:3은 ‘두 증인’을 가리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함으로,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감람나무는 스가랴서를 배경으로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순금으로 된 촛대와 감람나무 환상을 보았다(슥 4:1-14). 이 환상에 등장하는 두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상징한다. 이 환상은 이 두 사람이 파괴된 성전을 장차 재건축할 것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 11:3은 스가랴서의 모티프를 인용하여 두 촛대와 두 감람나무를 교회(성전)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내므로 두 증인은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증인 앞에 붙은 ‘두’ 즉 ‘2’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이다(신 17:6; 19:15 참고). 두 증인은 ‘증언하는 교회’이다.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은 입었다는 것은 교회의 사역의 속성을 말한다. 굵은 베옷은 회개 시에 입는 옷이다. 두 증인은 박성업이 주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교회이다(박수암, 『요한계시록』 151-152).

박성업이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13:5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세계를 통치할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 짐승은 로마의 제국의 네로 황제를 상징한다. 이 짐승이 네로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13:18이 확정해 준다. 이 구절을 「현대인의 성경」 으로 읽어보면 “총명한 사람은 그 짐승의 숫자를 세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이며 666입니다”이다. ‘숫자’가 곧 ‘사람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가 이 짐승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게마트리아라는 관습에 따라 헬라어로 된 네로 황제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그 철자의 수를 합산하면 육백육십육이 나온다. 짐승 곧 육백육십육은 박성업이 주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네로 황제다(M. Eugene Boring, 『요한계시록』 236-238).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니엘서 9:27, 요한계시록 11:3, 13:5 안에는 적그리스도는커녕 그의 그림자도 없다. 박성업은 성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나리오를 쓰는 종교 소설가라 봐도 무방하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성서신학적 기반이나 소양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구잡이’ 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진다. 하나님과 수시로 대화한다는 권위를 강조하는 목적이 이 약점을 커버하기 위함이 아닌지 모르겠다.

2. 다음은 2018년 10월 24일 설교, ‘말세 대환란 4부’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간 박성업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네가 가서 이걸 얘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 알아 들을거래요. 네가 전하는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네가 말하면 눈이 감기우리라. ···이사야가 언제까지 못 알아듣습니까? ···이사야에서 예언했던 수많은 예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선지서에 기록되어있는 수많은 예언들이 언제를 얘기하느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한 예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미 선지서에 예언해 놓은 것들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게 있고 안 이루어진 게 있습니다. ···스가랴서 12장, 13장, 14장이 어떤 내용이냐면 마지막 예수님이 오시는 그 순간까지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에스겔 38장, 39장도 있고, 요엘서 3장도 있고 곳곳에 같은 전쟁이 부분적으로 예언되어 있어요. ···

다니엘서 9장 24절에 칠십이레 라는 기간이 끝나면 ···세상이 끝난다는 거죠. ···종말이 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칠십 이레라는 때를 정하셨어요. 24절에는 이 칠십 이레의 적용 대상이 나와 있습니다. ···두 대상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도시에 적용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생겼을 때만 해도 수많은 다른 선지서에 나온 예언들이 성취된 거예요. 칠십 이레 기준으로 보면 적용대상이 하나밖에 성취가 안 된 거예요. 그런데 1967년도에 6일 전쟁을 치르면서 예루살렘 도시가 드디어 이스라엘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칠십 이레의 남아있는 기간이 그 둘(이스라엘, 예루살렘)에게 적용되면 세상이 끝난다구요. ···27절을 보겠습니다. ···

여기 한 사람은 적그리스도인데 7년 동안 평화 협정, 평화 조약을 맺어요. ···그 때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못 드리게 한데요. ···이 마지막 7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적그리스도가 제사를 막아요. ···그 다음부터 대환란이 옵니다. 이 대환란 끝에 누가와요? 주님이 오십니다. 그 다음 내용을 읽어보면 그 이후부터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이것을 대환란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거룩한 도시를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마흔 두 달은 3년 반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은 적그리스도가 전세계를 통치하는 그 때인데 마흔 두달 일하는 권세를 받습니다. 이렇게 3년반, 3년반을 더해서 7년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7년입니다(박성업, 2018년 10월 24일 설교, ‘말세 대환란 4부’, https://www.youtube.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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