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 신외식목사 (여수종교문제연구소장)
머리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후 호남지역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 될 수 있게 하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미국북장로교소속의 언더우드선교사이다. 특히 호남지역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유적지는 기독교 역사와 함께 오래 기억하며 보존해야 할 귀한 신앙의 유산이다.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작한 이래 1984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선교사는 모두 190명. 이 중 6%에 달하는 12명의 선교사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위치한 호남신학대학교 선교동산에 안장돼 있다.
이곳에는 나주와 목포 그리고 광주에 선교부를 설립해 전남선교의 선구자 역할을 한 유진벨 선교사와 그 가족을 비롯해서 의사 겸 목사로 활동하다 선교사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된 오웬 선교사의 묘지 등도 동산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신학대학교 선교동산을 따라 걷다보면 1920년에 지어져 지금의 기독병원과 여수 애양원의 초석이 됐던 윌슨 선교사의 사택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1921년 당시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 예배당으로 건립되고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는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교회로 사용 중이다.
여수는 이처럼 대한민국 남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로,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깊이 자리 잡은 곳이다. 여수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는 단순히 신앙의 전파를 넘어 지역 사회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과 지역 교인들의 믿음은 여수를 신앙의 터전으로 변화시키며 한국 기독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여순사건, 그리고 6.25전쟁과 같은 격동의 시기를 지나며 여수의 교회는 순교와 희생을 통해 신앙의 불씨를 지켜왔다. 이 글은 여수 지역에서 기독교가 전래된 과정과 이를 통해 발전해 온 교회의 역사,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수 교회의 부흥과 연합 활동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여수의 기독교 전래
(1) 장로교의 역사
우리 여수의 기독교(장로교)가 들어온 것은 여수시 율촌면 장천리의 유지 조일환, 이기홍, 박경주 3분이 일체치하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 만주로 가던 도중 한양(현 서울특별시)에서 일본순사(경찰)에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피신처를 찾는 중 미국인이 경영하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들어가면 체포당하지 않는 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피신하여 위험을 모면한 후 복음을 받아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머리를 삭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었고 특히 한양(현 서울특별시)에서 소개 받은 선교사를 목포선교부에 찾아가 더 깊은 진리를 전수받고 1905년에 조일환 씨 댁에서 변요한선교사를 모시고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장천교회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6년 12월 10일에 경상도 부산 동래에서 거주하는 김바우씨가 여수에 와서 1910년 2월5일 서정(현재 군자동)에다 초가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린 것이 시작이 되고 율촌에 조의환조사(현재명칭 전도사)가 그해 3월5일 부임하여 여수교회(현재 고소동 여수제일교회)가 설립이 되었으며 여수지방의 선교모체가 되어 농어촌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어 여수에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2) 감리교의 역사
감리교의 복음이 전파 된 것은 1885년이며 감리교 아펜셀라 장로교의 언더우드 두 선교사로 대표되는 개신교의 초창기 한반도 선교는 선교지역의 분활이라는 네비우스 정책을 실행하게 되어 감리교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일부 황해도일부를 정하였으며 장로교는 호남 영남 황해도일부를 선교지로 정하였다. 1950년 6.25 이전에는 여수지역에 감리교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리교 선교사 아펜셀라가 1902년 목포 앞바다에서 순교했음을 기억할 때 감리교역시 호남선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1950년 6.25가 나고 1.4후퇴당시 미군 상륙용배 L.S.T.로 많은 이북의 피난민들 대부분 황해도 출신이 여수에 6,000여명이 하선되어 정착되고 그중에 70여명의 감리교인들이 여천군 돌산면 둔전리(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에 제단을 마련하고 감리교 총리원에서 파송받은 박성태목사와 감리교인들이 둔전감리교회(현돌산중앙감리교회)를 창립하면서 여수지방에 교회가 개척되고 설립되었다.
(3) 성결교의 역사
여수에 성결교회의 복음의 역사는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성결교인인 박명오장로가 여수에 가족과 함께 이사와 청과조합을 경영하였는데 그 당시 이 지역에 성결교회가 없음을 알고 성결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가족을 중심으로 교인들을 모아 1949년 11월 22일 서정(현 여수시 군자동) 향교 옆에 셋집을 얻어 개척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여수에 성결교회의 시작이다.
(4) 기타교단
6.25 이후 여수지역에도 한국교회의 분열의 아픔 속에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과 (합동)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등이 다양과 일치 속에 500여교회 90,000만성도로 부흥과 성장을 하고 있다.
2. 여수의 교회들의 수난
1910년 일제는 통감부를 총독부로 바꾸어지면서 총독 데라우찌는 무단정책을 실시하고 철저하게 탄압을 시작하였다. 언론기관을 폐지하고 전국 각지에 헌병과 순사(현 경찰)을 풀어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서적을 압수하고 1911년 신교육령을 발표하여 기독교 하교에서도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교회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위하여 교회의 모든 상황에 대하여 총독부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우민화 황민화 교육 실시를 하고 창씨개명과 한국어 사용금지 유교적인 사대사상을 갖도록 하였다.
이와같은 민족정신 말살과 교회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민족정신 고취를 위하여 식민통치를 거부하자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기독교를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1938년 4월 25일 현재의 구례읍교회에서 제22회 순천노회(여수 순천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이 포함)정기노회(당시노회장 오석주목사)를 열고 총회의 신사참배가 잘못이므로 총회의 잘못을 상고하고 총회에 참석하게 되면 신사참배를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순천노회 총대들은 제30회총회와 제31회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를 합리화 하는 것은 환난을 피하려는 잘못 생각으로 독자적인 반대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분이 바로 여수나병원(현 여수애양병원)에서 반대를 주도한 애양원교회 손양원목사이다.
1940년 9월 20일 전국적으로 350여명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예비 검속되어 죄가 없는데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해 11월15일 순천노회 관할목사17명이 검거 되었으며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여수 율촌면 애양원교회 손양원목사와 여수교회(현 여수제일교회)김순배목사 그리고 남면 우학리교회 이기풍 목사등이다.
이기풍목사는 1940년 11월 15일 순천노회 관할 목사 17명이 검거되던 날 70세의 고령으로 여수경찰서에 투옥되었고 병보석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함께 검거된 이들과 함께 내 보내달라고 버티었으나 목숨의 위험한 상태로 강제로 남면 우학리교회로 옮겨졌으나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2년 6월20일 75세로 순교하였고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으로 여수지역과 순천지역의 수 많은 시민들이 학살되고 여수 순천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손양원목사의 아들 동인과 동신이 순교하였다.
여수 애양원교회는 우리나라 의료 선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중한 건물이다. 애양원교회 건물이 신축된 것은 1926년 이지만, 그 연원은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4월 목포에서 활동 중이던 포사이트(Willey H. Forsythe) 의료 선교사가 광주로 가던 중,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던 한센병 환자를 광주 제중원 벽돌 가마터에서 치료하게 된 것이 서양 의학에 의한 나환자 치료의 효시가 되었다. 이것이 미국인 윌슨(Robert M. Wilson) 의료 선교사에 의해 1911년 4월 25일 당시 전라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현 광주 남구 봉선동)에 설립된 광주 나병원으로 계승되었고 1913년에는 최초로 나병원 교회가 설립되었다.
광주에서 번창하던 나병원과 교회는 1926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일대로 옮겨오게 된다. 이때 현재의 애양원교회 건물이 신축되었다. 또한 애양원교회 맞은편에 현재 WLC(Wilson Leprosy Center)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33호인 애양병원도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애양병원은 당시에는 비어울프 나병원이라고 이름지어졌으나 1935년 3월 15일 애양원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애양병원 건물은 1999년 12월 역사관으로의 전용공사를 시작하여 2000년 6월 24일‘WLC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역사관에는 의료기구와 사진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의료 상황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여수 공항과 남해의 광양만에 인접한 현재의 애양병원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애양원교회와 그 주변에는 현재까지도 애양병원과 관련된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구 애양병원 건물을 비롯하여 1953년 신축되어 한성신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 수양관으로 사용되는 토플하우스(Topple House)를 비롯한 다수의 근대건축물이 산재되어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다.
여수 애양원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지만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지던 많은 건축물과는 구별되는 석조 1층 건물로 선교사에 의해 지어졌다. 애양원교회 뿐만 아니라 애양병원과 주변에 산재한 근대건축물들이 동일한 재료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어져 동질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일반적인 교회 건축과 유사하게 끝이 뾰족해지는 첨두형 아치창을 둘렀고 정면 좌측으로 사각탑을 쌓고 그 위에 탑과 십자가를 올렸다. 지붕은 함석을 얹은 박공지붕으로 마감되었다.
애양원교회는 잦은 증축과 개축으로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기본적인 골격과 개구부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35년에 예배당을 재건하였고, 1979년 개축시 경사로와 계단을 설치하였다. 1980년 이후 목조였던 보와 기둥을 철근콘크리트로 개조하였고 층고를 높이기 위해 벽면 상부에 석재를 4단 정도 더 쌓아 올렸다.
애양원교회는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 애양병원 건물과 함께 서양 선교사에 의해 건축된 건물로서 우리나라 의료 선교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32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1950년 9월 28일순교자 10인명단(나이순) : 조상학목사 (덕양/현 주향교회) 윤형숙전도사 (여수제일교회) 손양원목사 (애양원교회) 지한영강도사 (율촌장천교회) 황도백집사 (우학리교회) 허상용집사 (돌산읍제일교회) 곽은진집사 (우학리교회) 백인수성도 (우학리교회) 안경수성도 (우학리교회) 지준철성도 (지한영강도사 장남) 교회학교교사 찬양대지휘자10명의 기독인이 총살에 의해 순교하였다. 이날 무고한 양민 100여명이 총살을 당했다.
현재 순교지에 서현식목사가 여수중앙교회시무중 순교기념비를 제막하였다.
3. 교회의 부흥과 성장 선교단체 연합기관들의 활동
해방이후 여순사건, 6.25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 속에 여수의 교회들은 많은 어려움에서도 성장과 부흥을 하였다. 여수에는 여러 교단들이 함께하고 있다. 다양함 속에 일치를 추구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코저 최선을 다하는 여수시내의 주요교단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국제)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광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대한예수교장로회(재건)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총연) 대한예수교장로회(합정)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그리스도의교회 등의 교단이 있다.
그러나 구국의 성지요. 순교의 성지인 여수에 이단사이비세력의 침투로 몸살을 앓고 있어 이에 지역교계가 기도와 염려를 하는 가운데 특별히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여수노회는 여수지역의 이단침투로 인해서 2005년 11월8일 여수노회 28차정기회 1차 임시회(당시노회장 장광윤목사)에서 노회장의 긴급안건으로 “통일교여수침투를 즉각중단하라”는 성명을 채택하고 문집단대책특별위원회(초대위원장: 장광윤목사 여수성암교회) 를 구성하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새벽6시30분에 여수노회관에서 이단사이비척결과 여수시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며 이단사이비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여수시교회연합회도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초대위원장 장광윤목사(여수성암교회)]를 구성하고 매주 월요일 새벽6시30분에 여수광림교회(담임 배용주목사)당에서 이단사이비대책기도회를 통해서 지역사회와 여수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단대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이시기에 여수종교문제연구소도 설립되어 이단대처 연구와 홍보와 예방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여수시교회연합회는 여수시가 3여 통합되기 전에 여수 여천 돌산 율촌 소라등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2002년 여수시의 통합으로 흩어졌던 연합회가 [여수시교회연합회(초대회장 : 신용호 목사 (여수동광교회)]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2020년 현재 6백교회 10만성도로 부흥하고 있다.
여수에는 기독청년운동을 시작으로 새로운 연합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 여수YMCA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전국 YMCA운동에 여수도 함께하게 되는데 1945년 11월 15일 여수교회(현 여수제일교회)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여수YMCA를 창립하고 (초대회장 유종섭장로 총무 문영규집사) 1963년 대한YMCA연맹에 정식 가입함으로서 이 지역의 선구자적인 민간 지역운동체로서의 사명을 다해왔다. 1988년 광무동에 현재의 3층 건물을 건립하여 전인적 사회교육 활동의 장을 열고 청년, 주부, 직장인들의 클럽 활동을 통한 시민운동과 지역민들의 권익옹호와 인권 실현을 위한 시민중계실 운영, 도·농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생활협동운동, 청소년 문화 및 지도력 향상 프로그램 계발과 실행, 기독선교운동체로서의 일치와 평신도공동체 운동,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운동, 지역 연대사업 등 빛과 소금되는 일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
1994-2001년 학동사회교육관 운영, 2000-2002년 여수시청소년상담실 위탁운영, 2001년 여수시청소년수련관을 위탁 운영하는 등 YMCA의 사업과 프로그램의 확장으로 지역사회 청소년,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높아 져가고 있다. "어린이에게 꿈을, 청소년에게 미래를, 시민에게 공동체를!"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약1,800여명의 후원회원과 1만여 지역민이 여수YMCA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여수시 좌수영로 177 (광무동 916-1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2) 여수 YWCA
1982년 5월에 여수에 창립 (초대회장 : 정숙자)되었다. 비교적 늦게 창립되었지만 여성활동, 청소년활동, 소비자상담실, 고령자인재은행, 사랑의 호스피스운동, 장애우를 위한사업, 사회문제연계사업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여성지원센터, 여성상담센터, 여수여성인력개발센터, 청소년지원센터등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여수시 동문로 120 (공화동 715-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전남동부지역에 기독교방송국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3) 전남CBS
한편 1954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영방송으로 첫 전파를 발사한 CBS도 전남동부지역에 2000년 11월 6일에 전남동부권 표준FM방송 중계소를 개국(주파수 102.1MHz, 출력 1KW)하고 2003년 6월 10일에 전남CBS(초대본부장 : 허미숙)창립(주파수 102.1MHz, 출력2KW)개국되어 라디오와 TV 방송으로 지역사회에 기독교방송으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2009년 1월에는 여수사무소(초대여수사무소장 : 최석곤장로)가 설치되었다. 지난 반세기동안 민주주의 발전과 지역 계층간 갈등 해소, 남북 화해와 통일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1970년~80년대 공정한 뉴스와 예리한 분석으로 민주주의에 목말라하던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그 자랑스런 전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CBS는 민족과 지역,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통합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언론으로 여수와 전남동부지역에 또다른 복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며 또한 인종과 국가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을 기대한다.
5) CTS전남방송
CTS방송은 우리나라 최초 케이블 TV가 출범한 1994년 12월 23일 기독교 대표 채널로 개국하였다. 1995년 1월18일 제1대 이필용 사장, 제1대 김덕신, 김기수, 김선도 공동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지역본부인 CTS전남방송은 2004년 9월 10일 개국해 지역교계소식과 목사님들의 말씀, 성도님들의 간증 등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 영상선교시대에 걸맞게 방송을 통해 전남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CTS 전남방송이 개국되어 (초대본부장 : 박병식, 초대운영위원장 : 김성천)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febc전남동부극동방송
극동방송은 1954 05.01 재단법인 한국복음주의 방송협회 창립 (초대 이사장 황성수(黃聖秀) 하고 이어 07.27 체신부로부터 무선국 허가 취득하고 1955 06.24 경기도 인천시 학익동 588번지로 무선국 이전(주파수를 1180kHz로 변경) 하고 1956 12.23 개국(초대국장 화도선:Tom Wattson 씨) 되어 오다가 지역방송으로12번째인 전남동부극동방송은 1999년 6월 9일 1차 허가 신청(극동방 411-117) 방송국(FM방송) 설립허가 신청이후 꾸준히 설립을 준비하는 중 2015년 6월 4일 드디어 극동여수FM방송국 허가가 나게 된다. 극동여수FM방송국으로 명칭을 부여받고 주파수(출력: 97.5MHz / 1kW 방송구역 : 여수, 순천, 광양(일원) 고흥, 하동, 남해(일부)로 광양시소재 구봉화산(광양시 성화동 소재, 해발 439m) 에 송신소를 2015년 6월 8일 전남 여수시 문수로 14 영동빌딩에 연주소를 만들고 지역 교계 여론 수렴과 방통위와의 협의 절차를 거쳐 ‘전남동부극동방송’으로 방송사 설립준비를 마치고 2015년 7월1일 설립준비 본부 개설 (설립준비본부장 : 이종보)하고 2015년 11월 28일 송출식 및 송출감사예배(09:00)를 드리고 개국하여 오늘에 이르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교계가 연합으로 박람회를 지원하고자 여수기독교단총연합회를 만들었고 박람회 이후에 여수에 불미스런 일들이 생기면서 청념도시를 만들고 지역복음화에 앞장서는 기독교단체인 전남기윤실과 여수시니어선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1)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여기총)
2010년 6월 15일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박람회를 지원하고자 12개 기독단체들이 모여서 창립준비모임을 갖고 2010년 10월 3일 2012여수세계박람회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현석목사/여수평강교회, 김성천목사/여수제일교회)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하여 여수세계박람회에 처치스테이등을 통해 여수세계박람회 800만 달성에 성공적인 박람회를 마무리하고 정관에 의해 자동해체되었다가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끝난 이후 여수교계의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을 다시결성하자는 교계의 요청이 생기고 교계의 연합 역할이 필요하게 되어 다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진위원장 : 주정철 추진위원 : 신외식 이노철 이승필 김숙자) 2014. 11. 24. (월) 18:00 여수GS칼텍스 예울마루 (예울마루대표 이승필장로 여수세광교회) 7층접견실에서 여기총 발기인대회를 갖고 2014년 12월 8일(월) 오후7시 여수문예회관에서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약칭 여기총/ 제3대 대표회장 주정철목사) 창립총회를 모여 창립되었다. 참여기관단체로는 여수시교회연합회, (사)민족지도자손양원목사기념사업회, 전남기독교윤리실천운동, 여수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CBMC전남동부연합회, 여수시니어선교회, 여수성시화운동본부, 여수YMCA, 여수YWCA , CYA전남기독청소년협회, 여수시여자목회자협의회, 손양원선교회, CCC여수순천기독청년대학생연합회, 전남cbs방송, cts전남방송, FEBC전남동부극동방송, 뉴스파워전남본부등 17개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2) 전남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전남기윤실) (2013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정통적 기독교신앙을 기본이념으로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정직한 그리스도인과 신뢰받는 교회가 되도록 섬기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윤실 운동에 공감하는 가운데 여수시청 공무원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여수시민들 이 낙심하고 있는 가운데 2012년 12월 3일 여수파티랜드에서 30여명이 모여 발기인대회 & 예배를 드리고 이어 12월 20일 서울기윤실 사무처장과 간담회, 창립절차협의후 2013년 1월 29일 창립총회 (은현교회. 77명)로 모여서 정관통과및 임원선임 (공동대표: 박세훈. 곽종철, 김천석)하고 2013년 3월 4일 전국기윤실 회원총회 에서 여수기윤실로 활동 중 전국기윤실 회원총회에서 여수기윤실 활동승인 확정되어 전국 최초로 정보통신 윤리실천 전국릴레이 서약운동을 전개하고 '13. 3. 14 ~'14. 6 (3회) 동성애 합법화 차별금지법안 반대 성명서 발표 및 매년 국내성지순례 및 총선 국회의원후보자 검증 및 정책토론 ᆞ정책포럼 등 활동하다가 2017년 8월 전남기윤실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오늘에 이르다.
3) 여수시니어선교회 (2013년)
여수시니어 선교회(초대회장: 손철완장로)는 2012년 12월 19일 여수은파교회(담임: 고만호목사)에서 창립예배 및 총회를 갖고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여수시니어선교회는 40대에서 80대 이상의 제2의 인생을 위한 시니어 선교한국 운동으로 여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결론
여수는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온 중요한 지역이다. 초기 복음 전파는 외국 선교사들의 헌신과 지역 신앙인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와 성결교 등 여러 교단이 설립되고 성장하면서 여수의 신앙 공동체는 점차 확장되었다. 특히 장천교회와 여수제일교회를 비롯한 초기 교회들은 여수 지역 복음화의 모체 역할을 했고, 감리교와 성결교 역시 고유한 방식으로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데 기여했다.
여수의 교회들은 일제강점기와 여순사건, 6.25 전쟁 등 역사적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순교와 희생의 발자취를 남겼다. 대표적으로 손양원 목사와 이기풍 목사 등은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주도하며 복음의 진리를 수호했다. 애양원교회와 애양병원은 의료 선교와 복음을 통합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까지도 중요한 신앙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여수의 교회들은 여순사건과 같은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과 부흥을 이루어왔다. 다양한 교단과 선교 단체들은 지역 복음화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며, 여수YMCA, YWCA, 전남CBS, CTS방송 등은 지역 사회와 신앙 공동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기독교단체총연합회와 같은 연합기관들은 교계의 일치와 협력을 도모하며, 이단과 사이비의 위협에 맞서 지역 신앙 공동체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여수는 순교와 헌신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로서, 앞으로도 복음의 빛을 전하며 지역 복음화와 선교적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 다양한 교단과 단체들이 함께 협력하여 다도해 지역 선교와 도농복합 도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중심적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여수는 다도해로 많은 섬들을 가지고 있으며 땅 끝 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섬지역 선교에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농어촌의 통합도시로서 제 역활을 감당할 수 있는 여수교회가 되어야 한다.
[참고자료]
*『여수중앙교회50년사』(여수중앙교회50년사 편찬위원회, 1996)
*『여수노회 20년사』(예장통합여수노회20년사 편찬위원회, 2001)
* 여수노회 순교자기념위원회 자료 (예장통합여수노회 순교자기념위원회)
* 여수종교문제연구소 수집자료
